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重 실적과 탈원전 정책

정부의 탈원전ㆍ탈석탄 정책이 두산중공업의 경영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일 두산중공업이 강도 높은 자구안을 꺼내들며 비상경영의 신호탄을 쏜 게 불을 지폈다. 과연 사실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두산중공업의 실적과 탈원전 정책의 흐름을 비교해봤다. 

경영 위기에 시달리는 두산중공업이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휴업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사진=연합뉴스]
경영 위기에 시달리는 두산중공업이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휴업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사진=연합뉴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두산중공업의 위기를 둘러싼 진영별(보수ㆍ진보) 반응이 민감하다. 이유가 있다. 두산중공업의 주요 사업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정책은 다른 말로 탈脫원전ㆍ탈석탄 정책으로 불린다.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게 골자인데, 찬반양론이 매우 치열했고, 지금도 그렇다. 

공교롭게도 두산중공업의 핵심 사업이 화력발전과 원전이다. 그중에서도 원전에 들어가는 원자로ㆍ증기발생기 등 주기기를 만드는 곳은 국내에서 두산중공업이 유일하다. 두산중공업의 경영 위기가 두드러질 때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격화하는 이유다. 정부가 원전 비중을 줄이고 있는 탓에 두산중공업의 실적이 악화했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정말 두산중공업이 위기를 맞은 게 탈원전 정책 때문일까. 지난해 두산중공업이 과장급 이상 직원 2400여명의 순환휴직을 실시하고 임원 20%를 감원하며 고정비를 줄일 때도 한차례 “두산중공업의 숨통을 옥죄는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라”는 주장이 쏟아졌다.

당시 더스쿠프(The SCOOP)는 “두산중공업의 위기는 탈원전 때문만이 아니다”고 결론내렸다(더스쿠프 통권 370호 ‘두산중공업은 정말 탈원전 탓에 어려워졌나’ 기사 참조). 이유는 간단했다. 두산중공업의 실적 악화는 분명 탈원전 정책 이전에 시작됐다. 그 원인 역시 두산중공업 매출의 70%가량을 차지하는 화력발전시장의 침체에 있었다. 

논쟁이 끊길 리 없었다. 양쪽으로 나뉜 진영에 ‘두산중공업’은 좋은 싸움터였다. 지난 10일 두산중공업이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한 휴업을 검토하려고 한다”는 내용의 노사협의요청서를 노조에 전달한 이후엔 논쟁이 다시 본격화했다. 회사 측이 명예퇴직 신청을 받은 지 한달이 채 안 된 상황에서 내린 비상조치였기 때문에 갑론을박이 뜨겁게 진행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서 “두산중공업의 위기는 수년간 지속된 세계 발전시장 침체 탓”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부메랑만 날아왔다. 지난 18일 친親원전 성향의 교수 255인으로 구성된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성명서를 통해 이렇게 비난했다. “두산중공업의 붕괴가 경영진의 오판 때문이라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장은 억지ㆍ궤변이다. 중단된 신한울 3ㆍ4호기의 공사를 즉각 재개해야 한다.”

말을 아껴왔던 두산중공업도 탈원전 정책이 경영 위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인정했다. 두산중공업은 앞서 노조에 보낸 노사협의요청서에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됐던 원자력ㆍ석탄화력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약 10조원 규모의 수주물량이 증발해 경영위기가 가속화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원전 비중 축소를 골자로 하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을 꺼내들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원전 비중 축소를 골자로 하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을 꺼내들었다.[사진=연합뉴스]

두산중공업의 주장은 사실일까 변명일까. 쏟아지는 지적처럼 두산중공업의 위기를 부른 건 탈원전ㆍ탈석탄 정책일까. 다시 한번 살펴보자. 최근 10년 새 두산중공업의 실적(별도 기준)이 가장 좋았을 때는 2012년이다. 이때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조6726억원, 4774억원에 달했다. 

반면 2018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4조1017억원과 1846억원으로 각각 46.5%, 61.3% 쪼그라들었다. 당기순손실은 2060억원에서 7251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두산중공업의 발전 부문 공장 가동률이 같은 기간 86.8%에서 64.2%로 줄었다는 걸 감안하면 일감도 대폭 감소했다.

두산중공업의 위기를 부른 게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면 실적이 악화하고 가동률이 줄어든 원인도 ‘탈원전 정책’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기간 ‘탈원전 정책’이 어떻게 추진됐는지를 찾아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탈원전 정책’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15년 7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박근혜 정부)이 2017년 12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문재인 정부)으로 넘어오면서 신규 원전 6기(신한울 3ㆍ4호기, 천지 1ㆍ2호기 외 2기)의 건설 계획이 무산됐고, 석탄화력발전소 6기(신규 발전소 2기ㆍ기발전소 4기)는 LNG로 전환됐다.

두산중 위기 원인 복합적으로 따져야

언뜻 2017년 12월 탈원전 정책의 본격화가 두산중공업의 실적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참고 : 국내에서 짓는 한국형 원전엔 두산중공업의 주기기가 들어간다. 두산중공업은 주기기 1기를 팔아 약 1조원을 번다. 원전이 6기면 6조여원이다. 여기에 원전을 건설하는 데도 참여하고, 석탄화력발전도 수주했다고 한다면 실제 피해금액은 적지 않다. 두산중공업이 무산된 프로젝트 규모가 10조원여에 달한다고 밝힌 이유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이 실시되지 않았더라도 두산중공업이 얻었을 이익은 제한적이었을 공산이 크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신한울 3ㆍ4호기는 2022~2023년, 천지 1ㆍ2호기는 2026~2027년 준공될 예정이었다. 나머지 2기는 아예 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원전건설 기간은 10년가량이다. 여기서 환경영향평가 등을 빼면 순수한 건설기간은 5~6년이다. 환경영향평가 등이 끝나야 계약을 체결한다는 점을 고려했을때 매출이 발생하는 시기는 준공일 기준 5~6년 전이다. 이를 감안하면 두산중공업은 일러야 2016년부터 신한울 3ㆍ4호기를 통해 총 2조여원의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 한번에 매출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진행률에 따라 단계적으로 발생한다. 

이런 상황은 두산중공업이 ‘원자력ㆍ석탄화력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약 10조원 규모의 수주물량이 증발해 경영위기가 가속화했다’는 주장을 무너뜨린다. 두산중공업이 경영위기에 놓인 게 탈원전 정책 탓으로 몰아세우기 어렵다는 얘기다. 

혹자는 2016년부터 총 2조여원의 매출이 발생했다면 두산중공업이 경영위기를 겪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반론을 편다. 일견 설득력이 있지만 오류가 있다. 이 주장이 옳다면 두산중공업은 ‘원전 외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더구나 두산중공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5%에 불과하다. 두산중공업의 위기가 원전이 아닌 ‘다른 사업’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물론 장기적으로 봤을 땐 탈원전 정책이 두산중공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공산은 없지 않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산중공업은 2년에 2기꼴로 원전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두산중공업의 원전 관련 해외 실적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탈원전 정책’이 가속화할수록 일감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래 리스크다. 두산중공업의 현재 위기가 오롯이 탈원전 정책 탓이 아니라는 건 ‘정책의 흐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위기를 겪고 있는 이유를 단순하게 봐선 안 된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세계 발전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든 것도 맞고, 두산건설ㆍ두산인프라코어 등 자회사 부실을 막기 위한 재정 지원이 원인이 됐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고 탈원전 정책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모든 요인을 복합적으로 따져봐야지 일부 요인만 부각해서 정쟁의 도구로 악용해선 안 된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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