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외벌이 부부 재무설계 上

승진과 함께 월급이 늘었다. 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할까. 많은 부부들이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이곤 한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달라서다. 이번 상담의 주인공도 그렇다. 남편은 대출금을 털고 싶어하는 반면, 아내는 자녀 양육비와 목돈을 마련하길 원한다. 누가 더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한국경제교육원㈜의 30대 외벌이 부부의 사연을 들어봤다.

늘어난 월급 사용처를 두고 갈등을 빚는 부부들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늘어난 월급 사용처를 두고 갈등을 빚는 부부들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업주부인 양희나(가명ㆍ39)씨는 요즘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를 자꾸 흥얼거린다. 동갑내기 남편 김승태(가명ㆍ39)씨가 얼마 전 회사에서 과장으로 승진을 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점도 자랑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월급이 꽤 올랐다는 사실에 양씨는 기분이 좋았다.

양씨가 처음부터 전업주부였던 건 아니다. 직장인 시절 첫째를 낳고 복직했던 양씨는 아이에게 일이 생길 때마다 눈치 보며 휴가를 내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둘째를 갖자마자 사표를 냈다. ‘외벌이’로 두 자녀를 키우는 게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어디에 맡길 형편도 아니었다. 양씨는 퇴사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양씨는 혼자 돈을 버는 남편에게 줄곧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양씨는 “이제 소득이 늘었으니 부담감을 좀 내려놔도 되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남편도 양씨와 같은 기분일까. 그렇지 않았다. 승진을 했지만 김씨의 머릿속은 고민투성이였다.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데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게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무엇보다 집 문제가 김씨를 괴롭혔다. 김씨가 사는 곳은 경기도 김포의 전세 아파트(2억3000만원)인데, 4번의 이사 끝에 얻은 보금자리였다. 전세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올리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매번 집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 사는 아파트도 올 12월이 만기다. 조바심이 난 김씨는 벌써부터 새집을 알아보고 있다.

월 100만원에 이르는 아이들 교육비도 김씨의 어깨를 짓누른다. 아홉살 첫째에게만 매월 70만원의 사교육비를 쓰는데, 올해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 교육비는 더 불어날 게 분명하다. 김씨는 아내에게 “아이들 학원 수를 좀 줄여야 한다”고 제안해 봤지만 양씨의 교육열을 막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담보대출 1억원(연이율 2.4%)과 회사에서 빌린 사내 대출 5000만원(연이율 1.0%)도 큰 부담이다.

반면 양씨는 ‘천하태평’이다. 아파트 문제만 해도 그렇다. 더 싼 동네로 이사 가려는 남편과 달리 양씨는 전세금을 올려주더라도 계속 이 동네에서 살고 싶어 했다. 신축 아파트라 단지가 깔끔하고 아이들 키우기에 주변 환경이 좋다는 게 이유였다. 대출금에 관해서도 양씨는 “남들도 다 그 정도는 빌리지 않냐”며 “빚을 갚느라 안달복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생각이 정반대다 보니 승진으로 늘어난 소득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렸다. 김씨는 빨리 대출금을 갚고 빚 없는 전세 아파트에서 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양씨는 아이들 학원비에 좀 더 신경을 쓸 생각이었다. 만약을 위해 비상금도 마련하길 원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말싸움이 계속됐고, 결국 김씨 부부는 재무상담을 받은 뒤 월급 인상분의 사용처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럼 부부의 가계부를 한번 살펴보자. 부부의 월 소득은 560만원이다. 소비성 지출로 부부는 공과금 32만원, 생활비 140만원, 교통비 18만원, 정수기 렌털 3만원, 통신비 28만원, 부부 용돈 총 60만원, 자녀 교육비 100만원, 보험료 70만원, 대출이자 24만원 등 475만원을 쓴다.

비정기 지출에는 명절비ㆍ경조사비(연 80만원), 부모님 용돈(80만원), 의류비(180만원), 휴가비(200만원), 의료비(50만원) 등 1년에 590만원을 쓴다. 월평균 49만원을 지출하는 셈이다. 금융성 상품으로는 부부가 각각 10만원씩 주택종합청약저축에 가입했다. 이밖에 은행예금(20만원)까지 합해 총 40만원을 저축한다. 부부는 한달에 564만원을 쓰고 4만원의 적자를 보고 있었다.

소득이 늘어나서인지 표면상으론 김씨 부부에게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다른 부부에 비하면 월 4만원의 적자는 애교에 가깝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불필요한 지출항목이 한가득했다. 이번 상담에선 본격적인 지출 줄이기에 앞서 몇몇 항목들의 지출을 가볍게 줄여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월 140만원씩 쓰는 생활비가 눈에 밟혔다. 외식비가 포함된 금액이라곤 하지만 4인 가구치곤 씀씀이가 과했다. 일단 양씨에게 냉장고부터 점검해보라고 조언했다. 그 결과, 유통기한이 지난 두부부터 먹고 남은 피자, 철 지난 아이스크림, 온갖 식재료 등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전업주부임에도 요리를 거의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은 결과였다. 양씨는 앞으로 매주 식단을 짜서 생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생활비는 140만원에서 90만원으로 50만원 줄었다.

다음은 부부의 용돈(총 60만원)이다. 이중 김씨가 40만원을 쓴다.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을 배려한 결과다. 그럼에도 줄일 구석이 있었다. 김씨의 용돈 사용내역을 자세히 보니 10만원가량이 가족 외식비로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론 외식 횟수를 좀 줄이기로 결정, 김씨 용돈을 4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절감했다.

간단한 지출 줄이기가 끝났다. 김씨 부부는 1차 상담을 통해 생활비(50만원)ㆍ용돈(10만원) 등 총 60만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부부의 가계부도 4만원 적자에서 56만원 흑자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줄여야 할 항목은 여전히 산더미다. 70만원이나 지출하는 보험료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고 대출이자(24만원)도 해결해야 한다.

전세자금ㆍ대출금ㆍ자녀 양육비 등 부부가 당면한 재무 이벤트를 준비하려면 꽤 큰 목돈이 필요해서다. 어느 항목에 더 비중을 둘지 시간을 두고 고려해볼 필요도 있다. 어떻게 해야 김씨 부부의 지출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을지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