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바꾸고 울고 웃은 기업들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설립 초기 이름 ‘카다브라’를 버린 후 승승장구했다. 인스타그램도 ‘버븐’이란 이름을 떼내면서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미국 담배제조업체 필립모리스는 식품업체로 전환을 꿈꾸며 ‘알트리아’라는 새 이름을 달았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휴대전화 업체 블랙베리는 원래 이름 RIM을 버린 뒤 하락세를 탔다. 많은 기업이 브랜드·제품명을 바꾸지만 성공 사례는 많지 않다. 이름이 다가 아니란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사명 바꾸고 울고 웃은 기업들을 취재했다.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사명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강 아마존처럼 모든 것을 다 담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사명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강 아마존처럼 모든 것을 다 담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기업이 사명이나 제품명을 교체할 땐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령 인수·합병(M&A)을 했거나, 사업의 방향성이 달라졌거나, 감추고 싶은 과오가 있을 때다. 하지만 ‘새 이름표’를 달 때에는 감수해야 할 것도 많다. 그동안 쌓아온 인지도와 이미지를 잃어버릴 수 있다. 사명 또는 제품명을 변경했을 때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나뉘는 이유다. 

■소통 방식 바꾼 인스타그램 = SNS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인스타그램(Instagram)’은 브랜드명을 성공적으로 바꾼 사례로 꼽힌다. 2010년 미국 스탠퍼드대 선후배 사이인 케빈 시스트롬과 마이크 크리거는 인스타그램의 전신인 모바일 앱 ‘버븐(Burbn)’을 선보였다. 지역 기반의 SNS로 이용자가 특정 지역에서 ‘체크인’했다는 정보와 함께 사진을 공유하고 친구를 사귀는 방식이었다.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체크인 기능에 관심이 없었다. 되레 사진을 올리는 데 열중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이를 눈여겨본 케빈 시스트롬은 더 많은 사진을 공유할 수 있도록 데이터의 양을 두배로 늘리고, 클릭 한번으로 사진을 게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달라진 기능에 맞춰 이름도 바꿨다. ‘버번 위스키(Bourbon whisky)’에서 따온 ‘버븐’ 대신 ‘인스턴트(Instantㆍ즉시)’와 ‘텔레그램(Telegramㆍ전보)’의 합성어 인스타그램을 채택했다.

‘세상의 순간을 포착해 공유한다’는 철학을 담은 이름이었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인스타그램은 사람들의 소통 방식을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페북이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에 인수한 인스타그램은 10억명의 이용자를 거느린 기업가치 1000억 달러(약 122조원ㆍ2018년 블룸버그 통신 추정치)의 브랜드가 됐다. 

■ 모든 것 다 파는 아마존 =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AMAZON)’의 성장사는 인스타그램과 비슷하다. 온라인 서점에서 시작한 아마존의 설립 당시 이름은 ‘카다브라(Cadabraㆍ2014년)’였다. 옛 주술사들의 주문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시체’를 의미하는 ‘커데버(cadaver)’와 혼동할 수 있다는 내부 의견에 따라 7개월 만에 이름을 바꿨다.

 브랜드명을 고심하던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는 알파벳의 첫 글자인 ‘A’로 시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의 이름인 아마존을 택했다. 온라인 서점을 넘어 ‘아마존에 모든 것을 담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이었다. 바꾼 사명처럼 아마존의 사업 영역은 온라인 서점에서 온라인 소매업, 디지털 디바이스, 미디어 콘텐트, 클라우드 서비스 등으로 넓어졌다.

실적 역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8년간의 적자를 버틴 끝에 2002년 흑자전환에 성공한 아마존은 시가총액 1조1500억 달러(약 1411조원ㆍ4월 16일 기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브랜드명을 바꾼다고 해서 기업의 앞날이 ‘비단길’이 되는 건 아니다. 사명을 교체하고도 기대 효과를 누리지 못한 기업은 숱하게 많다. 

