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B-티브로드 M&A 손익계산서

IPTV와 케이블TV를 아우르는 미디어사가 탄생했다. 바로 SK브로드밴드인데, 티브로드와 합병을 통해 ‘큰 그림’을 완성했다. 탈脫통신을 노리는 SK텔레콤과의 시너지도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M&A 손익계산서를 따져보면 씁쓸한 구석이 있다. M&A 과정에서 ‘큰돈’을 거머쥔 진짜 승자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SK 측으로선 합병법인의 곳간에 있어야 할 3000억원이 빠져나가는 걸 ‘뜬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의 합병 손익계산서를 분석했다.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은 성장이 아닌 생존을 위한 거래였다는 평가가 많다.[사진=뉴시스]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은 성장이 아닌 생존을 위한 거래였다는 평가가 많다.[사진=뉴시스]

지난 4월 30일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의 합병법인이 탄생했다. 태광산업이 보유한 티브로드 지분을 존속법인인 SK브로드밴드에 넘기고, 이후 합병법인의 지분을 비율에 맞게 나눠 태광산업에 돌려주는 방식의 합병이었다.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가치 비율은 ‘75대 25’로 산정됐다. 지분을 나눈 결과, 최대주주는 SK텔레콤(74.37%), 2대주주는 태광산업(16.79%)이 됐다. 3대주주엔 합병 거래에 재무적 투자자(FI)로 참가한 미래에셋대우(8.02%)가 올라섰다. 

이번 합병은 이동통신사가 서비스하는 IPTV(SK브로드밴드)가 케이블TV 방송사(티브로드)를 합병한 최초 사례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거래의 실속을 챙긴 건 누구일까. 얼핏 승자는 SK텔레콤처럼 보인다. 

합병법인이 821만명의 유료방송 가입자와 648만명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를 가진 매출 4조원대 회사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SK텔레콤은 두 회사가 비율에 맞춰 흡수합병을 하는 구조를 짠 덕분에 인수대금도 거의 치르지 않았다.

실제로 합병을 둘러싼 시장의 평가는 우호적이다. NICE신용평가는 최근 SK브로드밴드의 등급을 ‘AA-(상향검토)’에서 ‘AA(안정적)’로 상향 조정했다. 티브로드 흡수합병으로 시장 내 경쟁지위가 올라 이익창출 규모가 커질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합병하는 두 회사의 재무구조가 우수한 점도 고려됐다. 티브로드는 매년 7000억원가량의 매출과 1000억원대 영업이익을 꾸준히 달성했는데, 이 실적도 SK브로드밴드에 합산된다.

하지만 시장 상황을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SK텔레콤이 티브로드를 인수한 건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에 가까웠다. 수많은 중소 케이블 업체가 IPTV에 밀려 M&A된 데다, 1위인 CJ헬로비전(현 LG헬로비전)을 경쟁사인 LG유플러스가 선점했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IPTV-케이블 합병

실제로 티브로드를 인수한 SK브로드밴드는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SK브로드밴드의 유료방송 시장점유율(24.0%)은 KT와 KT스카이라이프를 합친 KT 계열(31.3%)과 LG유플러스ㆍLG헬로비전의 점유율(24.7%)을 뒤쫓는 수준이다. 

M&A 업계 관계자는 “성장보다는 생존을 위해 추진된 거래다 보니 합병법인의 가치가 의외로 높아진 상황”이라면서 “SK브로드밴드는 3조5000억원, 티브로드는 1조5000억원을 인정받으면서 합병법인의 가치는 5조원 수준이 됐는데, 향후 상장을 추진했을 때 5조원 이상의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다. 

SK브로드밴드에 이득만 안겨준 M&A는 아니었다는 거다. 티브로드를 넘긴 태광산업 역시 손에 남은 게 뚜렷하지 않다. 합병법인 지분 16.79%를 얻은 게 전부다. 

그렇다면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M&A의 ‘승자’는 사실상 누구일까. 답은 간단하다. 합병 거래로 큰돈을 챙긴 태광그룹 오너 일가다. 3대주주 미래에셋대우가 3900억원의 현금을 투입해 사들인 티브로드의 지분이 태광 오너 일가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지분 10.79%, 아들인 이현준씨 지분 7. 08%를 비롯해 ‘티시스(7.76%)’ ‘일주문화재단(0.15%)’ 등을 인수했다. 또다른 승자도 있다. 2014년 티브로드의 프리IPO 준비 과정에 FI로 참여했다가 티브로드의 주주가 된 IMM PEㆍJNT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이다. 

이 컨소시엄은 당시 이호진 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일부를 1000억원에 인수하는 동시에 티브로드가 발행하는 전환우선주에도 1000억원을 투자했다. 총 2000 억원을 베팅한 셈이었다. 

뼈아픈 자사주 매입

물론 IMM PEㆍJNT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은 안전장치를 걸어놨다. 티브로드가 IPO에 실패할 경우, 태광그룹이 ‘콜옵션’을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2019년 티브로드와 SK브로드밴드의 합병이 결정되자 컨소시엄은 상환옵션을 행사했고, 티브로드가 자사주 형식으로 FI 지분을 사들였다. 지분값으로 3000억원을 치르면서 FI는 원금(2000억원) 대비 1.5배의 수익을 거뒀다. 

이는 SK텔레콤으로선 뼈아픈 장면이다. 합병법인의 곳간에 있어야 할 현금 3000억원이 고스란히 빠져나간 셈이기 때문이다. 자사주 중엔 이 전 회장이 FI에 매각한 구주까지 포함됐다. 

이렇게 티브로드로 되돌아온 지분은 합병과 함께 소각됐다. 3000억원을 내준 대가는 ‘제로’였다는 얘기다. 합병법인에 추가로 현금이 유입되지 않았다. SK 측엔 씁쓸했고, 이호진 전 회장에겐 쏠쏠한 엑시트였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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