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재용 부회장의 반성문은 글로벌 기업 삼성이 해야 할 일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를 계기로 대주주 중심 경영에서 소액주주,종업원,하청기업 등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사진=뉴시스]
이재용 부회장의 반성문은 글로벌 기업 삼성이 해야 할 일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를 계기로 대주주 중심 경영에서 소액주주,종업원,하청기업 등 이해관계자를 존중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사진=뉴시스]

개인이든, 기업이든, 정부든 때로 잘못을 한다. 그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는 이른 시기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것이 긴요하다. 사태 초기에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나 기업과 정부의 책임자가 등 떠밀려 하는 것이 아닌, 직접 스스로 나서야 한다. 

잘못과 실수를 솔직히 그대로 인정하고, 책임지겠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아울러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마음이 상한 상대방이나 소비자, 국민의 기분이 풀리고 사태도 점차 누그러진다.

사과는 그 시기와 사과 대상, 사과 발언의 내용과 사후 조치 등 네 박자가 어우러져야 통한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상황을 납득시키는 단계를 넘어 피해자를 감동시키거나 사태를 반전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반면 여론에 밀려 뒤늦게 사죄하면서 일방통보에 그치거나 말로만 사과하고 후속 조치가 없으면 역풍을 맞기도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신과 삼성의 과오와 관련해 6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 시기나 절차, 내용에서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우선 이번 사과는 자발적이 아닌 법원의 권고로 만들어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준법감시위는 두 달 전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한 반성과 사과, 무노조 경영 폐기, 시민사회와 소통 등을 요구했다. 

시기가 늦었을 뿐더러 사과의 대상이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다. 이번 사과가 재판과 수사에서 유리한 영향을 미치려는 방편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삼성의 노조 와해 혐의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재판도 진행 중이다. 

사과의 시기나 진정성, 후속조치로 볼 때 세계적 제약회사 존슨앤존슨의 제임스 버크 회장이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 때 취한 위기관리가 모범 사례로 꼽힌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누군가 이 회사의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넣어 7명이 숨졌다. 진상 조사에 착수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시카고 지역의 타이레놀을 수거하라고 권고했다.

제약회사의 약품관리 소홀이 아닌 정신이상자의 범죄행위였는데도 버크 회장이 나서 사태에 책임지겠다며 사과했다. TV에 직접 출연해 상황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신문과 옥외에 타이레놀을 구입하지 말라고 광고했다. 

주주와 재무부서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카고 지역만이 아닌 미국 전역에서 타이레놀 3100만병을 회수했다. 2억4000만 달러의 손실을 감수했다. 이어 유리병에 넣어 팔던 제품을 쉽게 뜯기지 않는 3중 봉합 포장으로 바꿨다. 매출 손실을 회복하는 데 3년 가까이 걸렸지만 이 일로 존슨앤존슨은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타이레놀은 점유율 1위 제품으로 우뚝 섰다.

삼성 오너 일가는 과거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대국민 사과와 입장 발표를 여러 차례 했다. 그 대부분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것이었다. 상속과 증여에 따르는 세금 납부를 피하고, 편법과 불법으로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려다 빚어진 일이었다. 그럼에도 잘못된 관행이나 범법행위와 단절하지 않았다가 이번에 다시 등 떠밀려 사과했다. 

대국민 사과문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권 문제로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 지탄을 받을 일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도 밝혔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대국민 사과와 약속은 말이 아닌 후속 조치와 행동으로 이어질 때 진정성을 가진다. 확실한 실천으로 약속을 이행함으로써 이번 사과가 위기 모면용 방편이 아님을 입증함은 물론 이 부회장과 삼성이 국민과 국내외 소비자들의 신뢰를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유대인의 자녀교육서 「탈무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반성하는 자가 서 있는 땅은 가장 훌륭한 랍비(유대교 사제)가 서 있는 땅보다 존귀하다.’ 이 부회장의 반성문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이 해야 할 일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불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해온 기업이 사랑받기는 어렵다. 대주주 중심 경영에서 소액주주와 고객,종업원,거래 하청기업 등 이해관계자를 고루 존중하는 조화로운 경영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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