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정감사 참석한 조경수 대표
“실체 없는 회사가 납품권 등 부당하게 요구”
오히려 롯데푸드가 납품권 주겠다고 제안
롯데 협력업체 중간에 끼우는 꼼수 써
조경수 대표, 국감 직전엔 지방 내려가 금전 회유
“대표 자격으로 1억원 미만 줄 테니 매듭 짓자”
국정감사 끝나자 “전은배 대표가 을질했다” 역공

“후로즌델리는 실체가 없는 제조회사였는데도 납품권 등 부당한 요구를 했다.” 지난해 국감장에서 나온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의 말이다. 전은배 후로즌델리 대표가 을의 지위를 악용해 무리한 납품 요구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더스쿠프(The SCOOP) 취재 결과, 납품권을 주기로 했던 건 롯데푸드였고, 실제로 납품도 진행됐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롯데푸드 측이 편법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이것도 모자라 롯데푸드 측은 때만 되면 전 대표를 찾아가 돈으로 회유를 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은배 대표와 롯데푸드가 박스를 거래한 정황이 담긴 납품내역서. 제3자가 끼어든 편법 거래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전은배 대표와 롯데푸드가 박스를 거래한 정황이 담긴 납품내역서. 제3자가 끼어든 편법 거래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됐던 사건이 있다. 롯데푸드와 옛 협력업체 후로즌델리 사이의 분쟁이다. 이 분쟁과 관련한 당시 언론의 보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후로즌델리는 롯데푸드에 팥빙수를 납품하다가 2010년 거래가 끊겼고, 2013년 파산했다. 거래 중단 원인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다 2014년 8월 합의하기로 결정했다. 합의 조항에 따라 롯데푸드는 후로즌델리에 합의금 7억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후로즌델리는 지금도 부당한 요구를 하면서 국회를 통해 롯데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이 보도 이후 후로즌델리의 CEO였던 전은배 대표에겐 ‘악성 을乙’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역갑질이다” “을질이다” 등의 각종 비난도 그를 향해 쏟아졌다. 

여기엔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가 국감장에서 내뱉은 항변도 한몫했다. “후로즌델리는 이미 부도가 나서 실체가 없는 회사였기 때문에 납품권을 주기 어려웠고, 과도한 요구가 있었다.” 전 대표는 정말 ‘을질’을 했을까. 그렇지 않다. 전 대표에게 납품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건 되레 롯데푸드 측이었다. 2014년 8월 18과 19일, 합의서를 작성하기 위해 열렸던 양측의 미팅 회의록을 살펴보자. 

납품권 주겠다고 할 땐 언제고 …

이영호 당시 롯데푸드 대표(현 롯데그룹 식품BU장)의 말이다. “이게 뭐 돈(합의금)도 돈이지만, 지속적으로 우리가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한번 생각하면 좋은데…” “그 납품 문장 하나 넣어라, 이쪽(합의서)에다.” “(납품건은) 하여튼 찾아서 최선의 지원은 해준다, 이렇게 얘기를 해주세요.” 

양측 합의의 핵심은 ‘돈(7억원)’이 아니었다. ‘납품’이었다. 실제로 양측이 서명한 합의서(2014년 8월 20일)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었다. “롯데와 후로즌델리는 향후 상생을 위해 후로즌델리 또는 전은배가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롯데의 품질 및 가격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 우선적으로 채택하도록 한다.” 

롯데푸드에 납품되는 수많은 물품 중 하나를 전은배 대표에게 맡기겠다는 명시적 조항임에 틀림없다. 롯데푸드가 왜곡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실체가 없는 회사라 납품권을 줄 수 없었다’는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의 국감장 설명도 사실과 다르다. 더스쿠프 취재 결과에 따르면, 롯데푸드 측은 납품권을 줬고 실제로 납품이 이뤄졌다. 품목은 분유박스였다. 

롯데푸드와 전은배 후로즌델리 대표간의 박스 납품거래는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롯데푸드와 전은배 후로즌델리 대표간의 박스 납품거래는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계추를 다시 2014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12월 31일 롯데푸드 구매담당 이사가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납품건 때문이었다. “분유박스(납품)를 2개월 정도 (거래) 잘하고 하면, 좀 확대해서 검토해 보자는 게 사장님(이영호 대표) 생각입니다.”

