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 투자, 선순환의 경제학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상책上策’은 없다. 비용을 줄이는 게 능사일 수도 있고, 미래를 위해 베팅하는 게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 ‘위기에서 투자하라’는 격언이 이젠 정답이 아니란 거다. 다만, 위기 때 기업의 투자는 국가 경제가 ‘선순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고용 창출 등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가능성도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투자를 선택한 기업들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기업들이 움츠러들고 있지만, 오히려 투자를 늘린 기업들도 있다.[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기업들이 움츠러들고 있지만, 오히려 투자를 늘린 기업들도 있다.[사진=연합뉴스]

기업들이 잔뜩 움츠리고 있다. 경영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서다. 세계 경제 전망부터 사상 최악 수준이다. 4월 8일 세계무역기구(WTO)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생활에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올해 전 세계 무역량이 지난해보다 13~32%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그로부터 약 1주일 뒤인 14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면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로 하향 조정했다. IMF가 내놓은 경제성장률 전망치 중 역대 최저다.

코로나19 대응에 나름 성공한 한국이라 해도 뾰족한 수는 없다. 오히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가 겪는 타격도 만만치 않다. 수치로도 확인됐다. 4월 25일 한국은행은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4%로 집계됐다”면서 “이는 2008년 4분기(-3.3%) 이후 11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이라고 전했다. 유례없는 위기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고, 이에 따라 국내외 경제 상황도 최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와 비용을 줄이고, 현금 확보에 나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인수ㆍ합병(M&A)을 추진하던 기업들이 인수대금 납입을 미루고, 기업공개(IPO)를 앞둔 기업들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며 시장에서 철수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래 산업엔 “투자 중단 없다”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움츠러든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투자를 늘리는 기업이 있다. 우선 화학업계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LG화학이다. 이 회사는 올해 3세대 전기차(1회 충전 시 주행거리 500㎞ 이상) 중심의 대형 프로젝트를 적극 공략해 명실상부한 전기차 배터리 부문 1위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잡고 있다. 연말까지 배터리 생산능력을 ‘고성능 순수 전기차 기준 170만대(100GWh)’로 확대하기 위해 올해 시설투자 비용으로 책정된 6조원 중 3조원을 이미 배터리 사업에 투자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상황을 기술 격차 확대의 기회로 만들기 위해 연구ㆍ개발(R&D) 비용을 줄이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방침은 4월 6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의 임직원 메시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신 부회장은 이날 “당장의 어려움으로 미래를 담보로 잡으면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면서 “우리의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투자 등 꼭 해야 할 일은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케미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하던 지난 3월 30일 포스코케미칼 이사회에서는 배터리 음극재 생산공장 신설을 위해 2177억원을 투자하기로 의결했다. 포항시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 내 7만8535㎡(2만3798평)의 부지에 연산 1만6000t(톤) 규모의 인조흑연계 음극재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거다. 음극재 1만6000t은 전기차(50㎾h 기준) 36만여대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포스코케미칼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2020년부터 2030년까지 15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투자를 결정했다”면서 “2023년까지 일정 규모 이상의 음극재와 양극재를 생산할 수 있도록 설비투자를 더 늘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화학업체만이 아니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 타이밍’을 조율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직접투자 대신 간접투자 방식을 택한 곳도 있다. SK하이닉스는 4월 2일 이사회를 열어 중국 장쑤성江蘇省 우시無錫의 반도체 생산시설에 3조2999억원을 대여하기로 결정했다. 생산시설의 보완에 필요한 자금을 대여하기로 한 거다.

SK하이닉스는 이를 통해 월 3반장(12인치 기준)의 웨이퍼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선 SK하이닉스가 메모리 시장 회복세를 예상해 생산 규모를 늘리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독특하게도 ‘지역경제와의 상생’을 목표로 투자를 결정한 기업도 있다. LS전선이다. 강원도 동해시에 해저케이블 생산시설을 두고 있는 LS전선은 3월 23일 강원도ㆍ동해시와 304억원 규모의 투자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회사가 입주해 있는 송정일반산업단지 내 4514㎡(약 1367평)의 부지에 턴테이블(해저케이블을 감아 놓는 구조물) 등 첨단시설을 증설하기 위한 투자다. 강원도와 동해시는 이번 증설 투자가 고용 창출, 지역 소비, 세수 증가 등으로 이어져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위기에서 희망 찾는 기업들

코로나19에 콘텐트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지만, ‘정면돌파’를 꾀하는 기업도 있다. 태광그룹은 3월 31일 미디어 콘텐트 제작에 투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미디어 콘텐트 계열사인 티캐스트를 통해서다. 티캐스트는 현재 종합 엔터테인먼트 E채널을 비롯해 영화ㆍ드라마ㆍ여성트렌드ㆍ애니메이션ㆍ미국 드라마 등 총 10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영화관 ‘씨네큐브’도 운영하고 있다.

티캐스트는 콘텐트 제작에만 최소 1000억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강신웅 티캐스트 대표는 “콘텐트 업계가 모두 힘들고 어렵지만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획기적인 투자를 통해 침체된 콘텐트 산업을 활성화하고, 킬러 콘텐트 발굴로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어 가겠다”고 전했다. 

‘위기의 순간 투자하라’는 격언은 이제 정답이 아닐지 모른다. 위기의 순간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상책이 될 수 있다. 미래를 위해 베팅을 하든, 현금을 쟁여놓든 모두 경영자의 선택이다. 다만, 경기가 침체할 때 기업의 ‘투자’는 국가 경제가 선순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고용 창출 등의 부문에서 시너지 효과가 날 수도 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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