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운동 극단의 평가

개미투자자의 매수세가 뜨겁다. 개미투자자가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세에 대항하고, 증시를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시장에선 투자시장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거창한 평가까지 나온다. 하지만 ‘동학개미운동’을 평가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동학개미운동의 빛과 그림자를 취재했다. 

주가 하락기를 기회로 삼아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개인투자자가 증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직장인 최명현(가명·36세)씨는 스마트폰에 깔린 모바일트레이딩(MTS)을 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최씨가 처음부터 주식투자를 했던 건 아니다. 그는 최근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너도나도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걸 보고 주식에 베팅했다.

처음에는 수익을 올렸다. 3월 20일 주당 4만5000원에 매입한 삼성전자 주식 60주를 4만8200원(3월 25일)에 팔아 17만8712원(비용 제외)의 수익을 올렸다. 이후 한두 종목 사다 보니 투자 종목도 5개로 늘었다. 투자 종목이 늘면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종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씨는 저가 매수의 기회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주식을 사고 있다.

문제는 여윳돈이 부족해졌다는 점이다. 최씨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돈을 빌려야 할지 고민 중이다. 상한가 한번이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최씨는 “상한가를 기록하는 종목을 보면 금방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며 “많은 이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데 나만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동학개미운동’이라는 말이 오르내리고 있다. 최씨처럼 코로나19 사태로 폭락한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미투자자를 그럴듯하게 풍자한 말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3월 이후(3월 2일~4월 8일) 팔아치운 15조2000억원어치의 주식을 개미투자자가 사들이면서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기관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 속에 나홀로 매수세를 유지하면서 주가지수를 방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개미투자자는 3월부터 지난 8일까지 13조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5500억원의 매수세를 기록한 기관투자자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개미투자자의 증가세에 1월 11조8813억원이었던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3월 18조4922억원으로 55.6%(6조6109억원)나 증가했다. 코스피지수가 2600포인트를 웃돌던 2018년 1월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15조8106억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거래량이다.

동학개미운동이 갈아치운 기록은 한두개가 아니다. 주식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주식거래 활동 계좌 수는 3월 3076만9014개로 늘어났다. 올 1월 2935만6620개보다 141만2394개가 증가했다. 이 가운데 83만2846개는 3월 한달간 늘어난 수치다. 3월 코스피 시장과 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회전율은 각각 18.86% 93.55%로 전년 동월(코스피 6.89%·코스닥 35.19%)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했다.[※참고: 시가총액 회전율은 시가총액 대비 거래대금으로 비율이 높을수록 주식 거래가 활발하다는 의미다.]

투자자예탁금이 40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도 개미들이 새롭게 만든 기록 중 하나다. 투자자예탁금은 주식을 사기 위해 투자자 증권사 계좌에 맡겨둔 투자대기자금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43조829억원으로 1월 말의 28조7192억원 대비 1.5배(14조3637억원) 이상 증가했다. 이 정도면 ‘동학개미운동’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동학개미운동’을 향한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증시 참여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동학개미운동’이 투자시장의 변화를 이끌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부동산 불패 신화에 매몰돼 있던 투자문화가 주식시장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운동을 발판으로 개인투자자가 새로운 수급 주체로 자리를 잡으면 외국인의 입김에 흔들리는 국내 증시의 안전판이 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외국인에게 빼앗긴 국내 주식시장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부동산 매각 이후 다시 부동산으로 흘러가던 돈이 최근 주식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며 “현장에서도 부동산을 매각한 후 주식투자에 나서는 투자자가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부동산 가격으로 재산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이 주식밖에 없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는 것 같다”며 “부동산에 쏠린 자산배분 구조를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론도 많다. ‘동학개미운동’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의 말을 들어보자. “이번 현상은 코로나19로 발생한 일시적이고 특별한 상황이다. 개인투자자의 매수 주체를 2030세대로 보는데 주요 매수세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베이비부머 세대일 것이다.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모두 겪은 세대다. 주식시장이 급락했다가 다시 급등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투자에 나선 것이다. 일정부문 수익을 내면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5060세대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부동산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적지 않은 주장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같은 우량주에 몰렸던 개미투자자의 발길이 최근 코로나19 관련주 등 이벤트성 이슈가 있는 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 이후 개미투자자가 가장 많이 매수한 기업에는 코로나19 진단키트·치료제 등 코로나19 테마주로 불리는 종목도 대거 포함돼 있다. 빚을 내 투자에 나선 개미투자자도 많다. 단기적인 수익을 노리고 들어온 자금인 만큼 언제든지 증시를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동학개미운동은 0%대 기준금리, 낮은 경제성장률, 높은 원·달러 환율 등 거시경제의 변화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부동산 자금이 주식으로 넘어왔다기보다는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주식시장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보는 게 맞다”면서 “주가 폭락으로 기대수익률이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투자자의 매수세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걸 피해야 한다”며 “‘동학개미운동’이라는 프레임이 다른 개인투자자의 유입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40조원 넘어선 투자대기자금

그렇다면 개미투자자의 매수세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관건은 기대수익률이다. 국내 증시 상승으로 기대수익률이 낮아지면 개미투자자의 매수세가 멈출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동학개미운동의 지속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변곡점으로 코스피지수 1900포인트대를 지목했다. 주가 지수가 이전 수준으로 올라가면 개인투자자의 매수세가 약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유겸 케이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은 시장의 반등 가능성을 보고 개미투자자가 주식투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가 상승으로 기대수익률이 낮아지면 주식시장을 떠나는 개인투자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동학개미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최석원 센터장도 단기적으론 신중하게 봐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코스피지수가 1900포인트대까지 상승하면 더는 개인투자자의 매수세로는 장이 상승할 수 없다. 기대수익률 하락이 개인투자자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주식 투자는 한두달 만에도 일정 수준의 수익을 낼 수 있다. 매도 유혹을 뿌리치고 장기투자를 유지할 수 있는 개인투자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동학개미운동’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개미투자자가 폭락하는 증시를 지탱해준 혁혁한 공을 세운 건 맞다. 하지만 ‘동학개미운동’이 투자시장의 변화를 이끌지는 의문이다. 수익률이라는 달콤함만 좇는 게 개미의 일반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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