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 경영

올해 초 불거진 프랑스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의 뇌물공여 사건은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프랑스, 미국, 영국 법무부와 합의한 벌금액이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뇌물 관련 벌금 중에선 역사상 최대 규모다. 재판은 받지 않았지만 사실상 부패행위를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에어버스가 뇌물을 준 명단에 있는 기업들은 어떨까. 뇌물수수 혐의를 인정하고 있을까.

대한항공이 에어버스의 항공기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이 에어버스의 항공기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이 프랑스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Airbus SE)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에어버스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A330 항공기 10대를 대한항공에 팔았는데, 여기에 대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프랑스 경제검찰(National Financial Prosecutor)에 따르면 에어버스가 당시 대한항공 고위 임원에게 1500만 달러(약 180억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하기로 약속했고, 이에 상응하는 돈이 2000년~2013년 사이 3차례에 걸쳐 전달됐다. 수면 아래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에어버스 자회사 소속 프로그램 디렉터의 내부고발로 촉발됐다.

국내에서 대한항공의 리베이트 수수 의혹이 제기된 건 3월 4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다. 채이배 민생당 의원(당시)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이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3자 연합(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ㆍ반도건설ㆍKCGI)’이 프랑스 고등법원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람은 있는데 받았다는 사람이 없다. 대한항공 측은 “현 경영진들은 리베이트 의혹과 관련이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특히 3자 연합이 공개한 문서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3자 연합은 “프랑스 법원이 공청회를 통해 사실관계를 검토한 후 승인한 문서”라고 주장하고, 대한항공 측은 “객관적 증거에 기초한 재판의 판결이 아니라 법원이 확인한 합의서일 뿐”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이를 가늠하기 위해 우선 논란의 중심에 있는 문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서의 이름은 ‘Convention Judiciaire D’interet Public(CJIP)’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법공익협정’이다. 쉽게 말해 기소유예합의 제도인데, 이를 통해 부패 혐의에 연루된 기업이 정식으로 기소되기 전에 검찰과 합의해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 검찰과 회사가 합의하면 법원이 그 내용을 확인해주는 미국의 기소유예합의서(DPA)의 영향을 받아 도입됐다. CJIP가 ‘프랑스판 DPA’로 불리는 이유다. 

앞서 3자 연합이 공개한 문서는 프랑스 검찰과 에어버스가 지난 1월 29일 체결한 CJIP다. 이 문서의 4항인 ‘사실관계 진술’에는 대한항공을 포함한 8개 항공사와의 계약 내용이 기술돼 있다. 그리고 각 사실관계의 말미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프랑스 검찰은 이런 사실이 프랑스 형법에 규정된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에어버스는 프랑스 검찰이 3년 간 기소를 유예한다는 조건으로 20억8314만 유로(약 2조7646억원)의 벌금을 내는 데 합의했다. 

기소유예 받는 대신 벌금 폭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에어버스는 해외 뇌물 혐의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ㆍ영국 정부와도 벌금을 지불하는 데 합의해야 했다. 미국 법무부(DOJ)가 지난 1월 31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에어버스가 미국과 영국에 내야 하는 벌금은 각각 20억9000만 달러(약 2조5690억원), 10억9000만 달러(약 1조3398억원)에 달한다.[※참고 : 이 사건은 영국에서 시작돼 프랑스ㆍ미국으로 확대됐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2017년 1월 합동조사팀을 구성해 공조 수사를 진행했다.] 

주목할 건 에어버스가 지불할 벌금이 해외 뇌물 관련 벌금 중에선 역사상 최대 규모라는 점이다. 프랑스와 영국의 부패방지법은 물론 미국의 해외뇌물방지법(FCPA)에서도 마찬가지다. 벌금액 20억9000만 달러를 기록한 에어버스는 이전까지 FCPA 벌금 순위 1ㆍ2위에 올라있던 브라질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17억8000만 달러)와 스웨덴 통신기업 텔리아(10억6000만 달러)를 단숨에 제쳤다. 

에어버스는 사실상 뇌물 역사에서 신기원을 이뤘다. 지불해야 할 벌금이 수조원대다. 프랑스 검찰과 작성한 CJIP에는 글로벌 기업들에 뇌물을 준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다. 이 내용이 팩트가 아니라면 에어버스가 벌금을 내는 데 합의했을 리 없다. CJIP가 법원의 판결문이 아니라고 해서 객관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말은 난센스라는 얘기다.

[※참고 : 문서를 공개하며 수사를 촉구한 건 3자 연합이다. 하지만 조원태 회장뿐만 아니라 조현아 전 부사장도 법의 심판을 피해갈 순 없다. 채이배 전 의원은 리베이트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당시 조원태 회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은 모두 대한항공의 등기이사로 리베이트 수수 행위에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11월엔 삼성중공업이 뇌물공여 혐의로 미국 법무부와 벌금을 내는 데 합의하고 DPA를 체결했다. 대한항공의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되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뇌물 사건에서 공여 혐의와 수수 혐의가 모두 인정되는 셈이다. 

 

부패는 서로 연결돼 있다. 뇌물수수는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구조다. 주는 자가 있으면 받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통상 뇌물수수 의혹이 불거지면 준 사람은 있지만 받는 사람은 없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사를 받을 때 뇌물을 준 자는 본인이 살기 위해 자백하지만 받은 자는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리베이트로 오갔다는 180억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 그 큰돈이 어디로 갔을까.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