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깎으면… 소탐대실의 함정
유류세 깎으면… 소탐대실의 함정
  • 김정덕 기자
  • 호수 388
  • 승인 2020.05.14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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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인하론 타당한가

지난 4월 20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의 가격이 배럴당 -37.63달러를 기록했다. 원유업자가 돈을 주고 석유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저유가가 부른 흔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는 이런 저유가 상황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한다. 때만 되면 ‘유류세 인하론’에 불이 붙는 이유다. 코로나19 탓에 소비가 침체일로를 걷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유류세를 내리기엔 꺼림칙한 게 많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유류세 인하론을 검토해 봤다. 

유류세 인하와 친환경 에너지정책은 정면으로 충돌한다.[사진=뉴시스]
유류세 인하와 친환경 에너지정책은 정면으로 충돌한다.[사진=뉴시스]

또다시 유류세 인하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사실 유류세 인하론은 기름값이 높을 때는 소비자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기름값이 낮을 때는 낮은 가격을 체감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틈만 나면 제기돼 온 이슈다. 

요즘 나오는 유류세 인하론 역시 저유가 상황과 맞물려 있다. 최근 국제유가는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의 5월 인도분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37.63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계산상으로는 돈을 받고 원유를 받아올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내렸던 거다. [※참고 : 물론 현재는 두바이유와 WTI 모두 2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 석유제품 가격대도 낮게 유지되고 있다. 휘발유의 경우 L(리터)당 200~250원선이다. 반면 국내 휘발유는 12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가격의 75%(약 900원)가 세금이기 때문에 “저유가를 체감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일부에선 “국제유가가 0원이어도 한국 소비자들은 유류세 때문에 돈을 내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놓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유류세 인하 주장이 나오는 데는 또다른 이유도 있다. 코로나19로 소비가 확 줄자 소비 진작을 위해서 유류세 인하가 필요하다는 거다. 경기가 안 좋으니 소비라도 늘려야 경제가 돌아갈 텐데, 유류세 인하를 통해 기름값을 낮추면 소비가 늘지 않겠냐는 식이다. 

논리는 그럴듯해 보인다. 문제는 유류세 인하론이 매우 중요한 이슈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유류세 인하는 장기적인 에너지정책에 역행한다. 저유가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ㆍPandemic) 상황이 전개되기 훨씬 이전부터 전세계는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왔다. 유럽국가들은 일정 기간 이후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를 제로화하고, 친환경 자동차로 대체하겠다고 나섰다. 

2018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세계 7위인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현재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계획을 잡고 추진 중이다. 물론 목표치를 달성할지는 미지수다. 감축이 쉽지 않아서다.

이런 상황에서 유류세를 낮추면 그 자체만으로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더 어려워진다. 기름값이 싸다면 굳이 전기차를 구매할 유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보조금까지 줘가면서 전기차 보급을 늘렸던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홍종호 서울대(환경대학원) 교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가 문제일 뿐,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해야 한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라면서 “그럼에도 유류세를 낮춰 기름 소비를 늘리자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홍 교수는 “한시적 인하도 소비자에게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유가가 떨어진 지금은 휘발유보다 더 적게 부과했던 경유세금을 휘발유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 에너지 전환을 앞당겨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성명재 홍익대(경제학) 교수도 “유류세는 종량제로 벌써 20년째 그대로여서 그동안의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감세를 해온 셈”이라면서 “유류세는 환경과 교통을 고려해 기름 소비를 줄이려는 게 목적인데, 그런 유류세를 내리자는 건 친환경 에너지정책을 뒤집자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정세은 충남대(경제학)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유류세를 낮추면 전기차를 사려던 사람이 휘발유차나 경유차를 살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가뜩이나 세금은 한번 내리면 올리기도 쉽지 않은데, 나중에 기후변화 대응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소비 진작 가능성도 불투명

유류세 인하에서 파생될 수 있는 우려는 또 있다. 유류세 인하가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느냐다. 나쁜 선례도 있다. 정부가 2018년 11월부터 9개월간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내렸을 때 정유사와 주유소는 ‘내릴 때는 천천히 올릴 때는 빠르게’라는 그들만의 공식처럼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소비자는 “유류세 인하를 체감하기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유류세 인하가 소비를 의미 있게 진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세은 교수는 “아마 어느 정도는 소비 진작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당장의 소비 진작을 위해 유류세를 낮춘다면 훗날 기후위기 대응에 더 큰 비용을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성명재 교수는 “소비 감소의 원인인 코로나19가 물러나고 저소득층의 주머니가 채워져야 소비 진작 효과가 나타나지 않겠는가”라면서 “효과도 불분명한 유류세 인하를 고집할 일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유류세 인하론은 그럴듯하지만, 모순은 물론 우려할 점도 많다. 학자들의 주장처럼 자칫하면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때만 되면 제기되는 유류세 인하론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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