해외의 전문가 집단 활용 사례

코로나19 사태처럼 국가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게 필수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전문가의 조언을 경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문지식을 이용하면 효율적이고 안전성이 보장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어서다. 해외에서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의 힘을 빌린 사례가 숱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해외 각국의 전문가 집단 활용사례를 취재했다. 

해외에선 국가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의 식견을 활용한 사례가 숱하다. [사진=연합뉴스]
해외에선 국가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가의 식견을 활용한 사례가 숱하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가 국내서 발발한 지 47일째(3월 6일 기준)다. 확진자 수는 어느덧 6000명을 훌쩍 넘었다. 확진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탓에 시민들 사이에선 ‘숫자 세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국내선 질병관리본부를 주축으로 기획재정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여러 부처가 실시간으로 대응하고 있다.

현재 중국과 한국 다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유람선(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의 집단 감염에 이어 일본 내부에서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본이 코로나19를 제압하는 데 애를 먹는 데엔 일본 정부의 대응이 미흡한 탓도 있지만, 전염병 대응 전문기구와 전문가가 없다는 이유도 깔려 있다. 

■하르츠 위원회의 족적 = 해외에서는 국가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숱하다. 독일의 예는 대표적이다. 2000년대 초 독일은 저성장·고실업 등으로 경기침체의 수렁에 빠져 있었다. 2002년 기준 실업률은 10%를 넘어섰고(실업자 수 422만명),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그해 0%대(0.2%)로 곤두박질쳤다.

침체가 갈수록 깊어지자, 정부가 나섰다. 2003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아젠다2010’을 발표하며 전면적인 개혁을 선언했다. 아젠다2010은 노동시장을 중심으로 사회 복지, 경제 활성화, 재정, 교육·훈련 5가지 분야를 총체적으로 손보겠다는 개혁안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앞에 서지 않았다. 아젠다2010의 중심에 ‘하르츠노동개혁위원회(하르츠 위원회)’란 전문가 집단을 세웠다. 폭스바겐 이사 출신인 페터 하르츠를 중심으로 노동·학계 등을 대표하는 전문가 15명이었다. 하르츠 위원회는 2002년 8월 ‘하르츠 보고서(하르츠 법 Ⅰ~Ⅳ)’를 내놨고, 2003년 1월부터 2005년까지 순차적으로 개혁안을 시행했다. 노사정의 이해관계가 번번이 충돌해 경기침체를 극복해 내지 못했던 슈뢰더 총리로선 ‘전문가집단’의 힘을 빌려 개혁의 초석을 다진 셈이었다.  

개혁으로 실업률 ‘뚝’ 

하르츠 보고서의 핵심은 규제 완화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복지 체계를 바꾸는 것이었다. 법안의 골자는 이렇다. I법은 신규 고용을 늘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근거규정이었다. II법은 저임금 근로인 ‘미니잡’을 늘리기 위해 세금 면제 혜택을 줬다. III법에선 연방고용청(PA)을 현대적인 기구로 개편했다. IV법에선 장기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주되 조건에 따라 기간을 단축하거나 삭감했다.

전문가 집단이 밀어붙인 노동시장 개혁은 극적인 효과를 봤다. 실업률은 뚝 떨어졌고, 고용인구는 큰 폭으로 늘어났다. 20 05년 11.3%(실업자 수 490만명)로 정점을 찍었던 실업률은 크게 낮아져 2013년에는 5.3%(300만명 이하)까지 하락했다. 고용인구는 2008년 4000만명, 2012년 4200만명까지 늘었다. 시간제란 한계가 있긴 하지만 고령자(55~64세)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것도 성과였다.

독일은 개혁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시장의 수준이 최상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참고 : 독일의 2018년 기준 실업률 3.5%, 고용률 75.9%(통계청)]. 물론 하르츠 개혁이 ‘알찬 열매’만 만들어낸 건 아니다. 저임금 단시간 고용이 늘어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고 고용 형태가 불안정해졌다는 비판은 새겨들을 만하다. 전문가 집단에 사회문제를 맡기더라도 또 다른 통제방안이 필요하다는 거다. 

■전문가가 처리한 핵폐기물 = 1970년대 후반 영국은 대량의 핵폐기물을 처리해야 했지만 부지 선정이 쉽지 않았다. 1978년과 1994년 두차례 부지를 선정했지만 지역 사회의 극심한 반발로 모두 무산됐다. 영국 정부는 무차별적인 부지 선정 대신 전문가 집단을 통해 대중과 합의하는 방법을 택했다. 2003년 11월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CoRWM)가 출범한 배경이다.

CoRWM는 공개 모집으로 선발한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원자력 분야 외에 기술 전문가, 사회과학자, 환경단체 인사 등 다양한 전문가 중에서 핵폐기물 관리 경험을 가진 이들을 선발했다. 이들은 조사를 통해 대안을 최대한 마련한 뒤 평가 과정에서 대중의 의견을 수렴했다. 2006년 9월 CoRWM 가 최종 권고안을 제출하자 영국 정부는 이를 즉각 수용하고 발표했다. 

 

에볼라 사태가 터졌을 때 미국 정부는 행정 전문가 론 클레인을 조정관으로 세웠다. [사진=뉴시스]
에볼라 사태가 터졌을 때 미국 정부는 행정 전문가 론 클레인을 조정관으로 세웠다. [사진=뉴시스]

영국이 핵폐기물 처리 문제에서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힘을 빌린 건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다방면의 전문지식을 적용해 안전성을 높인다는 장점을 살리겠다는 목적도 있었다. CoRWM이 내놓은 결론은 장기적인 지층 처분 방식 시설의 건설이었다. 현재 영국은 주요 핵연료 재처리·폐기 시설이 밀집한 셀라필드(Sellafield) 원자력 단지의 해체를 진행 중이다.

■에볼라 차단한 행정 전문가 = 전염병의 창궐을 막기 위해 전문가를 내세운 경우도 있다. 2014년 미국에 에볼라 사태가 터지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행정 전문가인 론 클레인을 에볼라 총괄조정관(에볼라 차르)에 임명했다. 론 클레인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미국국립보건원(NIH)이 현장에서 조치를 취하는 동안 이들 기관이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원 배분, 이견 조정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이해관계 적고 안전성 높아

사실 미국은 에볼라 사태가 터졌을 때 미흡한 초동 대처로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첫 에볼라 감염자인 토마스 던컨이 입국하는 동안 방역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데다, 병원에서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않아 2차 감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방 정부가 행정 전문가에게 방역 시스템을 맡기는 등 적극 나서면서 에볼라 사태는 43일 만에 막을 내렸다. 총 감염자는 11명에 그쳤고, 이중 2명은 사망했지만 나머지 9명은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한편에선 ‘론 클레인의 존재감이 없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성과를 낸 건 사실이다. 난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힘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사례들이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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