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전셋집

➊이시내, 한시적 평형상태_16(앞면), 종이에 인디고프린트, 148×210㎜, 2020년 ➋이시내, 한시적 평형상태_16(뒷면), 종이에 인디고프린트, 148×210㎜, 2020년 ➌이시내, 한시적 평형상태_5(뒷면), 종이에 인디고프린트, 148×210㎜, 2020년

나도 취향이 있는데…, 벽지가 영 거슬려…. 세입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공감할 거다. 입주해 살려고 보니 취향이 아니어서 당황스러운 상황. 그렇다고 자신의 감성대로 바꿀 수도 없다. 소유하지 않은 공간에서 지내는 한시적 거주여서다.

이시내의 개인전 ‘버블의 때’는 전셋집 내부공간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사람과 집 사이의 심리적 거리에 주목한다. 타인의 흔적과 세입자의 취향이 어색하게 공존하는 집 내부의 풍경과 거기서 생성되는 긴장 상태를 묘사한다. 

이시내는 유휴공간이나 폐허 혹은 재개발을 앞둔, 규정되지 않은 도시의 공간을 주로 다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인적인 거주공간, 전셋집의 내부를 선택했다. 세입자로 살고 있는 20명의 이야기에 집중해 집을 둘러싼 내적 갈등을 표현한다. 집과 개인의 관계가 모호해진 오늘날, 부동산 버블 안팎에서 부유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짚어본다. 

전시명 ‘버블의 때’는 부동산 버블의 꼭짓점을 향한 환상과 그 이면의 심리적 불순물을 말한다. 전세를 찾는 사람들은 개인적 경제 상황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작가가 관심을 갖는 것은 집을 선택할 때 취향이나 심미적 요소가 후순위로 밀려나는 현실이다. 집의 풍경, 20명 세입자와의 대화, 부동산 플랫폼의 정보가 작품에 중첩돼 집을 향한 양가적 시선의 충돌을 드러낸다. 

 

➍이시내, Anecdote of the Bubble, 다채널비디오, 16분 20초, 2020년 ➎이시내, 한시적 평행상태_1(앞면), 종이에 인디고프린트, 148×210㎜, 2020년

“벽지 색과 무늬를 보세요. 나는 사실 심플하고 미니멀한 스타일을 좋아해요… 그런 제가 이 구린 겨자색 벽지를 매일같이 보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한시적 평형상태_5(앞면)).” “나는 진짜 민트성애자예요. 물건을 사다 보면 죄다 민트색이더라고요(한시적 평형상태_5(뒷면)).” 

이시내의 작품은 대부분 서로 대조를 이루는 앞면과 뒷면을 가진다. 한면은 특정 시기 유행했던 인테리어 양식이 혼재해 있거나 여러 세입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의 내부를 보여준다. 반면 다른 한면은 거주자가 아끼는 소지품들을 통해 특정한 개인을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타인과 세입자의 취향이 뒤섞인 집 속 장면을 포착하고, 세입자들과의 대화와 그들의 소지품을 서로 짝지워 전시장 곳곳에 설치했다. 엽서ㆍ잡지ㆍe북ㆍ광고ㆍ유튜브 영상을 차용한 작품들은 서점 혹은 개인의 방에 놓인 듯 게시되거나 전시장 벽에 접혔다 펼쳐지며 공간을 구성한다. 4월 16일까지 온수공간에서 관람할 수 있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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