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실적과 국제유가, 그리고 탈원전

지난해 한국전력의 적자 원인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으로 돌린 이들이 적지 않다. 이번에 탈원전과 탈석탄을 기본으로 하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이 나오자 또다시 “한전의 누적적자가 쌓일 것”이라는 주장이 쏟아진다. 하지만 정작 시장에선 ‘정부 정책과 무관하게 한전의 영업이익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저유가 덕분이다. 한전 적자는 정말 탈원전 탓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답을 찾아봤다. 

시장에선 저유가가 LNG 연료비 단가 하락으로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시장에선 저유가가 LNG 연료비 단가 하락으로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또다시 전기요금 인상론이 불거졌다. 다수 미디어의 기사를 종합해보면 논리는 이렇다. “정부의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에 탈원전ㆍ탈석탄 정책이 담겼다. 값싼 원전과 석탄 대신 값비싼 신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이용한 발전을 늘린다는 거다. 그러면 전력도매가격(SMP)이 상승해 한국전력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특히 한전은 2019년 1조276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쉽게 말해 탈원전ㆍ탈석탄 정책이 한전의 손실을 키우고, 이로 인해 전기요금 인상을 불러온다는 거다. [※참고 : 이런 논리는 탈원전ㆍ탈석탄 정책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임에도 ‘전기요금 인상=가계지출 증가’란 등식으로 이어져 국민에게 반감을 산다. 그러니 전기요금 인상에 관한 올바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여기서 짚어야 할 문제는 탈원전ㆍ탈석탄 정책이 한전의 손실을 키운다는 게 사실이냐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우선 최근에 발간된 증권사 리포트 하나를 보자. 유재선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리포트인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발전용 유연탄은 2014년 이후 세금 부담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반면 LNG 단가는 2019년에 대폭 하락하면서 연료비 단가 격차가 줄었다. 최근의 저유가 상황으로 인해 LNG 단가는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두바이유)가 배럴당 30달러대를 유지한다면 올해 여름부터는 LNG 단가가 유연탄 단가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결국 SMP가 하락하면서 한전의 하반기 합산 영업이익이 3조4000억원을 기록해 실적이 개선될 수 있다.”

한전의 영업이익은 정부 에너지 정책보다는 국제유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사진=연합뉴스]
한전의 영업이익은 정부 에너지 정책보다는 국제유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사진=연합뉴스]

‘저유가→LNG 단가 하락→SMP 하락→한전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져 지난해 한전의 영업손실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는 이익을 낼 거라는 얘기다. [※참고 : 실제로 한전은 15일 공시를 통해 올해 1분기 430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흑자전환했다고 밝혔다.] 

타당한 주장일까. 이 질문의 답은 한전의 영업이익이 크게 개선된 2014년부터 역대 최고 실적을 냈던 2016년 사이의 상황만 떠올려 봐도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 당시는 셰일혁명을 이룬 미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중동 산유국들 사이의 경쟁으로 인해 유가가 하락하던 시기다. 

국제유가는 2014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하락했고, 2015년 하반기부터는 배럴당 50달러를 밑돌았다. 그러다 2016년 초에는 2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당시로는 역대 최저치였다. 반면 한전 영업이익은 국제유가가 내릴수록 껑충 뛰어올랐다. 2012년 -8179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국제유가가 완만한 하락세를 보인 2013년 1조5190억원으로 개선됐고, 국제유가가 급격하게 하락한 2014년엔 5조7876억원으로 더 늘었다. 

저유가가 지속되던 2015년엔 11조3467억원을, 초저유가 때였던 2016년엔 역대 최고치인 12조16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국제유가가 다시 회복된 2017년엔 영업이익이 4조9532억원으로 떨어졌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대까지 오른 2018년엔 208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런 추이를 감안하면 현재의 저유가(배럴당 30달러대)가 유지된다면 한전의 영업이익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충분하다. 

 

정부가 에너지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더라도 한전 영업이익이 개선될 수 있다는 얘기다. [※참고 : 물론 정부 정책에 따라 에너지원별 세금 책정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할 순 있다. 하지만 이는 원전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어 논외다. 예컨대 원전의 경우 아직도 환경비용이 포함되지 않아 적절한 가격이 맞느냐는 논란이 있다.]

지난해 한전이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자 거의 모든 언론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화살을 돌렸다. 한전조차 “국제 연료가격 상승이 적자의 주요 원인”이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이를 두고 “한전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제 목소리를 못 낸다”는 엉뚱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저유가가 지속돼 한전의 영업이익이 개선된다면 그 이후에도 이런 논리를 내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의 적자는 ‘한가지 요인’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다.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수익 또는 적자가 발생한다. 한전 역시 마찬가지다. ‘한전 적자는 오로지 정책 탓’ ‘정부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불가피하게 오를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관계를 호도할 우려가 있다. 

정세은 충남대(경제학) 교수는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매 분기 발표되는 한전 실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겠는가”라면서 “특히 탈원전 정책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려놓은 것도 아닌데, 정부 탓을 하는 건 잘못된 논리”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어 “한전 이익 구조와는 별개로 전기요금은 올릴 필요가 있다”면서 “연료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데다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할 필요성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정부로선 정치적인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쉽지 않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홍종호 서울대(환경대학원) 교수도 “연료비 단가가 변동하면 그만큼 전기요금도 변동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연료비 단가가 오르든 내리든 전기요금이 그대로다”면서 “그러니까 당연히 국제유가가 오르면 한전이 손실을 보고, 그 반대면 이익을 얻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전기요금을 현실에 맞게 구조조정 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 에너지 정책에 따라 한전 이익이 좌우된다는 식의 왜곡된 프레임이 전기요금 현실화의 공론화까지 막고 있다. 한전의 적자를 걱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론 한전의 리스크를 키우는 셈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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