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가 벤치마킹해야 할 사례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 의약품 사건ㆍ사고가 터질 때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식약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했을까. 되풀이되는 의약품 사건ㆍ사고로 국민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럼 식약처에 필요한 진짜 대책은 뭘까.

미국 FDA의 켈시 박사는 철저한 의약품 심사를 통해 탈리도마이드 부작용 피해를 막아냈다. 사진은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의 시위 모습.[사진=연합뉴스]
미국 FDA의 켈시 박사는 철저한 의약품 심사를 통해 탈리도마이드 부작용 피해를 막아냈다. 사진은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의 시위 모습.[사진=연합뉴스]

‘인보사 사태’ ‘무허가 스텐트(혈관에 주입하는 의료기기) 유통’ ‘메디톡신 시험성적서 조작’…. 이런 이슈가 터질 때면 의약품 관리ㆍ감독에 책임이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늘 하는 말이 있다.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재발 방지 노력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문제는 늘 반복됐고, 식약처는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다는 지적을 받았다. 식약처는 대체 무엇을 바꿔야 할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식약처의 애매한 정체성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식약처는 본래 규제부처다. 하지만 의약품 산업을 진흥시키는 산업부 역할도 맡고 있다. 식약처가 의약품 수출 활성화 방안을 내고 산업진흥정책을 연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규제와 육성이라는 상충된 역할을 함께 맡고 있다 보니 규제부처로서의 힘과 발언권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해외에선 규제부처와 산업부처가 엄격히 구분돼 있고,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가 편의성과 효율성을 우선순위에 두는 반면 해외는 ‘규제부처와 산업부처는 서로 견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미국의 경우, 규제는 식품의약국(FDA)이 하고, 산업진흥전략과 연구ㆍ개발(R&D)은 미국국립보건원(NIH)이 전담하는 이유다. 우리 식약처도 규제부처와 산업부처를 분리해야 한다.”

식약처와 제약바이오 업체들 간의 유착관계를 끊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의약품 사건ㆍ사고에는 늘 유착관계 의혹이 불거졌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가 품목허가 될 때도 그런 논란이 있었다. ‘품목허가 반대’로 결정된 중앙약사심의위원회 1차 회의의 결과를 2차 회의에 투입된 위원들이 뒤집었는데, 이들 대다수는 코오롱생명과학과 관련 있는 위원들이었다.

최근 터진 메디톡신 논란(시험성적서 조작 혐의)을 두곤 승인 당시 식약처장이 메디톡스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잇따랐다. 전진한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이의경 식약처장만 해도 기업에서 인보사의 경제성을 연구한 인물”이라면서 “이런 환경에서 의약품 관리ㆍ감독이 제대로 될 수 있을 리 없다”고 지적했다. 

제약바이오 산업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이 의약품 관리ㆍ감독 시스템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많다. 국민 건강과 보건 관점에서 봐야 할 제약바이오 산업을 경제성으로 판단한다는 거다. 식약처의 허술한 시스템을 바로 잡아야 할 정부와 국회도 마찬가지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정부와 국회가 규제 완화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의약품을 상품화해 수출을 진작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안전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례로 첨단재생바이오법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임상3상을 면제해줄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임상3상은 약의 부작용과 안전성을 점검해야 할 중요한 단계다.”

그렇다고 규제 완화가 제약바이오 산업을 육성하는 데 일조한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규제를 완화할수록 안전성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는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나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정부는 세계에서 개발된 줄기세포 치료제 중 국내 제품이 가장 많다면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해외에선 국내 줄기세포 치료제의 안전성에 의문부호를 붙이는 곳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적 이익만 좇아 생길 수 있는 리스크는 그뿐만이 아니다. 제약바이오 투자 광풍이 불면서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데, 제약바이오 산업엔 독이 될 수 있다. 제약바이오 종목은 작은 이슈에도 주가가 널을 뛰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노리고 제약바이오 시장에 뛰어들거나 무턱대고 투자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진한 국장은 “제약바이오가 코스닥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쉽게 활용될 수 있다”면서 “문제는 무분별한 투자를 부추겨 제약바이오 산업을 어지럽히고 의약품의 안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고 설명했다.
 
국내 의약품 관리ㆍ감독의 시스템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필요한 건 겉핥기식 단기 대책이 아니다. 근본적인 부분부터 바꿔야 한다. 식약처뿐만 아니라 정부, 국회도 팔을 걷어붙여야 바꿀 수 있다. 누군가는 “제약바이오 업체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탈리도마이드(입덧 치료제) 사건을 보면 답이 나온다. 

1950년대 독일의 한 제약사가 개발한 탈리도마이드는 유럽 전역과 호주ㆍ일본 등에 심각한 부작용(해표지증ㆍ팔다리가 짧은 상태로 태어나는 병)을 남겼는데, 유독 미국에선 피해가 적었다. 미국 FDA의 한 심사위원이 서류가 미비하고 실험자료가 불충분하다며 6번이나 승인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해야 할 좋은 사례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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