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걸어보니 … 불야성 사라지자 근심이 밀려왔다
테헤란로 걸어보니 … 불야성 사라지자 근심이 밀려왔다
  • 이지원 기자
  • 호수 386
  • 승인 2020.04.28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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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200m 르포

코로나19가 기세를 잃으면서 테헤란로에도 ‘봄’이 살짝 찾아왔다. 물론 예전 분위기를 회복하는 데까진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밤 11시 이후 어둠이 깔린 테헤란로의 모습에선 침체의 단면이 읽혔다. 상인들의 매출도 좀체 살아나지 않았다. 문제는 코로나19 그 이후다. 재택근무의 장점을 인지한 기업들은 ‘오피스 이전 또는 축소’를 통해 경비절감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임대료가 높은 테헤란로는 ‘떠나야 할 1순위’일 가능성이 높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테헤란로를 걸어봤다. 

강남구 테헤란로 상인들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강남구 테헤란로 상인들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는 강남역에서 삼성역을 지나 삼성교(송파구 잠실동)까지 4㎞가량 길게 이어진다. 폭 50m의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국내외 굴지의 기업이 둥지를 틀고 있다. 대기업뿐만이 아니다. 테헤란로 안쪽 이면도로엔 중소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중소형 오피스 건물도 많다. 서울 대표 오피스 상권인 셈이다. 

코로나19에 대학가·상점가 등 모든 상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테헤란로는 어떤 4월을 지나고 있을까. 꽃샘추위와 강풍이 기승을 부린 지난 4월 21일, 강남역 12번 출구를 빠져나와 국기원 입구 사거리에서 N타워(테헤란로 129)까지 200여m를 걸었다. 그곳은 ‘잔인한 4월’ 속에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이 한창이던 12시 30분, 테헤란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할 만큼 매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마스크를 쓰고 커피를 기다리는 사람들만 30여명을 훌쩍 넘었다. 커피를 기다리던 직장인 한소영(30)씨는 “코로나19로 사람이 줄어서 이 정도다”면서 “이전 같았으면 자리 쟁탈전을 해야 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매장에서 마시는 사람이 부쩍 줄었다”고 말했다.

몇 걸음만 떼면 있는 또다른 커피전문점 ‘블루보틀’도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4월 들어서 재택근무를 끝내고 출근하는 직장인이 하나둘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테헤란로가 있는 역삼동 상권을 쥐락펴락하는 건 직장인들이다. 역삼동의 직장인 인구 밀도는 1ha당 724명(이하 2019년 12월)으로, 강남구 평균(293명)보다 훨씬 많다. 대부분 30대(29.8%), 40대(27. 0%) 직장인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돌아온 테헤란로 상권은 코로나19의 여파에서 벗어나고 있을까. 

상인들의 체감은 달랐다. 국기원 입구 사거리에 있는 문구 전문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반토막 난 매출이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문구 전문점 관계자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3월 초에는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가 많아지면서 거리에 사람이 아예 없었다”면서 “회사원들이 하나둘 돌아오곤 있지만 일 매출은 여전히 사태 이전의 절반 수준이다”고 토로했다.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커피전문점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외국계 기업이 다수 입주한 N타워 인근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문영(가명ㆍ38)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 자리에서 6년째 영업하고 있는데, 지금이 가장 어렵다. 기업들이 밖에서 식사하는 것을 자제하라고 권고하면서 회사 밖으로 나오는 직장인이 훌쩍 줄었다. 회복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손님은 줄었는데 업체 간 경쟁은 여전하다는 점도 풀기 힘든 숙제다. 김씨는 “근처에 커피전문점이 워낙 많다 보니 출혈경쟁이 심해 단가가 낮다”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테헤란로가 위치한 강남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커피전문점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커피전문점 수는 458개로 2년 전(2017년 374개) 대비 22.4% 증가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평균 영업기간도 2.4년에 그친다. 

