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소비’

소비가 반등할 조짐이 감지된다. 부처님 오신날부터 어린이날까지 엿새 동안 이어진 징검다리 연휴가 소비 회복에 한몫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거리에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긍정론과 ‘코로나19 이전부터 소비침체였다’는 비관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태원 클럽 사태 등 소비심리를 꺾는 돌발변수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점도 불안요인이다. 한국 소비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경제학자 4명에게 소비의 현주소를 물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올해 1분기 민간소비가 전분기 대비 6.4% 감소했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올해 1분기 민간소비가 전분기 대비 6.4% 감소했다.[사진=뉴시스] 

올 1분기 한국경제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1.4% 감소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4분기 마이너스 3.3%의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11년 1분기 만에 최저치다. 지출항목별로 살펴보면 수출(-2.0%), 수입(-4.1%), 민간소비(-6.4%)가 감소했다. 

1분기 한국경제 성장률을 갉아먹은 것은 다름 아닌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로 한국경제의 밥줄인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민간소비가 전분기 대비 6.4% 감소하면서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렸다. 실제로 올해 1분기 도소매와 숙박·음식업 소비는 6.5%(전분기 대비) 감소했고 문화·기타서비스업 소비도 6.2%나 줄었다. 빠르게 확산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면對面 소비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간소비 감소세는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분기(-13.8%) 이후 22년 만에 가장 크게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사태가 경제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먹을 정도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13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큰 칼’을 꺼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계 경제를 돕고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소비를 진작하겠다는 게 정책의 목표라는 것이다.[※참고 : 민간소비는 우리나라 GDP의 절반 수준인 48%(2018년 기준)를 차지할 만큼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이런 소비가 최근 반등의 조짐을 보였다. 정부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지난 6일 생활방역 단계인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되면서 소비에 반등의 기미가 나타난 것이다.

부처님 오신날(4월 30일)부터 어린이날(5월 5일)까지 엿새 동안 이어진 징검다리 연휴도 소비 회복에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 등은 연휴 기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3.5%, 22.0%, 20.3% 증가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소비가 연휴와 어린이날을 맞아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라는 형태로 한꺼번에 분출된 셈이다.

그렇다면 반등 기미를 보인 소비가 회복세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소비자심리지수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소비자심리지수는 70.8(100 이상이면 긍정적 100 미만이면 부정적)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2월(67.7)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6개월 후 지출을 전망하는 소비지출전망CSI(소비자동향지수)는 1월 110에서 87로 23포인트나 하락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엇갈렸다. 회복 가능성을 점치는 긍정론도 있었지만 소비가 회복되기 어렵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았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는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던 3월보다는 소비가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였다고 평가한 뒤 말을 이었다. “3월과 비교하면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소비 회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소비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소비회복세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숱했다. 신세돈 숙명여대(경제학) 명예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코로나19 이전부터 국내 소비는 침체했다. 연휴기간 소비가 반짝 증가한 것을 두고 회복을 운운하는 건 성급한 판단이다. 정부 재난지원금정책의 소비 진작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다. 소비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쌀과 같은 생필품이 아닌 재화를 사는 데 돈을 써야 한다. 하지만 재난지원금은 생필품 위주로 소비할 가능성이 높다. 재난지원금이 없었어도 어차피 써야 할 돈이라는 것이다. 저소득층은 재난지원금으로 생긴 여유자금을 빚을 갚는 데 쓸 것이다. 중산층 이상은 소비보다는 저축을 선택할 것이다. 소비가 회복보단 악화 일로를 걸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선 소비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석철 서울대(경제학) 교수는 “소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소득”이라며 “소득이 늘기 힘든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건 소비심리가 살아나기 힘든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지원을 마냥 늘리기도 힘든 상황에서 소비만 늘린다고 경기가 회복되진 않을 것”이라며 “가계의 소득을 유지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도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신세돈 교수는 “민간소비 증가율은 이전부터 둔화하고 있었다”며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는 코로나19와 무관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자부담, 소득감소 등으로 국민의 가처분 소득이 계속해서 줄고 있다”면서 “기업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어 당분간 소비가 살아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우려했다.

소비 반등 가능할까

어쨌거나 경기침체 속 소비 회복을 기대하기 위해선 코로나19가 완벽하게 통제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이태원 클럽 사태 등 예기치 않은 변수가 터지면 회복 조짐을 보이던 소비가 언제든 고꾸라질 수 있어서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 대면 소비에서 회복세가 나타날 수 있다”며 “소비심리의 개선 가능성은 코로나19가 통제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상봉 교수는 “침체에 빠진 소비를 회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것”이라며 “이태원 클럽 사태 등으로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커지면 소비는 다시 위축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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