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는 대한민국의 민낯

아주 쉬운 예를 가정해보자. 사람들에게 미세먼지가 ‘심각하면’ 마스크를 쓰라고 했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이 늘었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샀다. 공급량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심각해도’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고 말을 바꿨다.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바뀐 건 ‘상황’밖에 없었다. 이처럼 정부 정책의 ‘기준’이 흔들리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지금이 딱 그렇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기준 없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취재했다. 

정부가 확실한 기준을 세워두지 않고 마스크 정책을 펼친 까닭에 온 국민이 마스크 대란에 시달려야 했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확실한 기준을 세워두지 않고 마스크 정책을 펼친 까닭에 온 국민이 마스크 대란에 시달려야 했다.[사진=연합뉴스]

“국민들은 정부의 대응을 믿고 위생수칙을 지키면서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일상생활로 복귀해 달라. 경제 회복에 큰 힘이 될 것이다.” 2월 18일 국무회의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였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정부가 나서 줄일 테니 일상을 찾으라는 거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계산은 빗나갔다. 코로나19 쇼크는 한국 경제를 강타했다. 경제주체의 활동은 멈췄다. 공장은 가동을 중단했고, 전국 곳곳의 시설이 폐쇄됐다. 출근이나 등교는 물론 종교 활동이나 사적인 모임도 ‘일시 정지’ 상태에 돌입했다. 12일 오후 중엔 유가증권시장마저 잠시 멈췄다. 코스피200선물가격이 5%대까지 급락하자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그러자 국민의 불안감과 사회적 혼란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간단한 이유였다. “정부의 대응을 믿어달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의 대응과 위생수칙엔 ‘기준’이 없었다. 마스크 사례를 보자. 확산 초기 정부는 “높은 등급의 보건용 마스크를 일회용으로 써라”고 권고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낮은 등급의 마스크도 괜찮다” “일회용 마스크를 재사용해도 괜찮다”로 지침을 바꿨다.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을 둔 변경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구하려는 줄이 장사진을 이루자 “양해해 달라”며 꺼낸 고육지책이었다. 

격리해제 기준도 무너졌다. 방역당국은 그동안 감염 증상이 사라진 뒤 24시간 간격으로 실시하는 두번의 유전자증폭(PCR) 검사에서 모두 ‘음성’이 나오면 격리해제를 해왔다. 하지만 3월 2일부턴 검사 결과와 관계없이 증상이 호전되면 퇴원시켰다. 입원치료를 받던 환자가 퇴원하면, 부족한 병상을 늘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에서였다. 하지만 이 역시 코로나19의 병리적 특성을 감안한 조치는 아니었다. 

교육부 역시 믿음을 주지 못했다. 3주간 휴업하는 유치원의 수업료 반환 이슈를 둘러싼 혼선은 대표적 사례다. 10일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휴업은 수업료 반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다 돌연 “3주간 수업을 못 한 것에 대해선 수업료를 반환해야 한다”면서 “수업료와 기타 부분을 구분해 기준과 지침을 정하겠다”고 답했다. 교육현장에서 일대 혼선을 빚자 유 부총리는 그날 저녁 “수업료를 반환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게 아니다”면서 다시 정정했다. 

사소한 위생용품 시장의 룰도 못 세우고, 방역대책에선 헛발질을 하는데 출구전략을 제대로 세울 리 없었다. 소상공인 지원정책을 보자. 정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마련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에 소상공인 지원 재원 2조4000억원을 포함했다. 이중 긴급경영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융자(대출)에 책정된 자금이 전체 절반을 넘는 1조2200억원이었다. 

혼란에 빠진 마스크 시장

문제는 실효성이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추경 발표에 앞서 중기벤처부가 ‘경영 애로 자금’ 대출 지원을 발표했다. 하지만 상당수 소상공인이 혜택을 못 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또 소상공인에게 대출해주겠다고 나섰다. 결과가 뻔하지 않은가.” 중기벤처부 대출 지원책의 성과가 어떻기에 이런 반응을 내놓은 걸까. 

3월 10일 기준 중기벤처부 정책자금의 신청 건수는 총 11만988건이었지만, 실제 집행된 건 1만217건으로 전체의 9.2%에 불과했다. 지금도 신청이 몰려 대출을 받기까지는 2~3개월이라는 기간이 걸릴 전망이다. 돈줄이 말라 가는데 현장에선 기존 대출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도 쏟아지고 있다. 

오동윤 동아대(경제학) 교수는 “진짜 경영난을 겪는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는 기준이라면 대책의 대부분을 대출에만 몰리게 하진 않았을 것”이라면서 “현장과 괴리된 정책 담당자들의 ‘탁상공론’의 결과”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기준이 무너지면 어떤 정책이든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을 하면 되고 안 되는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동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부회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기준이 없으면 정부 정책도 제각각이거나 서로 충돌한다. 자영업자를 대하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경제부처는 가계부채가 커질까 무서워 가계대출을 죈다. 반면 중기벤처부와 지자체는 창업을 독려한다. 한편에선 정책자금을 투입해 자영업자를 늘리면서, 다른 쪽에선 가계대출을 옥죄어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는 꼴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사실 정부가 확고한 기준을 세우지 못해 시장에 혼란만 안긴 사례는 숱하게 많다. 국회는 모빌리티 서비스인 ‘타다’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지난 6일 ‘여객운수법 개정안(타다금지법)’을 통과시켰다. 앞서 2월 19일 법원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타다 모기업 쏘카의 이재웅 대표와 타다 운영사 VCNC 박재욱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타다 서비스를 두고 “불법 콜택시 아닌 합법적 렌터카”라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법 통과로 타다는 사실상 서비스 운영이 어려워졌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지 2주일여 만에 국회가 이를 ‘불법’으로 뒤집은 셈이다. 이를 두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움직임을 무작정 차단하는 조치”란 비판이 쏟아졌다. 혁신성장을 올해 경제정책의 주요 방향으로 삼겠다는 정부 발표에도 벤처업계가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기준 없는 오락가락 정책

줄곧 법정화폐가 아니라고 강조했던 가상화폐에 돌연 과세를 추진하는 것도 타다의 혼란과 비슷한 사례다. 최근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기엔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분류해 과세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이 담겼다. 3년 전 가상화폐 광풍이 불었던 이후, 이 시장에 특별한 변곡점이 있었던 게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은 없다. 누군가는 불만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확실한 기준이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준은 선명하지 않았다. 하기야, 이게 문재인 정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탓에 이 문제가 두드러지게 표출됐을 뿐, 다른 정부들도 상황 따라 권력 따라 금력金力 따라 오락가락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린 이런 상황을 ‘고질적 문제’라고 부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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