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GBC와 현대엘리베이터의 난제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의 1위 기업이다. 국내시장을 절반가량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하지만 ‘실속 없는 1위 기업’이란 지적도 숱하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데다 부가가치가 큰 초고층용 엘리베이터 부문에선 실적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외 초고층 건물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99%는 글로벌 기업이 만든 것들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현대엘리베이터의 난제를 살펴봤다.

현대엘리베이터는 GBC 엘리베이터 입찰을 따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사진=연합뉴스]
현대엘리베이터는 GBC 엘리베이터 입찰을 따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사진=연합뉴스]

2014년 현대차그룹이 사들였던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 이르면 올 상반기 이곳에서 현대차그룹의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공사가 첫삽을 뜬다. GBC는 현대차그룹이 야심차게 청사진을 그린 초대형 프로젝트다. 공사비용만 3조~4조원에 이르고, 건물 높이는 569m에 달한다. 계획대로 완공되면 잠실동 롯데월드타워(555m)를 제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이름을 올린다. 세계에서도 다섯번째로 높다.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하다. 27년간 생산유발효과가 265조여원에 육박하고, 122만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전망이다. 건설, 자재 등 GBC와 연관된 기업도 많다. 특히 국내 엘리베이터업계를 대표하는 현대엘리베이터에 GBC는 새로운 성장활로를 열어젖혀줄 도약처가 될 수 있다. 

대체 무슨 말일까.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엘리베이터시장을 리딩하는 기업이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엘리베이터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43.9%에 달했다. 일본 미쓰비시, 미국 오티스, 독일 티센크루프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에 들어와 있음에도 절반 가까이 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의 질적 실적은 아쉽다는 평가가 숱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시장지배력이 대부분 중저층 건물용 엘리베이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의 꽃은 초고층용 엘리베이터다.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탓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안전성을 인정받아야만 계약을 따낼 수 있다. 쉽게 말해, 초고층용 엘리베이터 시장은 일류기업들만의 리그라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엘리베이터는 초고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경험이 거의 없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제품이 들어간 건물 중 가장 높은 건 부산국제금융센터(BIFC)다. 이 건물의 높이는 289m다. 초고층 건물을 ‘층수가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인 건축물’로 정의하고 있는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부산국제금융센터도 초고층 건물에 속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009년 7월에 만들어진 이 기준을 두고 “현시점에선 맞지 않는 옛날 기준”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랜드마크 건물들은 통상 300~400m가 훌쩍 넘는다.[※참고 : 초고층건물 정보사이트 스카이스크래퍼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100곳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서 100번째로 높은 건물의 높이는 326m다.]

국내에선 롯데월드타워와 해운대 엘시티 랜드마크타워(412m), 여의도 파크원(338mㆍ올해 7월 완공 예정) 등이 최상위 고층건물 축에 속하는데, 이곳 모두 해외기업의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안방 호랑이의 냉정한 현주소 

그렇다면 초고층 건물에 현대엘리베이터의 제품이 쓰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엘리베이터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는 속도다. 특히 초고층 건물에 설치되는 엘리베이터일수록 속도가 중요하다. 

현대엘리베이터 제품 중 2009년에 개발한 ‘디엘(The EL)’은 최대 1080m의 분속을 낼 수 있다. 세계 기준에 비춰 봐도 느린 편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가 분속 1260m 정도”라면서 “현대엘리베이터가 기술력 면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앞서 말한 부산국제금융센터에 설치한 현대엘리베이터 제품의 속도는 분속 600m에 달하는데, 이는 롯데월드타워에 설치된 제품과 같은 속도이자 동시에 국내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중 가장 빠른 속도다.

그럼에도 현대엘리베이터가 초고층용 엘리베이터 시장에서 맥을 못 추는 건 ‘실적’ 때문이다. 복잡한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초고층 건물에 설치되는 엘리베이터는 기술력만큼 중요한 게 안전성이다. 안전성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년간 쌓아온 실적을 통해 문제가 없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초고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경험이 부족한 현대엘리베이터로선 악순환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북미ㆍ중동ㆍ중국 등에서 초고층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는데, 우리보다 업력이 2~3배 길고, 기반이 탄탄한 티센크루프ㆍ오티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버티고 있어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면서 “자동차를 선택할 때도 기술력과 안전성이 검증된 회사를 보는데, 하물며 엘리베이터를 선택할 때는 가점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김성호 한국승강기대 교수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초고층 건물은 높은 프리미엄이 붙는 데다 엘리베이터 설치비용도 매우 비싸기 때문에 검증이 덜 된 제품을 써서 리스크를 안고 가려는 곳이 적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실적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현대엘리베이터 같은 기업들은 기술력을 온전히 평가받기 어렵다. 지나치게 실적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행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번 GBC 입찰이 현대엘리베이터에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569m 높이의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다면 기술력을 검증받는 것과 동시에 또다른 수주로 이어지는 활로를 마련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쉬운 길이 펼쳐질 가능성은 낮다. 미쓰비시ㆍ오티스ㆍ티센크루프ㆍ히타치 등 경험이 풍부한  글로벌 기업들이 이번 수주를 따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쟁쟁한 기업들 사이에서 GBC 엘리베이터 입찰을 따낼 수 있을까. 그 결과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의 청사진도 달라질 공산이 크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