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의 공허한 경제학

많은 기업이 위기에 몰리면 브랜드나 제품의 이름을 바꾼다. 그럴듯한 이름만 붙이면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믿는 경영자도 의외로 많다. 하지만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이름에 담긴 의미와 역사, 철학에 소비자가 공감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시장을 장악하는 ‘마켓 파워’도 갖고 있어야 한다. 괜히 이름값이란 용어가 생긴 게 아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사명과 브랜드의 경제학을 취재했다. 

소비자들은 애플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두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든다.[사진=연합뉴스]
소비자들은 애플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두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든다.[사진=연합뉴스]

혁신의 아이콘 ‘애플’의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여기엔 다양한 설說이 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컴퓨터 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를 베어 먹고 사망한 데서 따왔다는 것이다. 튜링을 추모하고자 했다는 건데, 애플의 로고가 ‘한입 베어 문 사과’라는 점에서 제법 설득력이 있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의 일화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말도 있다. 실제 애플의 초창기 로고는 사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뉴턴의 모습이었다. 그밖에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사과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거나, 전화번호부에서 빨리 나올 수 있는 단어를 고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이 구글이 된 사연도 엉뚱하다.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처음 생각했던 이름은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구골(Googol)이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찾아낼 수 있는 검색엔진”이라는 뜻을 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철자를 적는 과정에서 오타가 났고 구골은 구글이 됐다. 두 창업자는 구글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 그대로 사용했는데, 이게 오히려 신의 한수가 됐다. 현재 ‘구글링하다(구글로 정보를 검색한다는 뜻)’는 말은 가장 흔히 쓰이는 신조어 중 하나다.

기업 이름엔 기업의 역사와 철학, 정체성이 깃들어있다. 때론 소비자들이 더 많은 이야기와 가치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이렇게 잘 다듬어진 브랜드는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만큼 기업의 경영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절대적이다. 브랜드 하나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가치가 매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국의 브랜드 컨설팅업체 브랜드 파이낸스는 매해 브랜드 가치를 평가해 세계 500대 브랜드를 뽑는다. 지난해엔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았는데,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1879억500만 달러(약 229조원)에 달했다.

기업명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제품명이 기업명의 인지도를 뛰어넘는 경우도 숱하다. 3M의 스카치테이프는 단적인 예다. 국내에서도 상처에 바르는 연고 하면 앞다퉈 후시딘과 마데카솔을 떠올리지만 정작 어디서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애플의 매킨토시나 아이폰도 기업명 못지않게 브랜드 가치가 높은 제품들이다. 흔히 “이름만 믿고 쓴다”는 말은 이런 브랜드들을 두고 하는 얘기다.

그만큼 기업들에 ‘잘 만든 이름’ 하나가 갖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수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변곡점이 필요할 때 기업명이나 제품명에 손을 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뀐 이름이 새로운 이미지와 가치, 나아가 성장동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좋은 결과만 얻는 건 아니다. 이름을 바꾸고 승승장구한 기업이 있는 반면 내리막을 걸은 기업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경영 부진에 빠진 미국의 전산제표기록업체 CTR은 기업 이름을 ‘IBM(Internet Business Machines)’으로 변경한 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면 2008년 브랜드명을 파스타헛으로 바꾸며 재도약을 노렸던 피자헛은 떨어지는 점유율을 막지 못했다.

문제는 성공사례는 쉽게 부각되게 마련이지만 실패사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확률을 따져보면 실패사례가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기업명을 변경한 코스피ㆍ코스닥 상장기업 68곳을 보면 답이 나온다. 이들 기업이 이름을 변경한 시점부터 6개월간 주가 흐름을 살펴본 결과, 주가가 오른 기업은 68곳 중 10곳에 불과했다. 평균 주가하락률도 23.1%로 낮지 않았다. 

브랜드 이름을 바꿔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이름 석자를 바꾸는 것보다 이름에 무엇을 담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요즘 같은 정보 과잉 시대에선 인지도를 다시 쌓는 게 어려운 데다, 기업의 이름엔 정체성과 철학이 담겨있어 쉽게 바꿔서도 안 된다”면서 “특히 이름보다는 문화로서의 브랜딩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의 문화와 의미, 정체성을 잘 녹여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브랜드 이름을 보면 기업의 역사와 정체성을 일관되게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애플은 사과품종의 하나인 매킨토시에서 제품명을 따왔다. IBM 인공지능(AI) 기술 ‘왓슨’은 지금의 IBM을 만들어낸 토마스 왓슨에서 나온 이름이다.

서용구 교수는 “브랜딩엔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품질이 낮은데 브랜딩이 좋아서 잘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경영엔 일반화된 원칙이 없다. 다만 혁신도 없이 이름만 바꾼다고 효과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혁신성과 브랜딩을 모두 갖춘 다음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이름 바꾼 HMMㆍLG전자의 미래

당장에도 이름을 바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는 기업이 많다. 지난 1일엔 현대상선이 기업명에서 ‘현대’를 떼어내고 HMM으로 거듭났다. 경영정상화를 위한 굳은 의지가 엿보이면서도 현대가家와의 결별을 선언하겠다는 뜻이 읽힌다. 12일엔 LG전자가 8년간 사용해온 스마트폰 브랜드를 버렸다. 휴대전화 사업에서 5년간 이어온 적자의 늪을 빠져나오겠다는 각오다.

두 기업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미래를 예측할 순 없지만 ‘이름 변경’의 효과가 기대치를 밑돌 가능성이 높다. 이름 안에 담긴 의미와 소비자의 인식에 따라 브랜드 가치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거란 얘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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