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 삼성 준법감시위 뜯어보기

지난 2월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을 맡고 있는 재판부가 권고해 설치한 것인데, 이 부회장의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다. 실제로 재판부가 언급한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엔 “준법감시제도가 양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제8장을 이번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든 게 이재용 부회장의 감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든 게 이재용 부회장의 감형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5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회는 총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대법관 출신의 한 로펌 대표 변호사가 위원장을 맡고, 삼성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 왔던 5명의 인사가 외부위원 자리를 채웠다. 내부위원은 언론인 출신의 대외협력(CR) 담당 임원이 맡았다. 위원회 설치와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위원회를 지원하는 사무국도 만들었다. 사무국장은 위원장과 같은 로펌에 있는 변호사가 맡았다.

그런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란 무엇인가. ‘준법감시遵法監視’는 법을 지키는지 주의 깊게 살피겠다는 말이다. 그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누구를 감시할까. 그게 참 애매하다. 위원회에 따르면 감시대상은 삼성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와 임직원들의 불법행위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는 이미 준법감시 조직이 있다. 더구나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기존에 있던 감사위원회나 준법지원인과 달리 법적 근거가 없다. 삼성 계열사들과 협약을 맺고 있는 일종의 자치기구에 불과하다. 

모든 계열사와 협약을 체결한 것도 아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와 협약을 맺은 계열사는 7곳뿐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위반해 7500만 달러(약 890억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삼성중공업은 빠졌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공장 마룻바닥을 뜯어내고 회사 서버와 노트북을 파묻은 삼성바이오로직스도 협약을 맺지 않았다. 물론 삼성은 향후 협약대상 계열사를 늘리겠다고 설명했지만 뭔가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한 이유가 따로 있다는 지적도 많다. 바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다. 재판 과정부터 살펴보자.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뇌물을 공여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353일간 수감됐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로 감형 받고 석방됐다.

 

하지만 상황이 다시 바뀌었다. 대법원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준 말 세마리(34억원 상당)와 영재센터 후원금(16억원 상당)을 뇌물로 판단했다. 이 부회장의 뇌물금액이 기존 36억원에서 86억원으로 늘면서 다시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한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재판부는 첫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과 미국 기업들의 실효적 감시제도를 참고해 그룹 내부에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의 내용은 쉽게 말해 다음과 같다. “조직(기업)이 평소에 컴플라이언스 활동을 열심히 했다면 양형에 고려하겠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가 재판 결과와 무관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문제가 된 건 올해 1월 열린 4차 공판에서 재판부의 말이 바뀌면서다.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이 부회장의 재판 양형과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함으로써 이 부회장의 양형이 감형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국회의원들과 노동시민단체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엄정한 판결로 정경유착을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483명의 지식인들은 공정하게 재판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지식인들은 선언문을 통해 “법경유착法經癒着으로 급조된 준법감시위원회를 해체하고, 위원들은 자진해서 사퇴할 것”을 권고했다. 

삼성 특검은 재판부에 기피忌避 신청을 냈다. 기피 신청은 법관이 불공정하게 재판할 염려가 있을 때 법관을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검찰이 재판부에 기피 신청을 내는 일은 드물다. 그만큼 현 재판부가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이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엔 “준법감시위원회 설치가 양형기준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로썬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한 게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따져봐야 할 게 있다.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가 제시한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과 관련해서다. 

첫째는 미국 연방양형기준을 기업이 아닌 개인의 범죄에 적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의 제목이나 서설을 살펴보면 개인보다는 조직과 관련한 양형기준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조직뿐만 아니라 대표자나 대리인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둘째는 범죄행위 이후에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해도 감형해 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 연방양형기준 제8장에서는 “범행 당시 준법감시제도를 운영하고 있었을 경우 회사의 과실 점수를 깎아준다”고 정하고 있다. 사후 도입시에도 과실을 덜어준다는 규정은 없다. 재판 중에 회사가 도입한 준법감시제도 때문에 개인(오너)이 감형을 받는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은 이유다.

미국과 한국의 사법제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특히 기업의 범죄능력을 인정할 것인지를 두고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태도가 다르다. 미국은 기업의 범죄능력을 인정하지만 대륙법을 따르는 한국은 인정하지 않는다. 체계와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른 미국법의 양형기준을 이재용 부회장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법, 한국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재판부가 미국 연방양형기준을 언급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교하고 촘촘하게 다듬어진 미국 연방양형기준을 참고해 국내법의 양형기준을 개선해 나가는 발판이 될 수 있어서다. 아울러 기업들의 자발적인 컴플라이언스 활동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양국의 법체계가 다르다는 걸 간과한 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자의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가 있다. 미국 연방양형기준이 정하고 있는 요소들이 변질되지 않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양형기준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정리=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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