■부채에 가려진 MCI = 1998년 미국의 유선통신기업 World Communications(월드컴)은 경쟁사였던 MCI를 370억 달러(당시 약 37조원)에 인수했다. 인수 후 사명으론  MCI월드컴을 택했다. 하지만 막대한 부채를 갖고 있던 월드컴은 그로부터 4년 만에 파산보호를 신청할 지경에 이르렀다. 악재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미국의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는 사명을 ‘알트리아’로 바꾸고 종합 식품 기업으로 전환을 꾀했지만 실패했다.[사진=연합뉴스]
미국의 담배 회사 필립모리스는 사명을 ‘알트리아’로 바꾸고 종합 식품 기업으로 전환을 꾀했지만 실패했다.[사진=연합뉴스]

2003년 미국 의회 조사위원회를 통해 무려 110억 달러(약 13조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밝혀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CEO의 횡령 등 각종 사건사고까지 터졌다. 이때 MCI월드컴은 사명을 ‘MCI’로 바꾸는 강수를 던졌다. 월드컴에 인수되기 전 업계 2위의 건실한 기업이었던 MCI의 이미지를 차용해볼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MCI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는 등 재건에 애썼지만 손실을 극복하지 못했다. 2005년 MCI는 미국 통신업체 버라이즌(Verizon Commu nications)에 인수됐다.


■담배 이미지에 갇힌 필립모리스 =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말보로·팔리아멘트 등의 담배로 유명한 필립모리스는 2003년 알트리아(Altria) 그룹으로 사명을 바꿨다. 배경은 다음과 같다. 필립모리스는 1969년부터 밀러맥주ㆍ크래프트 푸드ㆍ나비스코제과 등 각종 식음료 업체를 인수하며 종합 식품회사로 거듭났다. 세계적으로 ‘담배는 유독물질’이라는 인식이 퍼지며 금연운동이 일자 담배 외에 식품ㆍ주류 등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거다. 

그러나 사명 변경만으론 ‘담배회사’ 이미지를 털어내기 쉽지 않았다. 소비자에겐 이미 담배회사로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흡연으로 인한 사망사건 등을 피하기 위한 꼼수란 비판이 쏟아진 것도 부담이었다. 

‘스마트폰 개척자’라 불리던 블랙베리는 후발주자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사진=연합뉴스]
‘스마트폰 개척자’라 불리던 블랙베리는 후발주자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사진=연합뉴스]

■낯설어 거부당한 영국우정국 = 새출발을 다짐하며 이름을 바꿨지만 대중의 반발로 되돌린 경우도 있다. 2001년 법률안 개정으로 민영화에 성공한 영국우정국 Post Office의 소유권은 로열메일(Royal Mail)로 이전됐다. 그 무렵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던 로열메일사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 사명을 ‘콘시그니아(Consignia)’로 바꿨다.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여 사명을 바꿨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우편(Mail)’이라는 의미도, 신뢰도 높은 왕실의 이미지(Royal)도 없어진 탓이었다. 실적개선은커녕 비난만 받자 우정국은 16개월 만에 콘시그니아라는 이름을 버리고 로열메일로 회귀했다. 기업과 브랜드의 성패를 결정 짓는 덴 이름보다 중요한 요소가 숱하게 많다는 방증이다. 한때 휴대전화시장을 선도했던 ‘블랙베리’의 몰락 역시 이를 잘 보여준다. 

■블랙베리의 몰락 = 캐나다의 스마트폰 제조사 RIM(Research In Motion)이 선보인 블랙베리(1999년 첫 출시)는 2000년대 중반 ‘스마트폰 개척자’라고 불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차별점은 ‘자판’이었다. PC용 키보드와 같은 배열의 ‘쿼티(QWERTY)’ 자판이 달려 있어, 비즈니스맨들에겐 혁신적인 휴대전화로 꼽혔다.

2008년 미국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44. 5%를 차지할 정도였다. 블랙베리가 성공을 거두자 RIM은 사명을 아예 블랙베리로 바꿨다(2013년). 하지만 기대했던 황금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경쟁사인 애플(2007년)과 구글(2008년)이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 이후 블랙베리는 조금씩 설자리를 잃었다. 혁신을 멀리한 채 자체 운영체제(OS)와 쿼티 키보드를 고집했던 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블랙베리는 결국 자체 생산을 중단하고 2016년부터 중국 제조업체 TCL를 통해 제품을 생산했지만 끝내 부활하지 못했다. 2017년 이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대를 극복하지 못한 블랙베리는 올해 8월 생산이 중단된다.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혁신이 없다면 ‘이름표’ 갈아 끼우기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방증이다. 이정희 중앙대(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브랜드명을 바꿈으로써 기업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 하지만 기능적 혁신 없는 ‘눈속임’으로는 소비자를 잡을 수 없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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