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 위기의 함의

채권단이 유동성 문제에 직면한 두산중공업에 1조원 지원을 약속했다. 문제는 경영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두산중공업의 밑이 빠졌다면, ‘독과점→경영실패→산업 위기→혈세 투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두산중공업 위기에 숨은 함의를 취재했다. 

채권단이 두산중공업에 강도 높은 자구안을 주문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경영을 정상화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연합뉴스]
채권단이 두산중공업에 강도 높은 자구안을 주문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경영을 정상화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연합뉴스]

두산중공업은 4조9000억여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그중에서 4조2000억원가량은 올해 안에 갚아야 한다. 은행권에서 빌린 단기차입금이 2조6600억원, 유동성 장기부채가 1조5300억원, 유동성 금융리스부채가 280억원이다. 특히 외화공모사채 5800억원은 당장 4월 안에 상환해야 한다. 2017년 발행한 50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도 오는 5월 조기상환 요구가 빗발칠 수 있다.

그만큼 두산중공업은 유동성 확보가 절실하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2012년 4774억원에 달했던 영업이익(별도 기준)이 2014년부터 2000억원대로 줄더니 지난해엔 877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당기순이익은 2017년 158억원의 반짝 흑자를 낸 것을 제외하면 2014년 이후 내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SOS를 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쨌거나 산은과 수은이 답을 보냈다. 자력으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어려워진 두산중공업은 3월 27일 두 국책은행으로부터 1조원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 돈을 빌리기 위해 두산중공업 주식 1억1356만주와 ㈜두산 주식 361만주, 부동산 신탁수익권 등 1조2000억원 상당의 담보를 제공했다.

1조원을 수혈 받으면 급한 불을 끄는 덴 문제가 없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4월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공모사채는 지급보증을 섰던 수은의 대출 전환으로 해결할 수 있고, BW 조기상환 요청은 두산중공업이 자체 보유한 자산과 현금으로 상환할 계획”이라면서 “은행권 대출은 롤오버(만기연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은 부채는 산은과 수은으로부터 대출받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지원금 1조원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당장의 유동성 문제를 해소할 순 있어도 경영위기를 불러온 원인은 여전히 남아있어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이 자금 지원을 결정하면서 “경영정상화가 안 되면 대주주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강도 높은 자구안을 주문한 이유다. 

두산중공업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크게 두가지를 개선해야 한다. 첫째는 재무구조, 둘째는 실적이다. 구체적인 자구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에는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그중 가장 유력한 카드는 부실 자회사 두산건설을 매각하는 것이다.

매각방법ㆍ매각대금ㆍ인수대상자 등 변수가 있지만 돈 새는 구멍을 막고,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 두산중공업으로선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었는데, 이게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를 악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 많다.

둘째는 실적을 개선하는 건데, 이게 만만치 않다. 두산중공업 매출은 80~90%가 화력발전과 원자력발전에서 나온다. 그중 매출의 70%가량을 차지하는 화력발전의 상황은 예년 같지 않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시장 규모가 가파르게 줄고 있다.

원자력발전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선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탈원전ㆍ탈석탄)으로 중장기 플랜에 차질이 생겼다. 해외 시장도 그렇게 희망적이진 않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원전 수출은 기업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정부가 발 벗고 나선다고 일감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면서 “두산중공업으로선 원전 사업을 통해 꾸준한 실적을 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두산중공업의 경영정상화가 간단치 않을 수 있다는 건데, 이는 정부 입장에서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원전 주기기를 만드는 곳은 두산중공업밖에 없다. 정부가 추가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존 원전은 운영해야 한다.

원전만이 아니다. 두산중공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상풍력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대형 발전용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곳도 두산중공업이 유일하다. 두산중공업과 엮여있는 협력업체ㆍ지역경제도 감안해야 한다. 정부가 두산중공업의 위기를 내버려두지 않을 공산이 큰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국내 발전설비산업을 존속하기 위해선 두산중공업이 정상화될 때까지 지원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자칫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건 두산중공업의 위기가 담고 있는 함의含意다. 두산중공업 위기를 두산중공업만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똑 닮아 있어서다.

제조업 무너지면 대안 없어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계ㆍ발전ㆍ자동차ㆍ철강 등 국내 기간산업 대부분은 소수 기업이 독과점을 이루고 있다”면서 “과거 정부가 자원배분 효율성 때문에 산업당 많은 기업을 육성하지 않은 탓인데, 성장할 땐 좋지만 위기가 닥치면 대체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쓴소리를 이어갔다. “대기업을 끌고 가야 협력업체ㆍ지역경제를 비롯한 산업 전체가 살아나기 때문에 정부로선 지원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 중엔 연구개발(R&D)ㆍ기술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곳이 많다. 문제는 최근 경기 침체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산업 전체가 어려워지면서 두산중공업에서 시작한 나비효과가 산업 전체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려가 현실화한다면 두산중공업의 위기가 두산중공업만의 위기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조선ㆍ해운 사태에서도 봤듯 독과점 구조→소홀한 경영→기업경영 위기→산업 위기→혈세 투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정부에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두산중공업이 보내는 경고음을 허투루 넘겨선 안 되는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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