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마스크 활용 기준 

“가급적 KF94 마스크를 쓰고, 재사용은 하지 말라” “KF80 마스크나 방한용 마스크도 괜찮다” “면 마스크 역시 효과가 있고, 일회용 마스크는 재사용해도 된다”. 44일 동안 쏟아진 정부의 마스크 활용 지침이다. 수시로 가이드라인이 바뀌니 마스크를 어떻게 써야 진짜 감염 억제 효과가 있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과학적 검증이나 실험 절차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마스크 가이드라인 변경에 숨겨진 문제점을 취재했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마스크 사용 지침 기준에 시민들이 혼란에 빠졌다.[사진=연합뉴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마스크 사용 지침 기준에 시민들이 혼란에 빠졌다.[사진=연합뉴스]

# 10일 오전 서울 양재역 인근의 한 약국 앞엔 우산 쓴 시민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거기엔 출생연도 끝자리가 ‘7’이었던 A씨도 있었다. A씨는 “하나로마트에서 구입할 때보단 줄이 덜 긴 편”이라면서 “이미 마스크를 여러개 사두긴 했지만 하루에 1장씩 쓰다 보니 항상 모자라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정부가 발표한 “건강한 사람에 한해서 마스크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말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 “비말(침방울)에 의해서 감염된다면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어차피 밥을 먹거나 대화할 땐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무엇보다 너무 답답하고 번거롭다.” 직장인 B씨가 밝힌 마스크 미착용 이유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마스크를 꺼내긴 하지만, 지난해 미세먼지 우려 때문에 구입한 제품이었다. B씨는 마스크를 소독해서 재사용 중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도 마스크 다시 써도 된다고 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감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국민마다 대응법이 제각각인 이유는 간단하다. 한달 사이 코로나19의 감염예방 필수품이 된 마스크를 둘러싼 정부 지침이 180도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4명에 불과했던 1월 27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19의 대응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감염예방 조치로는 ‘보건용 마스크 착용하기’를 내걸었다. 

이틀 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구체적인 활용법을 제시했다. “감염증 예방을 위해선 KF94ㆍKF99 등급의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KF 뒤의 숫자는 입자 차단 성능을 의미하는 것이다. KF94ㆍ KF99는 최고 등급의 차단 성능을 갖춘 ‘보건용 마스크’였다. “재사용을 권고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함께 언급했다. 마스크를 장시간 사용하면, 필터 사이에 이물질이 끼고 내부에 습기가 차 차단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열흘도 안 된 2월 5일엔 새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병원 근무자는 KF94와 KF99 보건용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지만, 일반 시민은 KF80이나 방한용 마스크를 사용해도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기존 식약처의 브리핑보다 완화된 내용이었다. 

마스크 재사용 안 된다더니 …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성이 낮아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매점매석 행위 등 때문에 KF94ㆍKF99 등급의 마스크가 품귀현상을 빚은 탓이었다. 쉽게 말해, KF94ㆍKF99 등급의 마스크를 시중에서 찾기 어렵자 정부가 급작스럽게 KF80 마스크나 방한용 마스크의 사용을 권고한 셈이었다. 이때부터 “감염증 예방을 위해선 KF94ㆍKF99 등급의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일주일 뒤인 2월 12일 식약처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 사용 권고사항’을 발표했는데, 이번엔 보건용 마스크(KF80 이상) 착용이 필요한 경우를 ‘전파 위험이 높은 직업군’ ‘감염 의심자를 돌보는 의료 종사자’ ‘호흡기 증상이 있는 자’ 등으로 한정했다. 아울러 혼잡하지 않은 야외나 개별공간에선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KF80 공급량이 부족해지자 또다시 말을 바꾼 것이다. 

하지만 이 내용마저 20일 만에 또 뒤바뀌었다. 3월 3일 식약처는 기존 권고사항을 개정한 ‘마스크 사용 지침(비상상황에서의 한시적 지침)’을 발표했다. 핵심은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고, 보건용 마스크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침에 따르면 보건용 마스크를 일시적으로 깨끗하게 사용한 경우라면 동일인에 한해 재사용할 수 있다. 감염 우려가 적다면 필터가 없는 면 마스크 착용도 권장했다. 

문제는 사용지침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 때 과학적 실험이나 검증 절차를 거쳤느냐는 점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권고사항은 처음부터 전파상황에 따라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공지했다”면서 “자체 실험을 한 건 아니지만 면 마스크도 충분히 비말 감염 차단 효과가 있고, 국내 기준과 비슷한 보건용 마스크를 재사용할 수 있다는 연구가 외국에선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적ㆍ의학적 근거가 뚜렷하지 않은 채 바뀐 지침을 국민들이 따를 리 없었다. 1인당 마스크 구매가 일주일에 2개로 제한한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지금도 마스크 구입 열기는 뜨겁다. 마스크 전문가로서 미국 산업위생기술사(CIH) 자격을 보유한 손오택 파이브테크놀로지스 대표의 지적을 들어보자.
 
“사태 초기부터 마스크 품귀 현상은 예상됐던 일이었다. 언제 써야 하고, 얼마 동안 착용하는 게 좋을지를 두고 디테일한 안내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감염 확산 억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외국과 국내 활용 사례를 참고해 세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어야 했다. 명확한 근거를 들고 재사용을 권했다면 국민들이 지금 같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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