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특수와 그림자

몹쓸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자 사람들은 외출을 줄였다. 덕분에 온라인 쇼핑업체는 ‘코로나19’ 특수를 누렸다. 배송을 담당하는 택배업체도 마찬가지였다. 소비자는 편했고, 업체는 배를 불렸다. 그 사이 홀로 사투를 벌인 건 택배기사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감당하기 힘든 물량을 소화해온 이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의 특수를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코로나19 속 택배기사의 눈물을 취재했다. 

택배기사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사진=연합뉴스]
택배기사의 열악한 처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전세계 곳곳에서 ‘사재기’ 조짐이 일었다. 불안감을 느낀 몇몇 사람들은 마트를 찾아가 식료품과 생필품을 쓸어 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국내 대형마트의 매대는 비지 않았다. 공급이 수요를 맞추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해외 마트와는 대조적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클릭 한번이면 쌀부터 생수까지 다음날 배송되기 때문이다. 재택근무 3주 차인 직장인 김세희(30)씨는 이렇게 말했다. “쿠팡·쓱(SSG닷컴)·마켓컬리, 이 세가지만 있으면 밖에 나갈 일이 없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배달 강국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 셈이다. 

그런데 김씨는 얼마 전 머리 한대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지난 12일 40대 택배기사가 새벽배송 도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해당 택배기사는 지난 2월 입사해 1주간 트레이닝을 거친 ‘신입’이었다. 배송현장에 투입된 지는 14일 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밝힌 사망 원인은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가 주된 발병 원인인 것으로 추정됐다. 

김씨는 “그동안 외출을 줄이고 대부분 물건을 온라인으로 주문해 왔다”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온라인 쇼핑을 줄여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뿐만이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에선 쌀처럼 무거운 물건은 주문하지 말자” “생수는 직접 사다 먹자” 등의 게시물이 숱하게 올라왔다. 

해당 사고가 발생한 쿠팡 측은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많이 노력해 왔지만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면서 “안전을 위해 추가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개선대책으론 쿠팡맨이 집합하는 센터마다 안전관리자를 배치하고, 쿠팡맨의 자가격리나 코로나19 확진시 긴급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쿠팡맨을 둘러싼 고질적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쿠팡의 주문량이 급증하면서 쿠팡맨이 배송해야 할 물량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쿠팡맨 1인당 평균 배송물량은 2015년 56개, 2017년 210개, 2019년(8월) 242개로 급증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엔 배송물량이 이보다 더 많아졌다. 3월 11일 A지역 캠프 쿠팡맨의 배송물량은 296개에 달했다. 지난해 여름철 성수기(242개)보다 22%가량 증가한 수치다.

쿠팡 측은 “쿠팡맨에게 배송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일반인 배송 방식인 쿠팡 플렉스 인원을 3배 이상 충원했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김한별 전국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부장은 “A지역의 경우 1주일에 휴게 시간을 한번도 쓰지 못한 쿠팡맨이 22명 중 15명(2019년 3월 기준)에 달했다”면서 “쿠팡맨의 20~30%만이 정규직인 상황에서, 대다수의 비정규직 쿠팡맨은 쉬지 않고 밀려드는 물량을 끊임없이 소화하면서 자신의 효율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밀려드는 택배 물량에 신음하는 건 일반 택배기사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택배 물량이 30~40% 급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업계 1위 CJ대한통운의 1분기 택배 물동량(이하 이베스트투자증권 추정치)은 3억6800만개로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 이 회사의 택배사업 부문 매출액도 21.8% 늘어난 7468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작 그 과실果實을 만들어 내는 택배기사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배송 물량이 쏟아지는 데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피로 누적을 호소하는 택배기사가 많기 때문이다.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은 “택배기사는 기존에도 주6일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해왔다”면서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기사는 노동기본권 적용을 받지 않아 휴식시간이 보장되지 않고 대체인력이 없어 쉴 수도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택배기사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국내 택배기사는 5만여명으로 이들은 월평균 25.6일(이하 한국교통연구원ㆍ2018년 기준), 일평균 12.7시간씩 일하고 있다. 한달 근로시간이 300시간을 훌쩍 넘는 셈으로, 임근근로자의 평균 근로시간(156.4시간)의 두배에 달한다. 

이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건 배송 건당 수수료가 평균 738.5원(2018년 3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국공항항만운송본부 관계자는 “택배업체간 배송 단가 경쟁을 벌이면서 지난 10년간 배송 수수료는 1200원에서 800원대로 되레 낮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CJ대한통운(4.7%)을 필두로 롯데글로벌로지스(2.4%), 한진택배(2.2%) 등 택배회사들이 배송단가를 인상했지만 정작 택배기사의 배송 수수료엔 반영되지 않았다. 김태완 위원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택배기사는 대부분 택배회사가 아닌 대리점과 위탁계약을 맺고 일한다. 대리점이 택배사로부터 받은 택배비에서 대리점 몫의 수수료를 빼고, 택배기사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문제는 대리점이 수수료율을 마음대로 정해도 ‘을’인 택배기사는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19 호황을 누리면서, 택배기사의 수수료는 깎는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한진택배는 3월 25일부터 울산지역 일부 대리점의 건당 수수료를 기존 950원에서 900원으로 인하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이에 따라 택배기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850원에서 800원으로 깎이게 됐다. 한진택배가 특수는 누릴 대로 누리면서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수료를 깎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택배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노동기본권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사진=뉴시스]
택배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노동기본권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사진=뉴시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수수료 인하 정책이 전국 대리점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김태완 위원장은 “전면적으로 수수료를 인하할 경우 반발이 심할 것을 우려해 일부 지역부터 수수료를 깎는 것이다”면서 “이같은 방식으로 5~6개월 간격을 두고 수수료를 인하해온 경우가 숱하다”고 꼬집었다. 한진택배 측은 “수수료 인하가 아니라 다른 지역 대비 높았던 수수료를 정상화하는 과정”이라며 “타지역으로 수수료 인하를 확대한다는 건 사실무근이다”고 주장했다. 

그 사이 택배 기사의 처우를 개선할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안(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2019년 8월 2일)’은 대형 택배사와 야당의 반대에 밀려 폐기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참고 : 이 법안은 ▲택배사에 대리점 관리·감독 책임 부과 ▲택배 노동자 보호 및 서비스 질 향상 ▲6년 계약갱신청구권으로 고용보장 ▲택배 노동자 처우 개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전염병 노출 위험, 과로사의 위협과 싸우는 택배기사는 업체들이 누리는 코로나19의 특수에서 소외될 공산이 크다. ‘을’의 눈물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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