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조의 퇴직연금 길라잡이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이 200조원을 돌파했다. 2005년 12월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15년 만이다. 하지만 퇴직연금이 커진 덩치만큼 노동자의 은퇴 후를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2.2%)이 최저임금 상승률(2.9%)에도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상품을 파는 금융회사는 수수료 장사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짙어서다. 퇴직연금이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지난해 200조원을 돌파했다.[사진=뉴시스]

4월 초 퇴직연금과 관련한 흥미로운 자료 두가지가 발표됐다. 고용노동부의 ‘2019 년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과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의 ‘2019년 개인형퇴직연금(IRP) 판매 평가 결과’다. 먼저 고용노동부의 자료를 살펴보자.

지난해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200조원(221조원)을 돌파했다. 2018년(190조원) 대비 16.4% 늘어난 금액이다. 2005년 12월에 도입된 퇴직연금제도가 적립금 163억원으로 시작했다는 걸 감안하면 15년 만에 덩치가 1만3570배나 커진 셈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 적립금액 737조7000억원(2019년 기준)의 30%에 달하는 금액이기도 하다.[※참고: 다른 연기금인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지난해 적립금 규모는 각각 21조4000억원, 12조원이다.]

유형별로는 확정급여형(DB·Defined Benefit) 138조원, 확정기여형(DC·Defined Contribution) 57조8000억원, 개인퇴직연금(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25조4000억원이 적립됐다. 이 가운데 가파른 증가세를 기록한 것은 IRP다. 2018년(19조2000억원) 대비 32.4%(6조2000억원)나 늘어났다. DB형과 DC형의 증가율 13.9%, 16.3%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퇴직 이후 준비해야 할 노후에 관심을 갖는 노동자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문제는 커진 덩치만큼 퇴직연금이 노동자의 퇴직 이후 삶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있느냐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답은 ‘그렇지 않다’다. 규모는 커졌지만 수익률은 저조하다. 지난해 퇴직연금의 연간수익률은 2.25%에 불과했다. 그나마 전년(1.01%) 대비 1.24%포인트 올랐다는 게 위안거리다.

DB형이 1.86%로 가장 낮았고, DC형과 IRP는 각각 2.83%, 2.99%를 기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상승률이 2.9%라는 걸 감안하면 긍정적인 성적표라고 볼 수 없다. 이는 안정성만 추구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이 89.6%에 달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흥미로운 점은 투자 수익을 추구하는 DC형의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이 DB형보다 높은 94.6%에 달한다는 것이다. 금융회사가 수익률 관리는 뒷전인 채 고객만 끌어들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IRP의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비중도 74.5%로 높지 않다는 점이다. DB형과 DC형이야 회사에서 관리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IRP는 얘기가 다르다. 여기서 봐야 할 것이 앞서 언급한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의 ‘2019년 개인형퇴직연금(IRP) 판매 평가 결과’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은 미스터리쇼핑을 실시한 결과, 금융회사의 IRP 상품 가입상담 점수가 평균 33.8점(100점 만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참고: 미스터리쇼핑이란 감독기관이나 평가기관이 고객으로 가장해 해당 업체나 매장의 서비스와 고객 응대 수준을 평가하는 조사방법이다.]

불완전판매 위험이 큰 편이라는 의미다. 상담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은 IRP에 가입하면 연말정산에서 16.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만 강조했다.[※참고: IRP에 가입하면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종합소득 4000만원 이하)는 연말정산 시 16.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총급여 5500만~1억2000만원 이하 소득 근로자(종합소득 4000만~1억원 이하)는 13.2%를 공제받는다.] 중도인출이나 해지할 경우 세제 혜택을 받은 납입금액과 운용수익에 16.5%의 기타 소득세가 부과된다는 건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IRP 가입 시 발생하는 비용을 설명하지 않는 경우도 49.6%에 달했다. 세제 혜택이라는 장점만 강조하고 수익률과 비용은 뒷전이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IRP의 총비용 부담률(운용관리 수수료+자산관리 수수료+펀드 총비용)은 0.42%를 기록했다.

1년에 100만원을 납부하면 4200원이 비용으로 발생한다는 얘기다.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난해 IRP 적립금 규모가 25조4000억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금융회사가 1066억원이라는 큰돈을 수수료로 챙긴 셈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200조원을 넘어선 것을 좋아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규모는 늘었지만 여전히 수익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도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기도 하다. 매번 강조하지만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함께 불안한 노후를 책임질 마지막 수단이다.

부실한 현실은 외면한 채 적립금의 규모를 갖고 호들갑을 떨면 안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것이 불안한 상황이다. 지난해 반짝 회복세를 보였던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도 높다.


퇴직연금 잘 모르는 노동자 수두룩

정부는 전 사업장(10인 미만)에 퇴직연금제도의 의무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2022년까지). 현재는 10인 이상 사업장까지 의무 가입 대상이다. 모든 노동자가 퇴직연금에 가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저축은행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수익률이 은행 상품보다 높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도 모르고 있는 기업이나 노동자는 많다. 퇴직연금의 규모에 맞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퇴직연금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도 바뀌어야 한다. 퇴직연금은 길게는 20~30년간 운용되는 최장기 상품이다. 가입부터 활용법까지 자세한 설명과 관리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하지 않은 채 고객 끌어들이기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안정적인 수익률과 질적 성장을 위한 전략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 
iunclejo@naver.com

정리=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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