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의 냉정한 현주소

한국은 중국과 홍콩에서 화장품 수입국 1위 자리를 일본에 뺏겼다.[사진=연합뉴스]
한국은 중국과 홍콩에서 화장품 수입국 1위 자리를 일본에 뺏겼다.[사진=연합뉴스]

K-뷰티의 텃밭이던 중국 시장에서 J(Japan)-뷰티가 주목받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춤하던 일본 화장품이 부활한 셈이다. 무엇보다 J-뷰티의 브랜드와 품질이 인정받고 있다. 반면 ‘트렌디하다’는 평가를 받던 K-뷰티는 ‘식상하다’ ‘지겹다’는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국내 업체 간 과열 경쟁, 그게 그거 같은 제품, 낡은 이미지 등이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로에 선 K-뷰티는 위기를 기회로 살릴 수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K-뷰티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잠자고 있던 거인 J(Japan)-뷰티가 깨어나고 있다.” “J-뷰티가 K-뷰티의 뒤를 이을 것이다.” 2018년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언론은 ‘J-뷰티의 부활’과 ‘K-뷰티의 위기’를 동시에 언급했다. 그로부터 2년, 예고와 우려는 현실이 됐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화장품 수출액 증가율은 전년 대비 3.6%를 기록했다. 화장품 수출액 증가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한 건 2011년(2.9%) 이후 7년 만이다. 특히 대표적인 화장품 시장으로 꼽히는 대對홍콩 수출이 가파르게 줄었다(전년 대비 30.1% 감소). 

지난해 3월부터 불붙은 홍콩 민주화 시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지만 K-뷰티의 ‘식어버린 인기’를 시위의 여파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홍콩의 대對일본 화장품 수입액은 되레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1~3분기 기준·이하 ITC) 홍콩의 일본 화장품 수입액은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로 한국(6억8000만 달러ㆍ약 8300억원)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J-뷰티와 아슬아슬한 차이 

홍콩뿐만이 아니다. 텃밭 중국에서도 K-뷰티는 일본에 자리를 뺏겼다. 2016년 이후 3년간 중국 화장품 수입시장을 호령했던 한국 화장품(점유율 27.0%ㆍ이하 GTA)은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25.2%에 머무르면서 일본(25.5%)에 밀려났다. K-뷰티가 J-뷰티에 추월당할 수 있다던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사실 K-뷰티의 추락은 예고돼 왔다. 전문가들은 “한국 화장품이 트렌드에 편승한 중저가 제품 경쟁을 멈추고 품질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유가 있는 조언이었다. 세계 2위 화장품 소비시장인 중국이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소득 수준이 높아진 중국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화장품을 선호했다. 중국의 매스(massㆍ중저가의 대중적인) 화장품 시장의 성장률이 연평균 5~6%에 그친 반면 프리미엄 화장품 시장 성장률은 10%대를 웃돌 정도였다.” [※참고 : 올해엔 중국 프리미엄 화장품 시장 규모가 1314억 위안(약 22조7000억원)을 넘어설 거란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K-뷰티업계는 ‘뜬다’ 하는 제품만 계속해서 내놨다.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가 마스크팩이었다. 마스크팩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필수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관련 시장이 급성장했다. 특별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아 진입장벽이 낮다는 점도 한몫했다. 

하지만 마스크팩은 수출 감소와 실적 악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례로 대중對中 마스크팩 수출액은 2018년 12월 이후 매달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마스크팩 수출액은 1951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61.3%(유안타증권)나 감소했다. 당연히 마스크팩 전문업체들의 실적도 악화했다. 마스크팩 ‘메디힐’을 판매하는 엘앤피코스메틱의 매출액은 2017년 3285억원에서 지난해 1781억원으로, 영업이익은 813억원에서 -15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매출액의 80~90%가 마스크팩에서 발생하는 제이준코스메틱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279억원에서 526억원으로 줄었고, 영업이익은 223억원에서 -520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컨설팅 그룹 REACH24H 손성민 책임연구원은 “국내 업체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단가인하 경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한국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는 원인이 됐다”고 꼬집었다. 

반면 J-뷰티는 K-뷰티와는 다른 전략을 써왔다. ‘흔한 제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브랜드를 관리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손성민 책임연구원은 “일본 화장품 브랜드의 경우 수요가 늘었다고 해서 공격적으로 제품 공급을 확대하지는 않는다”면서 “수요와 공급을 적절히 조절해 브랜드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했다”고 말했다. 

기술력ㆍ브랜드력을 앞세워 진입장벽을 높였다는 점도 J-뷰티가 K-뷰티와 다르게 생각한 점이다. 김주덕 성신여대(뷰티산업학) 교수는 이렇게 꼬집었다. “일본 화장품 업체들의 경우 연구·개발(R&D) 투자를 많이 한다. 예컨대 시세이도의 경우, 연구인력이 2000여명에 달하는데 이는 국내 대형 화장품 업체 연구원 수의 2~3배에 달하는 숫자다. 세계화장품학회에서 일본 기업이 최우수논문을 휩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 시세이도는 30여년 만에 신공장을 증설하고 글로벌 시장 확대에 나섰다.[사진=연합뉴스]
일본 시세이도는 30여년 만에 신공장을 증설하고 글로벌 시장 확대에 나섰다.[사진=연합뉴스]

이같은 차이는 소비자 선호도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아이아이미디어(iimedia) 조사 결과, 지난해 중국 소비자의 국가별 화장품 선호도 순위는 유럽·미국(56.5%ㆍ이하 복수응답), 중국(55.6%), 일본(47.8%), 한국(37.1%) 순으로 나타났다. 화장품 브랜드 순위 조사(여성전문매체 PCLADYㆍ기초화장품 부문)에서도 한국 브랜드는 10위권 내에 한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반면 일본의 시세이도와 SK-Ⅱ는 각각 6위와 10위에 올랐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K-뷰티는 허상에 가깝다”면서 “한동안 한국 화장품 수출이 급증한 건 사실이지만 중국 전체 화장품 시장에서 K-뷰티가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유럽이나 일본의 브랜드력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인데, 그동안 이상하리만큼 과대포장됐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J-뷰티의 중국 공략에 속도가 더 붙을 거란 전망이 많다는 점이다. 시세이도가 지난해 12월 일본 내 신공장을 증설하고 가동에 나선 건 심상찮은 신호탄이다. 시세이도는 2018년 중국 화장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물량 부족 사태를 겪어 왔다. 이후 36년 만에 신공장을 증설했다. 

정혜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세이도는 신공장을 통해 2022년까지 연간 1억2000만개 제품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공장을 증설한 만큼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다”고 내다봤다. K-뷰티와의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그렇다고 K-뷰티에 기회 요인이 없는 건 아니다. 도쿄올림픽이 미뤄지면서 일본 화장품 업계가 기대하던 ‘특수’가 사라졌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높아졌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한 2~3월 한국 화장품 수출이 증가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월 화장품 수출액은 5억26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3.3% 늘어난 데 이어 3월에도 30.7% 증가한 7억7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김주덕 교수는 “하늘길이 막힐 것을 우려한 중국 내 가수요가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메이드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 수요가 증가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손성민 책임연구원은 “코로나19로 해외 화장품 생산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한 한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해외 기업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K-뷰티의 인기에 가려져 있던 J-뷰티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K-뷰티는 위기와 기회라는 갈림길에 섰다.  K-뷰티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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