이때만 해도 롯데푸드는 납품에 적극적이었다. 그해 12월 26일 전 대표가 롯데푸드 구매담당 실무자가 나눈 대화를 보자. 

롯데푸드 실무자  : “일단 박스가 단순해 보여도 지분 관리라든가 이런 것들이 좀 있잖아요. 저는 오늘 오신다 하기에 협력사랑 같이 오시는 줄 알았어요.” 
전은배 대표 : “아, 그거는 A사(박스 제조회사) 있잖아요.”
롯데푸드 실무자 : “A사요?”
전은배 대표 : “네, A사를 (협력사로) 하려구요. 저도 실수하면 안 되니까요.”


이해하기 힘든 대화를 쉽게 풀어보자. 당시 전 대표에겐 제조설비가 없었다. 후로즌델리 공장은 2014년 1월 압류돼 경매에 넘어갔다. 그래서 전 대표는 국내 대형 박스제조업체인 A사와 계약을 맺었다. 롯데푸드 납품권을 따냈으니, 대신 박스를 제조해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롯데푸드 측이 거절했다. A사와 거래한 실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롯데푸드 측은 전 대표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했다. “‘그룹사 거래실적’ ‘최근 1년간 10개사 이상 거래실적’ ‘동종업 경력 5년 이상’ 등의 조건 중 2개 이상을 만족하는 협력사여야 합니다.” 요약하면, ‘롯데그룹과 거래 실적이 있는 회사’를 납품처로 경유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A사와 계약을 체결한 전 대표는 어쩔 수 없이 B사를 경유해 박스를 납품해야 했다. B사는 롯데그룹 계열사에 박스를 납품하던 협력업체였다. ‘전 대표→A사(박스 제조)→ B사(서류 작성)→ 롯데푸드’의 복잡한 유통고리가 만들어진 셈이었다. 

전 대표는 이런 절차를 통해 2015년 2월부터 2016년 6월까지 롯데푸드 파스퇴르 공장에 분유박스를 납품했다. 유통구조에서 보듯 당연히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었다. 박스를 제조하지 않은 B사의 매출은 서류상으로만 잡혔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이를 ‘3쿠션 매출’로 부른다. 공정거래법 제23조가 금지한 부당거래행위(부당한 거래단계 추가)에도 해당한다. 

국감 때만 상생하자는 롯데

전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납품권을 주겠다고 했던 것도 롯데푸드였고, 실제로 납품도 했다. 롯데푸드 측이 원하는 업체도 끼어들었다. 그래놓곤 ‘처음부터 납품권을 줄 수 없는 대상’으로 왜곡했다.”

일부에선 “전 대표도 편법 거래에 동참한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납품 거래에서도 전 대표는 ‘을’의 입장이었다. 거래 조건을 정한 건 롯데푸드였다. 대기업의 령令인 만큼 지시하는 대로 했다. 그마저도 금세 거래가 끊겨 문제 제기를 하자 ‘을질’을 한다는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사실 롯데푸드가 편법을 동원해가면서까지 납품권을 준 이유는 간단했다. 전 대표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지난해 국감을 앞두고 조경수 대표는 금전적으로 회유하기도 했다. 국감을 한달가량 앞둔 2019년 9월, 조경수 롯데푸드 대표는 전 대표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1억원 미만의 현금을 줄 테니 분쟁을 종결짓자.” 

전 대표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가 정말로 악성 민원인이었다면 조경수 대표가 주겠다는 현금을 받고, 또 민원을 제기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전 대표의 목적은 하나였다. 5년 전 합의서를 작성할 당시 약속 받았던 ‘재기’였다. 이제 전은배 대표에겐 남은 게 없다. 아이스크림 사업은 부도가 났고, 신용불량자가 됐으며, 가정도 지키지 못했다. 지금도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고, 을질의 대명사로 낙인 찍혔다. 이래도 전 대표가 롯데푸드에 ‘을질’을 했던 걸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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