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의 상권

코로나19가 지나간 뒤 우리 상권은 어떻게 변할까. 예전처럼 소문난 맛집 앞엔 긴 줄이 늘어서고, 대형상가엔 사람이 북적일까. 전문가들은 우리 상권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언택트 소비문화가 일상이 되는 날에 대비해 ‘배달 전문점’을 창업하거나, 한눈에 소비자를 끌 만한 가게를 준비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서다. 이런 트렌드가 확산되면 임대료가 저렴한 후미진 골목이 ‘핫한 상권’으로 바뀔 수도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상권 패러다임은 크게 달라질 공산이 크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 이후의 상권 패러다임은 크게 달라질 공산이 크다.[사진=뉴시스]

올해 1분기 민간소비가 직전 분기 대비 6.4% 감소했다. 외환위기(1998년 1분기 -13.8%)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율이다. 경제성장률은 -1.4%였는데, 소비절벽이 갉아먹은 성장률만 3.1%포인트였다. 소비와 접점이 많은 상권의 타격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대면 접촉을 금기시하는 방역정책은 사람이 몰리는 거리를 휑하게 만들었고 시민들의 지갑은 자연스럽게 닫혔다.

자영업계에선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산 초기에 중국 입국자를 막고 효율적으로 대처했다면 이렇게까지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글로벌 위기로 번진 상황에선 정부 탓만 하기 어렵다.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전염병 대유행ㆍPandemic)을 선언했다. 전세계 확진자는 264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18만명(4월 24일 기준)으로 집계됐다. 확진자가 급증한 국가 중엔 중국인 입국을 금지한 미국ㆍ일본 등도 포함됐다.  

반면 한국은 4월 18일 이후 ‘신규 확진자 20명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효과적인 방역시스템과 이를 신뢰하고 따른 시민의식이 감염을 억제했다는 평가다. 모범 방역사례로 꼽히면서 수많은 국가로부터 ‘방역물품을 보내달라’는 요청에 시달리고 있다.

방역에서 성과를 낸 정부는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를 5월 5일까지 이어가되, 강도를 낮추기로 결정했다. ‘운영중단’을 권고했던 유흥시설과 일부 생활체육시설, 학원, 종교시설 등은 ‘가급적 운영자제’로 바꿨다. 

완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 모양새다. 정부가 분석한 국민 이동량을 보면 신천지대구교회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2월 4주차(2월 24일〜3월 1일) 이동량이 최저점을 기록했다가, 이후 조금씩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한 직후에는 이동량과 카드사용액 모두 감소했지만 점차 회복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4월 30일 제주행 항공편이 매진됐고, 제주도에 빈방을 찾기 어렵다는 보도가 속속 나왔다. 번화가와 한강공원 등은 젊은 세대가 몰리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자영업계는 ‘V자 반등’을 기대하는 눈치다. 지갑을 열지 않고 버텨온 국민들의 소비 심리가 조만간 폭발할 것이란 기분 좋은 전망도 들린다. 이른바 ‘보복 소비’ 현상이다. 줄폐업을 우려하던 상인들은 이제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수립하느라 분주하다. 

공생도시상권재생연구소의 강헌수 소장은 “충분한 경쟁력이 있는 가게는 전염병 우려가 극심할 때도 빈 테이블이 많지 않았다”면서 “오프라인 상권의 강력한 영향력은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 다시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거리두기 완화로 되찾은 활기

문제는 상권이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느냐다. ‘코로나19 이전’과는 많이 다를 거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서울 구로구의 오피스 밀집지역에서 10년간 식당을 운영했던 한 점주의 설명을 들어보자.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이 급락하자 어쩔 수 없이 배달을 시작하면서 그간의 영업철학이 완전히 바뀌었다. 매출 대비 수익을 따져 보면 배달만 한 게 없었다. 홀 장사를 하면 공간이 넓어야 하고 그로 인해 임대료 부담이 만만치 않다. 코로나 같은 이슈가 터지면 꼼짝없이 폐업 걱정에 떨어야 한다. 임대차 계약이 끝나는 대로 골목길 작은 식당에 배달전문점을 차릴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가 진정된 이후에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점주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는 일상의 많은 것을 바꿨다. 수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도한 게 대표적이다. 갑작스러운 근무 방식 변화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확진자가 감소한 지금도 일부 회사는 언택트(비대면) 방식을 점차 늘리고 있다. 

이에 따른 특수特需를 누린 건 배달업계다. 애플리케이션(앱) 분석서비스 와이즈앱이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소매시장 업종별 소비자 결제금액을 조사한 결과 가장 큰 비율로 증가한 업종은 ‘배달’로 나타났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의 3월 결제 추정금액은 1월 대비 44.0% 증가했다. 

언택트 소비가 주를 이루는 트렌드는 오프라인 상권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게 분명하다. 가령 배달전문점이 늘어날 경우, 상권 경쟁의 문법은 완전히 달라진다. ‘목잡기 경쟁’이 치열했던 과거와 달리 임대료가 저렴한 허름한 골목길이 되살아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배달 장사는 소비자 접근성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상권 V자 반등은 어려워 …

사실 이런 변화가 낯설기만 한 것도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커다란 면적의 매장, 역세권 입지, 막강한 홍보력을 무기로 한 대형상점이 상권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지금은 다르다. 작더라도 개성 있는 문화로 무장한 가게에 사람이 몰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특색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인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비롯한 수많은 ‘○리단길’이 대표 사례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울 상권의 노른자로 꼽히는 명동ㆍ강남 등을 취재한 결과도 같았다.임차인을 구하는 광고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고 점포정리 현수막을 내건 가게도 엿보였다. 이들 중엔 언택트 소비 문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면서 ‘개성 넘치는 가게’를 꿈꾸는  이들도 있었다. 상권의 지형 변화가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이 새롭게 터득한 일상이 오프라인 상권의 부활 비결이 될 것”이라면서 “위기를 기회로 판단하고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는 자영업자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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