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면세점의 진짜 문제

코로나19로 입출국이 막히자 인천공항 면세점이 한산해졌다.[사지뉴시스]
코로나19로 입출국이 막히자 인천공항 면세점이 한산해졌다.[사지뉴시스]

지난 1월 2조원이 훌쩍 넘었던 면세점 매출이 한달 만에 반토막(1조1026억원) 났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하늘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면세점 업계는 정부에 “재고를 백화점이나 아웃렛에서 팔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2015년 사드 때 이런 요청을 거절했던 정부는 장고에 들어간 듯하다. 문제는 정부가 요청을 받아들여 재고를 털어내면 면세점 업계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느냐다. 

“거대 수출산업으로 성장한 면세업이 코로나19 사태로 사상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했다. 쌓여가는 재고를 팔 수 있게 해달라.” 벼랑에 내몰린 면세점 업계가 정부에 SOS를 보냈다. 지난 7일 국내 주요 면세점 업체와 한국면세점협회(이하 협회)가 관세청을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이들은 재고상품을 국내 아웃렛 등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얼마나 힘들기에 정부에 구조신청을 보낸 걸까.

협회에 따르면 2월 면세점 업계 전체 매출은 1조102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7개월 연속 2조원대를 유지하던 매출이 반토막 났다.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3월엔 1조원대가 무너졌을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3월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50~60%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면서 “다른 면세점들은 상황이 더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3월 면세점 업계 전체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86.5%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면세점 매출이 이토록 바닥으로 떨어진 건 코로나19 영향이 크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이 외국인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하늘길이 막히니 면세점 매출은 당연히 악화할 수밖에 없는 거다. 매출도 매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재고다. 면세점 업계가 관세청을 찾아가 눈물 어린 호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협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코로나19라는 돌발적인 사태로 해외수요가 일시적으로 차단돼 선순환 구조가 붕괴되는 위험에 노출됐다.” 

무슨 말일까. 면세점은 통상적으로 3~6개월 전에 상품을 발주한다. ‘관광 성수기’인 봄철 제품은 면세점업체들이 이미 지난 가을 또는 겨울에 발주한 것들이란 얘기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때맞춰 나가야 하는 상품들이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버렸다. 

면세점협회에 따르면 미판매 상품과 장기체화 재고(시장에서 처리되지 못해 정체돼 있는 재고)까지 포함하면 면세점 업계의 재고 규모는 약 3조원에 이른다. 면세점 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의 재고만 해도 1조원이 넘는다. 이 재고를 처리하지 못해 물류창고 가동률만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아직 면세점 업계의 요청을 검토 중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 AAD) 사태 때 같은 제안을 반려했던 정부도 심각성을 고려해 장고에 들어간 듯하다. 업계 관계자는 “5월 첫째주 안엔 응답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럼 정부가 “재고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라”고 결정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정부가 면세점 업계에 긍정적인 답을 준다고 해도 그건 시작일 뿐이다.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다. 

일단 상품을 곧장 파는 게 불가능하다. 관세청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면세점 업계의 요청은 ‘규정에서 벗어난 사항을 예외적으로 적용해 달라’는 거다. 관세청이 그걸 일부라도 수용하면 고시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절차를 밟으면 시행하는 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이 때문에 고시를 손보는 것보단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지침’이나 ‘지시’가 하달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답을 준다고 가정했을 때 얘기다.” 혹여 관세청의 지침이나 지시가 하달되더라도 시행 시점은 예측하기 힘들다. 업계가 원하는 방향대로 정부가 응답하더라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업체가 해야 할 일도 많다. 현재의 유통구조는 창고에 쌓인 상품을 백화점이나 아웃렛에서 직거래하는 게 아니다. 가령 백화점은 임대업이기 때문에 중간에서 에이전트가 상품을 갖고 와 매장이나 브랜드 업체에 판다. 정부가 재고를 팔라고 허락해도 중간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상품 판매를 위해 통관절차를 거치려면 원가도 정해야 한다. 대부분 체화 재고이기 때문에 품목과 가격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면세점 업계가 이번을 계기로 비즈니스 모델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면세점 업계가 이번을 계기로 비즈니스 모델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이뿐만이 아니다. 브랜드 업체들이 판매를 원하지 않는 변수도 생각해야 한다. 면세점 업체의 한 관계자는 “관세청에 판매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재고는 대부분 2~3년 된 체화 재고”라면서 “업체 입장에선 브랜드 이미지를 생각해 판매를 꺼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면세점 업체의 또 다른 관계자는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재고를 판매한다고 해서 매출에 크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재고를 소진하지 못할 경우 폐기처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바엔 내수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정부에 요청을 한 것이다.”

미봉책으로 그쳐선 안 돼

한편에선 면세점 업계의 이번 요청이 미봉책으로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쌓인 재고만 팔아치울 게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거다. 정연승 단국대(경영학) 교수는 “업계의 요청이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훨씬 더 정교하고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위기일 때 개별기업이 살아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함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 면세점 업계는 빅3(롯데·신라·신세계)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정 교수는 “사실상 과점 체제인 지금 구조는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소비자들에겐 좋을 수도 있지만 산업적인 측면으로 봤을 땐 경쟁이 다소 느슨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면서 “단순히 명품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중국 일변도인 수요도 다원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눈앞에 쌓인 재고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비즈니스 모델을 재검토해 장기적인 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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