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추경에 없는 것

소득은 한정돼 있는데, 지출을 늘려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그동안 쓸데없는 지출은 없었는지, 줄일 만한 지출은 없는지 등을 다방면으로 고려할 거다. 그래야 재정건전성이 확보되고, 살림이 어려워지지 않는다. 하물며 가계도 이럴진대, 정부는 더 꼼꼼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부는 2차 추경을 늘리면서 재정건전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정부는 2차 추경 금액을 늘리면서 지출구조조정 계획을 내놨지만, 재정건전성은 고려하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정부는 2차 추경 금액을 늘리면서 지출구조조정 계획을 내놨지만, 재정건전성은 고려하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1일 정부 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줄어든 소비를 늘리고,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정부의 긴급 처방이다. 이로써 2차 추가경정예산은 당초 7조6000억원보다 4조6000억원이 더 증가했다. 정부는 늘어난 예산 중 3조4000억원은 국채발행을 통해, 1조2000억원은 지출(세출)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참고 : 국채 발행과 재정 건전성은 사실 상관관계가 없다. 국채를 발행해도 재정건전성이 나빠지지 않을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문제는 정부가 말하는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거다. 지난 4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2차 추경 증감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쉬울 것 같지는 않다. 지출구조조정의 목적이 재정건전성보다는 지출효율화(유동성 확보)에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 보자. 정부(기획재정부)가 밝힌 1조2000억원(계산상 실제 마련 재원은 1조2062억원)의 재원 마련 방안은 다음과 같다. 

▲주택도시기금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 확대(4900억원) ▲국도ㆍ철도ㆍ공항 등 SOC 집행 애로사업 감액(2144억원) ▲개별사업별 집행상황 점검을 통한 사업비 조정(1910억원) ▲국방사업에서 설계연장에 따른 공사 기간 조정(850억원) ▲34개 부처 연가보상비 등 인건비 추가 삭감(822억원) ▲저유가 반영 군ㆍ경 유류비 추가 감액(733억원) ▲코로나19로 인한 국내외 행사 축소(329억원) ▲한국장학재단 출연금 회수(270억원) ▲기준금리 인하 등에 따른 이자상환액 절감(69억원) ▲행정부ㆍ국회ㆍ대법원 공무원 국외연수비 삭감(35억원) 등이다. 

우선 가장 금액이 큰 주택도시기금 공공자금관리기금 예탁 확대 활용 방안부터 따져 보자. 주택도시기금에 있는 여유 재원을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추가 예탁하겠다는 건데, 쉽게 말하면 기금을 빌려오겠다는 거다. 여윳돈을 끌어오겠다는 것 자체를 나무랄 건 없다. 

중요한 건 정부 자금의 내부거래에 불과한 이런 식의 재원 마련은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이지만, 언제 갚을지는 알 수 없는 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는 주택도시기금 변경계획안조차 국회에 제출하지 않아 국회 심의를 받지도 않았다. 기금을 쌈짓돈처럼 꺼내 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다음으로 큰 금액은 SOC 감액이다. 도로사업이나 제주 제2공항 건설 등에 투입될 SOC 예산을 줄여 2144억원을 마련한다는 거다. 하지만 실제 사업 규모를 줄인 감액은 단 1건도 없다. 사업 진행 속도를 반영해 올해 지출하기로 했던 예산을 내년으로 미루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예컨대 제주 제2공항 건설의 경우 설계비 356억원 중 약 10%인 36억원만 착수금 형태로 올해 지출하고, 나머지 금액은 내년에 지출하도록 했다. 전체 지출금액에는 변화가 없다. 따라서 SOC 감액 역시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효과가 사실상 없다. 

국방 예산을 줄이겠다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사업 시기나 공사 기간을 조정하겠다는 건 언젠가 쓸 돈이지만, 올해는 쓰지 않겠다는 얘기다. SOC 예산처럼 조삼모사 성격이 강하다. 

연가보상비 추가 삭감은 어떨까. 원래 정부안에 포함되지 않았던 정부 부처까지 모두 포함해 일률적으로 연가보상비를 삭감했다. 실제로 돈을 줄였으니 재정건전성이 좋아질 것도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추경에서 연가보상비를 삭감하지 않더라도 실제 연가를 활용하도록 만들면 매년 연가보상비를 그렇게 많이 지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가보상비를 일률적으로 삭감함으로써 연가를 쓸 수 없을 정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일부 공직자들만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군ㆍ경 유류비 추가 감액도 문제가 있다. 실질적인 연료 구매 규모를 줄인 게 아니라 유가 하락에 따른 가격하락분을 반영한 것에 불과해서다. 추경을 통해 사업비를 삭감하지 않았더라도 동일한 금액만큼 불용이 발생할 항목이었다는 거다.

물론 불용 예상 항목을 미리 추경에 반영하는 건 자금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지출구조조정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높이려 했다면 오히려 지금처럼 국제유가가 낮을 때 수입 물량을 더 늘리는 게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3차 추경에서 실수 반복한다면…

이처럼 덩치가 큰 재정 확보 방안들은 재정건전성 확보와는 무관하게 결정됐다. 국채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형식적인 목표만을 달성하려 했기 때문인 듯한데, 이런 지출 삭감은 바람직한 지출구조조정이 아니다. 올해 짊어질 부담을 내년으로 미룬 것도 마찬가지다.

내년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고 지출 시기를 미룬 것이라면 오판일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올해 경기가 안 좋은 만큼 내년에 지출할 항목까지 올해 미리 지출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게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3차 추경 편성까지 공식화한 상황이다. 3차 추경에도 기존 지출구조조정이 일정 부분 포함될 거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3차 추경에서도 재정건전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악화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훗날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한들 변명이 될 수 없단 얘기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rsmtax@gmail.com | 더스쿠프

정리=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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