식당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점심 장사는 그나마 버티지만, 저녁 매출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지 오래였다. 한식집을 운영하는 최은희(가명ㆍ53)씨는 “점심 매출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저녁 매출은 거의 ‘제로’다”면서 “그렇다고 배달이나 포장 주문이 늘어난 것도 아니라서 임대료 낼 걱정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165㎡(약 50평) 매장의 한달 임대료가 600만원을 넘는데, 장사가 이렇게 안돼서야 어떻게 감당하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 자영업자 중 상당수가 높은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권리금마저 포기한 채 장사를 접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했다. 역삼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의 경우 매출이 급감했는데 임대료가 워낙 비싸다 보니 버티지 못한다”면서 “권리금 100만~150만원만 받고 나가는 경우도 숱하다”고 말했다.

강남구 사업체 수 ‘홀쭉’ 

15년째 한자리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해온 한형범(64)씨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직장인들의 달라진 소비 트렌드를 침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코로나19가 터진 후 길가에 사람이 없으니 한시간씩 일찍 문을 닫고 있다. 매출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요즘엔 배달이 발달해서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 않는다. 15년간 자리를 지켰지만 요즘이 가장 어렵다.” 

테헤란로 내 중소형 빌딩에 입주한 기업들이 빠져나가고 있다.[사진=뉴시스]
테헤란로 내 중소형 빌딩에 입주한 기업들이 빠져나가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러면서도 한씨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 “1~2주 전부터 사람들이 조금씩 다니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마무리되고 직장인들이 돌아오면 나이지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이곳 상권엔 다시 활력이 돌까. 무엇보다 기업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기업이 빠져나가면 유동인구가 줄고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코로나19 이후엔 강남을 떠나는 기업들이 부쩍 늘어날 공산도 크다. 재택근무의 장점을 인지한 기업이 ‘사옥 이전 또는 축소’를 통해 경비 절감을 꾀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로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난 3월 역삼동 사옥을 떠나 종로에 둥지를 텄다. 한국타이어도 올해 역삼동 본사를 판교 테크노밸리 사옥으로 옮길 예정이다. 대로변 대형 빌딩이야 쉽게 새주인을 찾겠지만 문제는 중소형 오피스 건물도 텅 비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또다른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테헤란로 안쪽에 있던 중소기업 중 많은 수가 수년 전부터 판교 테크노밸리와 상암동 DMC(디지털미디어시티)로 이전했다”면서 “임대료 차이가 크니 옮길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직장인이 줄어들고 자영업자 매출은 줄어드는 데 코로나19까지 터졌다”면서 “그렇다고 해도 강남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강남구 평균 오피스 임대료는 2만2500원(이하 1㎡당ㆍ2019년 4분기 기준)으로 판교 테크노밸리가 위치한 경기 분당구(1만6400원) 대비 6000원가량 비싼 수준이다. 
 

역삼동에 거주하는 주부 김미경(60)씨도 “동네를 다녀보면 ‘임대’가 붙은 건물들이 숱하게 많다”면서 우려했다. 김씨의 체감만은 아니었다. 강남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강남구에 둥지를 튼 사업체 수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6년(6~7월) 7만3590개이던 강남구 사업체 수는 2019년(2월~3월) 7만1373개로 줄었다.

종사자 수도 71만1278명에서 69만4136명으로 감소했다. 오피스 공실률도 높아지는 추세다. 테헤란로의 오피스 공실률은 2018년(이하 4분기 기준) 6.5%에서 지난해 6.9%로 0.4% 포인트 높아졌다. 중대형 매장의 공실률은 같은 기간 11.8%에서 14.1%로 2.3%포인트 상승했다. 

코로나19가 물러간다고 해도 테헤란로에 봄내음이 밀려들지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상업용부동산 전문 포털 부동산도서관의 정은상 대표는 “테헤란로 상권은 재택근무가 마무리되면 어느 정도 회복되겠지만, 소형 빌딩의 경우 최근 2~3년간 거래가 줄고 공실률도 높아졌다”면서 “테헤란로의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퇴근 시간이 지나자 직장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택시기사 윤종배(59)씨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다들 차를 몰고 나오는 데다 퇴근 시간도 빨라졌다. 퇴근 시간에 손님을 못 태우면 공쳤다고 봐야 한다. 밤 11시만 돼도 강남이 칠흑처럼 어두워진다. 강남이 이 정도니 다른 덴 어떻겠나….”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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