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조주빈의 서사, ‘피해자’를 지웠다
가해자 조주빈의 서사, ‘피해자’를 지웠다
  • 김정덕·김다린 기자
  • 호수 382
  • 승인 2020.03.30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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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의 말과 리스크

“학점은 4.17이었다” “학보사 편집국장을 했는데, 성실했다”…. 생각을 정리해보자. 이게 조주빈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범죄자는 얼굴에 ‘나 범죄자요’라고 쓰고 다닌다는 건가. 큰 사건이 터지면 미디어는 ‘가해자’를 쫓는다. 그의 삶을 추적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짚어보겠다는 취지에서다. 의도는 알겠지만 부작용이 있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는 앵글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끔찍한 조주빈 사건, 우린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 더스쿠프(The SCOOP)가 조주빈의 말과 서사, 그 속에 숨은 리스크를 진단했다. 

언론들은 조주빈의 서사를 읊어댔다.[사진=연합뉴스]
언론들은 조주빈의 서사를 읊어댔다.[사진=연합뉴스]

# 3월 23일 오전 8시. 종로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낸 조주빈은 스스로를 ‘악마’라고 지칭하면서 이런 말을 내뱉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줘서 고맙다.” 혐의를 인정하는가, 범행을 후회하지 않나, 피해자들에게 죄책감은 없는가 등의 취재진의 질문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희대의 범인이 잡힐 때면 늘 그렇듯, 조주빈의 말은 미디어의 ‘헤드라인’으로 뽑혔고, 일부 미디어는 그의 ‘악마 같은 삶’에 천착했다. “학점은 4.17이었고, 장학금을 받았다” “학보사 편집국장을 했는데, 성실하고 완벽주의를 추구했다” “조용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봉사활동도 다녔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서사敍事’에 밴드 자우림 보컬 김윤아는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3월 23일 “n번방 가입자 전원 처벌, n번방 이용자 전원 신상공개 원합니다”는 청원에 동참을 촉구하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

뼈를 때리는 말이었다. 가해자의 서사가 풀리기 시작하면 피해자는 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악마’에 집중하는 순간 ‘악마가 저지르는 일’이 당연시되듯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꼬집었다. “악질 범죄자니까 신상을 공개하라고 했지, 학교 때 성적이 어땠는지, 평범했는지, 착했는지 알고 싶다고 했는가.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다. 조주빈으로 몰아가서 n번방에서 탐욕을 챙겼던 26만명의 신상공개 요구를 흐리지 마라.” 

# 경기도 평택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주용 선생님은 영화 ‘조커’를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 조커는 그가 왜 범인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환경에 동조해요. 그러면서 조커로부터 피해를 받은 사람들을 앵글 밖으로 내보내 버리죠.”

그는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했을 때의 경험을 덧붙였다. “일본 기자들도 그랬어요. 사회의 기둥뿌리를 뽑아놓을 만한 대형사건이 터져도 기자들은 피의자의 주변으로 파고들면서 주민이나 가족 등의 인터뷰를 땄죠. 내용은 한결같았어요. 인사 잘하고, 평범하고, 착하고 등등. 그래서 어쩌라는 거죠? 가해자의 서사를 만들면 또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나요?” 

아무짝에 소용없는 가해자의 서사 

신창원은 자신의 마음에 악마가 생긴 원인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너 착한 놈이다’하고 머리 한번만 쓸어 주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이 새끼야, 돈 안 가져 왔는데 뭐 하러 학교 와, 빨리 꺼져’하고 소리쳤는데 그때부터 마음속에 악마가 생겼다(엄상익 변호사의 「신창원 907일의 고백」 중).”

의문이 생긴다. 그럼 신창원에게 좋은 선생님이 있었다면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는 또다른 핑곗거리를 찾으면서 자신의 범죄행각에 ‘변명 프레임’을 덧씌웠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든 가해자의 서사 따윈 중요하지 않다. 가해자가 조용하든 친절하든 똑똑하든 그건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이주용 선생님은 “지금이라도 피해자에게 앵글을 돌려야 한다”면서 “2차 가해는 피해자를 앵글 밖으로 보내는 순간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어떤가. 우린 이런 잘못을 수차례 저지르지 않았는가. 시계추를 돌려 2018년 말. 세상을 뒤흔든 희대의 사건이 터졌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었다. 잔혹한 칼부림에 우리는 분기를 감추지 못했다. 대중의 초점은 김성수의 잔혹한 범행에 맞춰졌다. 그의 삶과 병력病歷, 심지어 그의 문신에도 ‘서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김성수란 유형의 사람 탓에 어떤 피해가 발생해왔고, 또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은 의미 있게 펼쳐지지 않았다. 실제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이후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은 대부분 낮잠을 자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살인, 어린이집 교사의 유아 폭행과 살인, 연쇄살인마의 성폭행과 살인 등 숱한 광기狂氣 사건이 터졌지만 가해자에만 집중하는 우를 종종 범해왔다. 가해자를 향한 흥분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이유다. 

조주빈 아닌 피해자를 봐야 

조주빈 사건은 논의해야 할 게 많다. 디지털 공간에서 보란 듯이 ‘성범죄’를 저지른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곳에서 마약이나 무기를 팔려 했던 것도 꼬집어 봐야 한다. 무엇보다 논의의 중심에 조주빈이 아닌 피해자를 놔야 한다. 피해자는 왜 조주빈의 덫에 걸릴 수밖에 없었고, 무슨 이유로 세상을 향해 ‘살려 달라’고 외치지 못했는지, 이런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얘기해야 한다는 거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공분보다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그래야 또다른 방식의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는다.” 

김정덕ㆍ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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