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대란 빛과 그림자

지난해 3월 국내 주식시장에선 감사대란이 벌어졌다.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비적정 판정을 받은 기업들이 줄줄이 거래정지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감사대란은 올해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가 도입되는 등 감사 기준이 더 강화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감사대란이 긍정적인 효과만 불러일으키느냐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감사대란의 빛과 그림자를 분석했다. 

2015년 터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이후 회계감사 기준이 강화됐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3월 22일 국내 주식시장이 큰 충격에 빠졌다. 아시아나항공이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의견’을 받았다고 공시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감사보고서에서 감사 한정의견을 받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아시아나항공에서 충분하고 적합한 감사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감사한정 의견의 이유로 꼽았다.

[※참고: 회계법인의 주식회사 감사의견은 적정·한정·부적정·의견거절 등 4가지로 나뉜다. 이중 한정·부적정·의견거절은 비적정 의견이다. ‘한정’은 감사범위가 제약을 받거나 재무제표의 표시가 부적정하다고 판단할 때 내린다. ‘부적정’은 재무제표에 영향을 미치는 하자가 중대한 경우, ‘의견거절’은 감사에 제약을 받아 의견표명이 불가능하거나 감사인(회계법인)의 독립성이 부족할 경우 제출한다. 비적정 의견을 받으면 주식거래가 정지된다.] 


감사한정 의견을 받은 아시아나항공의 주식은 지난해 3월 22일부터 25일까지 거래가 정지됐다. 4일 후 감사의견이 적정으로 정정됐지만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그룹 회장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 사건이 시장에 남긴 후유증은 깊었다. ‘감사대란’의 서막이기도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8회계연도 기준 국내 상장법인 2230곳 중 43곳이 비적정 의견을 받았다. 2017년 32곳 대비 11곳이나 늘어난 수치다. 이는 2015년 대우조선해양의 3조원대 분식회계를 계기로 새 외부감사인법(2018년)이 시행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15년 비적정 의견을 받은 상장법인이 12곳에 불과했던 걸 감안하면 4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그렇다면 ‘감사대란’은 올해도 재연될까. 회계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무엇보다 지난해 11월부터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가 도입되는 등 감사 기준이 더 강화됐다.[※참고: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는 6년 연속 감사인(회계법인)을 자유선임한 기업에 향후 3년간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감사인을 선임하도록 하는 제도다. 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감사품질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 이후 ‘대충 감사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감사대란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최근 감사인이 ‘의견거절’을 통해 비적정 의견을 제시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도 반복되는 감사대란

실제로 2018회계연도 감사에서 비적정 의견을 받은 기업 43곳 가운데 ‘회계기준 위반’을 지적받은 곳은 없었다. 43건 중 35곳은 ‘의견거절’로 비적정 의견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인 교체 후 책임문제가 생길 수 있는 지정기업의 경우엔 작은 문제만 발견돼도 감사의견을 거절하는 사례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의견거절이 비적정 의견을 내는 주요 수단이 됐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비적정 의견을 낼 때 예전만큼 무거운 책임이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3월 금융당국은 비적정 의견을 받은 기업이 실질심사 없이 상장폐지되던 기존 제도를 개선했다. 당해 연도 비적정 의견을 받은 기업의 상장폐지 여부를 다음 연도 감사의견을 기준으로 결정하게 한 것이다. 개선기간도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했다. 비적정 의견이 가파르게 늘어나자 금융당국이 ‘완충장치’를 만든 셈이었다.

익명을 원한 대형회계법인 회계사는 이렇게 말했다. “비적정 의견이 곧장 상장폐지로 연결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었다. 소액주주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적정 의견을 내도 ‘소명단계’를 거칠 수 있기 때문에 회계사로선 부담이 덜해졌다. 의견거절 등을 통해 비적정 의견을 내는 회계사가 늘어난 이유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감사대란이 재연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감사대란의 효과다. 한편에선 기업의 회계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면서 긍정론을 편다. 하지만 의견거절을 통한 비적정 의견을 남발해 기업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기업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감사비용은 이미 증가세를 띠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회계감독 선진화 방안’ 자료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위 100대 기업 중 2019회계연도 감사 계약을 맺은 상장사 107곳의 평균 감사보수액은 6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52% 증가한 수치다.

크게 늘어난 회계법인 감사보수 


전체 상장사의 평균 감사보수도 1억6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8.7% 늘었다. “감사인의 책임과 역할이 이전보다 커졌기 때문에 보수 수준이 상승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당장 비용이 늘어나는 건 기업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적정 의견이 기업을 곧바로 상장폐지하는 건 아니지만 주식거래가 정지되고 기업 평판이 훼손된다는 점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불투명한 회계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예전부터 있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새 외감법이 기업의 회계투명성 확보로 이어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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