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근로자 현주소

“내 집은 내가 치우고 싶은데, 너무 바빠서.”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는 젊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편리미엄(편리함+프리미엄)’이 트렌드로 부상하면서, 가사서비스 수요는 더 증가할 전망이다. 그런데 시장은 커졌는데 가사근로자의 처우는 더 나빠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유가 있었다. 이들은 노동을 하지만 ‘노동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가사근로자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가사서비스 시장이 연간 1조원대 규모로 성장했다.[사진=뉴시스]
가사서비스 시장이 연간 1조원대 규모로 성장했다.[사진=뉴시스]

# ‘가사도우미를 불러볼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건 이 집에 이사온 뒤부터였다. 우리 부부가 이사온 네번째 집이자, 결혼 7년 만에 우리 명의로 마련한 첫번째 집이었다… 하지만 막상 부르려고 하니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마음이 바뀐 건 회사에 가깝게 지내는 동료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알고 보니 비슷한 직급의 꽤 많은 동료들이 이미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맞벌이 부부가 집을 깨끗이 유지하고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 한번 이용해보면 진작 부르지 않은 것을 후회할 것이라고 했다.

현실적인 내용으로 젊은 독자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장류진 작가의 소설 「도움의 손길」의 일부 내용이다. 이 소설은 평범한 젊은 맞벌이 부부가 처음 가사근로자를 고용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소설처럼 30대 젊은 맞벌이 부부를 중심으로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가사서비스가 금전적 여유가 있는 일부 계층만 이용하는 서비스가 아닌, 보편적 생활 서비스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현대카드가 최근 3년(2017년 1월~2019년 10월)간 가사서비스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관련 결제 건수가 2017년 1~10월 5만6690건에서 2019년 같은 기간 19만42건으로 훌쩍 늘었다. 결제 금액도 같은 기간 19억원에서 62억원으로 21%가량 증가했다. 연령대별 비중은 30대가 50.0%로 가장 많았다. 현대카드 측은 “시간과 편의성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집안일의 외주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선 가사서비스 시장 규모가 올해 1조원에 달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시장이 커지자 모바일 플랫폼 업체들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현재 가사서비스 관련 모바일 앱은 ‘대리주부’ ‘미소’ ‘홈마스터’ ‘당신의집사’ ‘청소연구소’ 등 20여개에 달한다. 그동안 가사근로자와 이용자를 중개해주던 오프라인 인력사무소 역할을 중개앱이 대신하게 된 셈이다.

소비자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주부 김소현(36)씨도 최근 중개앱으로 가사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김씨는 “그동안 인력사무소나 지인의 추천을 통해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는 탓에 일하러 오신 다음에야 그분의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면서 “중개앱을 사용하니 가사근로자의 경력이나 평점을 미리 보고 선택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비공식적인 구두계약으로 이뤄지던 가사서비스가 양지로 나온 셈이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편리해진 만큼 가사근로자의 처우도 개선됐을까. 어찌 된 일인지 이들의 처우는 오히려 뒷걸음질했다는 목소리가 많다. 안창숙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이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기존 4시간, 8시간으로 나뉘던 근무시간이 2시간, 3시간으로 파편화되고 업체 간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서 시간당 단가는 더 낮아졌다. 여기에 플랫폼 업체가 가져가는 수수료율이 기존 인력사무소 대비 높다. 카드 결제 수수료까지 더해지면서 가사근로자의 수입은 오히려 낮아졌다.” 

‘이모님’ ‘파출부’… 가사근로자 

이 때문인지 가사근로자 중엔 중개앱을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하길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부 오현서(34)씨는 “집에 오신 가사근로자 분들 중엔 수수료 부담이 크다며 개별적으로 불러주길 원하시는 분들이 많다”면서 “3시간 이용하고 4만3000원가량을 결제했는데 실제로 받으시는 금액은 3만4000원에 불과하더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인력중개소의 수수료가 10%대인데, 플랫폼 업체의 수수료는 평균 15~17%가량이다”면서 “카드 결제 수수료 등을 더하면 20% 이상을 떼어가는 셈이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사근로자를 근로기준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오는 게 먼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가사근로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참고: 근로기준법 제11조 제1항은 가사 사용인은 근로기준법의 대상이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당연히 최저임금이나 퇴직금을 보장받을 수 없고, 4대보험 가입도 할 수 없다. 

가사근로자 중에 취약계층인 50~60대(평균 연령 57세) 여성이 많고, 월평균 임금이 60만원(통계청ㆍ2014년)에 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창숙 이사장은 “사실상 일용직이다 보니 이용자가 ‘오지 말라’고 하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면서 “일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산재 처리는커녕 일자리를 잃고 생활고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가사근로자 처우를 개선할 관련 법안 3건은 국회 계류 중이다.[사진=뉴시스]
가사근로자 처우를 개선할 관련 법안 3건은 국회 계류 중이다.[사진=뉴시스]

정부도 이같은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내 세부과제로 ‘가사ㆍ돌봄 서비스의 공식화(2017년 법제화 추진)’를 명시했다. 이에 발맞춰 고용노동부는 같은 해 ‘가사근로자의고용개선등에관한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고, 근로자에 대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국회에선 지난해 4월 이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서형수 의원(더불어민주당), 이정미 의원(정의당)이 대표 발의한 관련 법안(가사근로자의고용개선등에대한법률안)도 모두 계류 중이다. 이들 법안은 20대 국회 종료와 폐기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관련 소위에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등 굵직한 사안이 많다 보니 가사근로자 관련 법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결국 가장 취약 계층을 보호할 법안이 가장 후순위로 밀린 셈이다.


시장은 커지는데 처우는 악화 

그나마 눈에 띄는 변화는 지난해 11월 ‘대리주부’를 운영하는 홈스토리생활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규제샌드박스(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통과해 가사근로자 1000명을 직접 고용하게 됐다는 점이다. 

향후 홈스토리생활은 가사근로자 중 희망자 1000명을 직접 고용하고 4대보험 가입, 퇴직금 지급 의무를 지키게 된다. 다만 휴게ㆍ휴일ㆍ휴가는 당사자 간 논의를 거쳐 탄력적으로 보장할 방침이다. 그럼에도 1000명 안에 들지 못하는 가사근로자는 34만명(국회 예산정책처ㆍ2017년 기준)에 달한다. 가사근로자는 언제쯤 ‘그림자 노동’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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