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는 왜 찬성표 던졌을까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안이 주주총회를 통과했다. 국민연금과 의결권 자문회사 ISS가 연임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손 회장의 연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선 우리금융 최대주주 예금보험공사의 찬성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처분을 금융위가 막아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공공기관인 예보는 금융위의 영향을 받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손태승 회장 연임 속 갈등을 취재했다. 

DLF 사태로 중징계 처분을 받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연임에 성공했다.[사진=뉴시스]

벼랑에서 살아 돌아왔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끝내 연임에 성공했다. 3월 25일 열린 우리금융 정기주주총회에서 손 회장의 연임안이 통과돼 2023년까지 우리금융 회장직을 이어가게 됐다. 이날 주총이 마무리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손 회장의 연임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1월 30일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책임을 물어 손 회장에게 중징계(문책 경고)를 내렸다. 중징계를 받으면 향후 3년간 금융권에 취업할 수 없다. 손 회장의 입장에선 연임에 빨간불이 켜졌던 셈이다. 하지만 우리금융은 금융위원회의 기관 제재 의결을 하루 앞둔 3월 3일 이사회를 열고 손 회장의 연임안을 주총 안건으로 상정하는 등 연임을 위한 절차를 발 빠르게 밟았다.

우리은행 징계가 확정된 닷새 뒤인 3월 9일엔 금융당국의 중징계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하면서 연임의 길이 열렸다. 우리금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과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회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가 손 회장의 연임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주총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금융정의연대·경제개혁연대 등의 시민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우리금융이 DLF 사태·라임펀드 사태 등으로 금융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힌 손 회장의 재선임을 강행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손 회장이 DLF 사태로 회사와 금융소비자에게 큰 손해를 입힌 건 사실”이라며 “중징계 처분에도 연임의 뜻을 굽히지 않은 손 회장과 우리금융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누가 손 회장을 밀어줬느냐다. 손 회장의 연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우리금융의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17.25%)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과점주주 사외이사의 CEO 선임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후보 선임 단계에서도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며 “과점주주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손 회장 연임 안에 찬성했다”고 밝혔지만 뒷말이 무성하다. 금융위원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예보가 찬성표를 던진 것에 금융위의 힘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경제개혁연대도 논평을 통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예보의 의결권 행사 방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며 “예보 소속 이사가 (이사회에서) 손 회장의 재선임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알려졌을 때 의사결정의 이유와 근거를 묻고 주총에서 의결권이 제대로 행사될 수 있도록 조치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중징계에도 연임 성공


결론적으로 예보의 찬성으로 금융회사를 관리·감독하는 두 기관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 셈이 돼버렸다. 금감원이 손 회장에게 내린 중징계 처분을 금융위가 없애준 꼴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과 금융위의 갈등설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금감원은 손 회장 중징계 결정에서 금융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자본시장법 대신 금감원장 전결로 처리할 수 있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을 적용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선 ‘금융위 패싱’ 논란이 일었다. 금융위는 금감원이 건의한 우리은행(230억원)과 하나은행(260억원)의 과태료를 각각 190억원, 160억원으로 대폭 낮추면서 갈등설을 키웠다. 이후 은 위원장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서로 힘을 합쳐 나가야 하는 파트너다(2월 14일 ‘거시경제금융회의’ 참석 후)”는 말로 진화에 나섰지만 갈등설은 확산일로를 걸었다.

사실 두 기관이 갈등설을 빚은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 일도 숱하다. 대표적인 것이 2017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이다. 당시 금감원은 금융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특별감리 결과를 공개했다(2017년 5월 2일). 금융위는 “특별감리 결과가 전례 없이 외부에 사전 공개되면서 시장에 충격과 혼란을 줬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금감원은 “특별감리 공개 여부는 금융위의 승인이 필요 없는 일”이라고 맞받아치며 논란을 키웠다.

2018년 4월 발생한 삼성증권 배당사고에서도 두 기관의 의견은 엇갈렸다. 금감원은 배당사고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금융위는 반대 의견을 냈다. 이밖에도 금융위의 2019년 금감원 예산삭감, 지난해 7월 출범한 자본시장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수사권 마찰 등도 두 기관의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다. 갈등의 연장선상에 손 회장의 중징계 처분도 있는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회사 입장에선 두곳 모두 감독기관인데, 한쪽에선 징계하고 다른 쪽에선 징계의 효력을 무마시킨 게 됐다”며 “시장에선 금융위와 우리금융 사이에 모종의 딜(거래)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격화하는 금감원·금융위 갈등

어쨌거나 손 회장은 예보의 찬성으로 연임에 성공하면서 ‘원님 덕에 나발 분’ 격이 됐다. 그렇다고 손 회장의 앞길이 마냥 순탄한 것도 아니다. 금융그룹 역량 강화를 위한 인수·합병(M&A), 신사업 확장, 지분 매각을 통한 완전 민영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숱한 상황에서 감독기관과의 갈등을 이어가는 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예측할 수 없다. 본안소송 에서 법원이 금융당국의 손을 들어주면 남은 임기를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손 회장은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셈”이라며 “감독기관과의 갈등을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그룹을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송이 진행될 때마다 CEO 리스크가 불거질 것”이라며 “조직 안정을 위해서라는 우리금융의 선택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손 회장이 앞길이 30분 만에 연임이 결정된 주총처럼 순탄할지는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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