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푸드-후로즌델리 분쟁 분석

전은배 후로즌델리 대표를 둘러싸고 을질 논란이 불거졌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전은배 후로즌델리 대표를 둘러싸고 을질 논란이 불거졌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아이스크림을 생산하던 중소기업 후로즌델리에 전속계약 제의가 온 건 2005년이었다. 상대는 대기업 롯데푸드(당시 롯데삼강). 롯데가 요구한 규격대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기계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금에 친척ㆍ지인들로부터 빌린 돈까지 털어 넣었다.

하지만 전속계약 3년 차에 갈등이 생겼다. 2008년 5월 롯데푸드 직원들이 공장을 방문해 욕설을 늘어놨다. 설비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롯데 빙과류 협력업체 중 이 돈을 못 받은 건 후로즌델리가 유일했다. 2010년부턴 롯데푸드 내부에서 ‘후로즌델리 거래 중단’을 검토했다. 멀쩡히 잘 거래하던 협력업체를 잘라내기 위한 수단으로 ‘해썹(HACCP) 미인증’을 걸고넘어졌다. 당시 후로즌델리의 해썹 인증 기간은 2년이나 남아있었다. 이 회사 전은배 대표는 ‘못된 갑질’로 받아들였다. 

2010년 9월, 참다못한 전 대표는 롯데푸드에 ‘계약 종료’ 통보를 보냈다. 동시에 기계설비 매입을 요청했다. 롯데푸드 제품을 위해 만든 설비였으니 되사라는 거였다. 합당한 요구였다. 롯데푸드 역시 이를 수용했다. 테스트를 진행한 다음 ‘매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햇수로 6년 동안 이 설비로 아이스크림과 팥빙수를 생산해 롯데푸드에 납품했다. 테스트를 하겠다는 것도 이상했지만 결과는 더 납득할 수 없었다. 롯데푸드는 ‘부적합’을 통보했다. 

테스트 결과, 롯데푸드의 규격에 맞는 제품이 전체의 28%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롯데푸드는 이후 ‘납득 못할 행보’를 보였다. 테스트에서 생산한 제품이 불량이라더니, 그 제품을 시중에 내다 팔아버린 것이다. 전속거래가 끊긴 채 전전긍긍하던 전 대표는 ‘울화’가 치밀었다.

이곳저곳에 민원을 제기했다. 롯데그룹 신문고에도 넣었고(2011년 4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내용증명(2011년 8월)을 보내기도 했다. 2013년 5월엔 사건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그러자 미디어가 주목했고, 다음은 국회의원이었다. 2014년 국정감사에 롯데그룹 핵심 경영진의 출석이 예고됐다. 

4년간 꿈쩍도 하지 않던 롯데그룹이 움직였다. 작은 협력업체와의 분쟁으로 그룹의 명예에 먹칠을 하지는 말자는 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롯데푸드 대표(현 이영호 롯데그룹 식품BU장)가 직접 위로금 7억원과 ‘재기의 발판’을 약속했다. 자사에 납품되는 수많은 물품 중 조건이 맞는 게 있으면 최우선적으로 납품 기회를 주겠다고도 했다. 전은배 대표는 이런 내용이 담긴 상생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2015년 2월 전 대표는 롯데푸드에 ‘납품’을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납품 거래는 금세 끝났고, 합의는 산산조각 났다. 다시 국회가 롯데푸드를 질책하고 나섰다. 

2016년 국정조사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후로즌델리와의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았다. 신 회장은 당시 “사실관계를 파악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변했지만 이후로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사진=뉴시스]
2016년 국정조사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후로즌델리와의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았다. 신 회장은 당시 “사실관계를 파악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변했지만 이후로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사진=뉴시스]

2016년 국정조사 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으로부터 “사실관계를 파악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2018년 국감장에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당시)을 향해서 질의가 쏟아졌다. “롯데푸드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후로즌델리라는 아이스크림 회사가 있었습니다. 부당한 이유로 파산했습니다. 전속거래로 인한 폐업, 도산은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 겁니다(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9년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이슈로 등장할 조짐이 보이자 롯데가 다시 움직였다.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가 전 대표를 찾아가 “현금 1억원을 줄 테니 분쟁을 마무리하자”고 회유했다. 끊겼던 납품 거래를 다시 진행하자는 뜻도 은근슬쩍 내비쳤다. 전 대표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2019년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전 대표에게 읍소를 하던 조경수 대표는 국감 증인석에선 다른 말을 내뱉었다. “전은배 대표가 감당할 수 없는 부당한 요구를 해왔다. 후로즌델리는 부도가 나 실체가 없는 회사여서 납품권을 주기도 어려웠다.” 전은배 대표는 순식간에 악성 민원인으로 전락했다. ‘을질의 대명사’란 호된 질책도 받았다. 

하지만 합의를 종용하며 현금을 주겠다고 했던 건 조 대표였다. “실체가 없는 회사여서 납품권을 주기 어려웠다”는 주장도 거짓이다. 더스쿠프(The SCOOP) 취재 결과, 롯데푸드는 2015년 자신들의 협력업체를 ‘서류상’으로 끼워넣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전 대표에게 납품권을 줬고, 실제로 거래가 진행됐다. [※ 참고 : 품목은 분유박스였다. 전 대표가 박스 제조사와 계약할 무렵, 롯데푸드가 ‘그룹사 납품 실적 있는 회사’를 협력업체로 요구해 편법 거래가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롯데푸드는 전은배 대표에게 ‘위약금 7억원 반환 소송’을 걸었다. 롯데푸드와 있었던 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돈도, 명예도 날린 전 대표는 또다시 벼랑에 몰렸다. 그는 정말 ‘을질’을 한 것일까. 롯데푸드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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