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근절 안 되는 이유

의약품 리베이트는 우리 사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없어져야 할 악습이다. 정부가 이를 근절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 숱하게 많은 이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제약업계는 볼멘소리를 낸다. “복제약이 판치는 시장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구조를 만든 게 제약업계였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의약품 리베이트의 덫을 취재했다.

그간 정부는 강력한 리베이트 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불법 행위는 사라지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그간 정부는 강력한 리베이트 방지 대책을 내놨지만, 불법 행위는 사라지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의약품 거래를 두고 경품 제공을 금지하는 약사법 시행규칙이 생긴 건 1992년 7월의 일이었다. 당시 제약사는 병ㆍ의원에 꾸준히 뒷돈을 줬다. 의약품 판매액의 일부를 다시 건네는 불법 리베이트였다. 자사 제품 처방을 많이 해달라는 이유로 돈을 건네는 경우도 숱했다.

2008년 12월에도 법이 개정됐다. 제약사가 판매 촉진과 관련된 경제적 이익을 주는 걸 금지했다. 그럼에도 업계 고질병인 리베이트는 판을 쳤다. 2010년 11월엔 뒷돈을 주고 받은 업체와 의료인 모두를 처벌하는 ‘쌍벌제’가 시행됐다. 이때도 관행처럼 굳은 리베이트를 뿌리 뽑진 못했다. 리베이트 말고도 물품배달, 세탁물 수거, 대리운전 등 의료인의 갑질을 받아주는 제약사까지 등장했다.

2014년엔 ‘투아웃’ 제도가 도입됐다. 불법 리베이트 대상 약제를 두고 건강보험 급여를 정지하는 무시무시한 정책이었다. 2018년엔 ‘한국판 선샤인액트(경제적 이익 지출 보고서 의무화 제도)’가 시행됐다. 제약사가 의료기관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할 때마다 지출 내역을 공개하는 근절책이었다. 

영수증ㆍ계약서 같은 증빙서류를 5년간 보관해야 하고, 정부가 요청하면 무조건 자료를 줘야 하는 만큼 리베이트가 발을 딛지 못할 거란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2018년엔 43건, 지난해 상반기에만 10건의 불법 리베이트가 적발됐다. 건당 규모도 4600만원으로 적지 않았다.

규제와 처벌이 강화되자 되레 방법만 교묘해졌다. 최근엔 영업대행사(CSO)를 통한 리베이트가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CSO는 제약사와 계약을 맺고 의약품 영업을 대행하는 업체다. 외국에선 제약사가 의약품의 개발ㆍ생산에만 집중하란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국내 의료현장에선 불법 리베이트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 

이들은 의료법상 의약품 공급자에 해당하지 않아 불법을 적발하더라도 ‘의료 리베이트 수수금지’ 조항을 통한 처벌이 쉽지 않다. CSO가 제약사를 대신해 리베이트를 주다가 적발되면 제약사로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리베이트 왜 반복되나

리베이트 적발이 강력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었다. 은밀한 뒷거래다 보니 불복해 소송을 할 경우 형량이 감소했다. 가장 최근의 판결을 보자. 한국노바티스는 2011년부터 5년간 의사들에게 4500여회에 걸쳐 25억9000만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약사법 위반)로 2016년 기소됐다. 하지만 올해 1월 1심 판결은 법인에 벌금 4000만원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핵심 관계자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회사 대표와 나머지 관계자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연히 ‘의사-제약사’간 관계도 여전히 끈끈하다. 국회 보건복지위 김승희(미래통합당) 의원실에 따르면 제약업계 직원이 불법 리베이트 대신 의료인에게 학술대회, 기부금, 제품설명회 등의 우회적인 방법으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횟수와 금액이 늘었다. 2015년 1979억원(8만3962건)에서 2018년 3107억원(12만3962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업계는 ‘구조적인 문제라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익명을 원한 제약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국내 제약사는 자체 개발한 신약보다는 외국약을 수입해 팔거나 특허가 끝난 외국약의 제네릭(복제약)을 파는 비중이 크다. 사실상 ‘똑같은 약’을 포장만 바꿔 팔고 있는 탓에 뒷돈이 경쟁력이 되는 구조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같은 제품을 같은 가격으로 팔아야 하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리베이트 근절은 사실상 어렵다”면서 “정부가 처벌을 강화해도 불법 리베이트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 처방은 제약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다. 기존 약보다 효과가 좋은 신약을 개발하면 리베이트가 없어도 판매가 자연히 늘어날 거란 분석도 많다. 

하지만 이는 이상론에 가깝다. 신약을 만드는 데는 통상 평균 1조~2조원의 개발 비용과 평균 10~15년의 개발기간이 소요된다. 5000~1만개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개발될 만큼 성공확률도 낮다. 한국 제약기업이 개발한 신약은 1999년 선플라주(항암제)를 시작으로 30개뿐이다. 당장의 정책 처방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국내 제약회사는 연구ㆍ개발(R&D)에 막대한 투자를 쏟고 있지도 않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상장 제약사 중 매출 대비 R&D비용은 2014년 9.4%에서 2018년 9.1%로 오히려 감소했다. 

불법의 고리 언제 끊길까

의약품 리베이트는 단순히 ‘뒷돈 거래’로 봐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의사들이 리베이트 약을 처방할 경우 리베이트 비용이 자연스럽게 약값에 반영돼 국민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국민건강보험은 부풀려진 약값을 지불하고 있으니, 건강보험에서 재원이 빠져나가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의료비 대비 약제비 비중은 2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7%)보다 월등히 높다. 그만큼 의약품 비용으로 건강보험에서 지출을 많이 한다는 얘기다. 악화된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은 또다시 국민에게 전가된다. 

무엇보다 의사가 의약적 판단이 아닌 리베이트에 좌우돼 처방을 할 경우 환자의 건강권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처벌만 강화하는 정부도,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업계도 국민 건강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