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200m와 상권의 위기

‘줄폐업 공포’ ‘매출 급락’ ‘간판 떼는 가게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명동을 둘러싼 국내 미디어의 묘사다. 우리 경제가 침체를 겪을 때마다 명동의 위기가 조명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쇼핑 1번지’로 꼽혀서다. 하지만 이미 이곳은 외국인 전용 상권으로 변한 지 오래다. 부진을 겪는 것도 하늘길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문제를 코로나19에서만 찾아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명동의 ‘두 얼굴’을 취재했다. 

명동 상권은 활기를 잃었다. 수요를 떠받치던 유커가 빠진 탓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명동 상권은 활기를 잃었다. 수요를 떠받치던 유커가 빠진 탓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4월 22일 오후 7시, 240m 남짓한 명동8길엔 옅은 어둠이 내렸다. 이 거리는 명동 상권의 중심인 유네스코길 중간 지점에서 남북 방향으로 쭉 뻗어있다. ‘에뛰드하우스’ ‘미샤’ ‘아리따움’ ‘잇츠스킨’ ‘네이처리퍼블릭’ ‘이니스프리’ 등 국내 대표 화장품 브랜드 매장이 보였다. ‘휠라’ ‘아디다스’ 등 유명 패션 매장도 눈에 띄었다. 

평소대로라면 간판불로 환하게 밝혔을 테지만 코로나19의 상처는 컸다. ‘아리따움’ ‘에뛰드하우스’ ‘네이처리퍼블릭’ 등은 안내문을 내걸고 휴업 중이었다. 문을 연 가게 중에서도 손님 응대로 분주한 곳은 없었다. 매장에도, 거리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직원과 수다를 떨던 잡화매장의 한 점주는 “손님이 전멸 상태”라며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마침 무리를 지은 이들이 명동8길을 지나갔다. 을지로 인근의 직장인으로 보였다. 이들은 명동10길로 이어지는 골목에 위치한 마라탕 전문점의 문을 열어젖혔다. 들여다보니 가게 안은 만석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떠나 휑한 거리에 중국 음식점에 활기가 넘친다니.

명동 상권은 우리나라 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뉴스에서 잊지 않고 언급되는 장소다. 대형 백화점과 시내면세점 등 랜드마크가 즐비한 이곳은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으로도 유명하다. 올 1월 기준 전국 공시지가 1위는 명동의 ‘네이처리퍼블릭 명동월드점’이 차지했다. 2004년 이후 해마다 빼놓지 않고 17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관광ㆍ쇼핑 1번지 ‘명동’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숱한 미디어들이 명동의 위기를 조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내수시장이 얼어붙자 여러 미디어가 명동 상권의 비명을 다뤘다. “대낮에도 셔터를 내렸다”면서 상권의 줄폐업을 우려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명동의 위기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변수는 뻔했다. 이 상권을 떠받치는 유커가 빠진 탓이었다. 

공교롭게도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가 코로나19를 이유로 하늘길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지난 4일엔 우리나라로 입국했거나 우리나라에서 출국한 중국인이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인 출입국자 일일 통계가 ‘0명’을 기록한 건 처음이다. 거리가 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장남종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의 진단을 들어보자.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명동은 관광지 역할뿐만 아니라 국내 젊은 세대도 자주 찾는 거리였다. 상권도 좋았지만 입지로 봐도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커에만 치우친 불완전한 상권으로 전락했다. 상품군과 가격도 유커에 초점이 맞춰졌다. 덕분에 상인들은 큰돈을 만지긴 했지만, 부작용도 뚜렷했다. 유커의 숫자가 상권의 흥망을 결정하기 시작하면서다.”

명동 상가 건물이 비어간다는 분석도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2015년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ㆍMERS)가 확산했을 때도 명동은 위기였다. 2017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 THAAD) 배치가 결정됐을 때도 그랬다. 상권이 활기를 잃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며 ‘폐업정리’ 팻말을 어루만지는 자영업자의 기사로 도배됐다.

반면 한중 갈등이 해빙기에 접어들었던 2018~2019년엔 부활의 콧노래를 불렀다. 2018년 중국 국경절(건국 기념일) 연휴 기간 알리페이 결제액 순위 1위 상권에 서울 명동이 오르기도 했었다. 같은 기간 전세계 중국인 관광객은 알리페이로 평균 1979위안(약 32만4000원)을 썼는데, 명동에선 평균보다 71.6%가 더 많은 3396위안(약 55만6000원)을 결제했다. 

이처럼 상권의 위기는 반복된다. 위기 땐 쇠퇴하고, 다시 숨통이 트일 때면 활기를 되찾는 식이다. 장사는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명동은 장사가 안 될 때에도 자영업자들이 대응하기 어려운 상권이다. 경기가 나쁠 때도 임대료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유커만 몰리는 거리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조치가 극에 달았던 2017년 2분기, 이 지역의 평균 월 환산 임대료(3.3㎡당)는 15만4397원이었다. 2016년 2분기(14만2084원)보다 오히려 올랐다. 서울시 평균 임대료(10만7896원)와 비교해도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1층의 경우엔 21만2194원으로 서울시 평균(12만5870원)보다 2배가량 차이가 났다. 명동의 인근의 공인중개사는 “임대료를 내리면 건물 담보가치가 낮아지기 때문에 건물주들은 업황 부진에도 공실인 채로 버티곤 한다”고 설명했다.

명동 상권이 이런 위기를 되풀이하지 않을 해법은 하나다. 과거처럼 내국인도 즐겨 찾는 거리로 변모해야 한다. 명동8가 골목의 잡화점 점주는 “그간은 중국인 전용 매장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는데, 최근엔 시민들도 매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는 게 반갑긴 하다”고 설명했다. 어찌 됐든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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