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가게와 건물주의 탐욕, 내 가게에 ‘번지수’ 없는 까닭
유령가게와 건물주의 탐욕, 내 가게에 ‘번지수’ 없는 까닭
  • 최아름 기자
  • 호수 389
  • 승인 2020.05.21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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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가게와 건물주의 탐욕
일부 인기 상권에서는 구분 등기가 이뤄지지 않은 상가를 임대하고 사업자 등록을 우회하기도 한다.[사진=뉴시스]<br>
일부 인기 상권에서는 구분 등기가 이뤄지지 않은 상가를 임대하고 사업자 등록을 우회하기도 한다.[사진=뉴시스]

인기 상권에 가게가 났다. 가게 4개가 들어서 있는 건물이다. 많은 이들이 탐내는 입지다. A씨가 건물주를 찾아가 ‘계약’을 맺자고 했다. 건물주는 ‘사업자등록을 낼 수 없다’는 점을 계약 조건으로 걸었다. 어쩔 수 없이 계약을 체결한 A씨는 ‘번지수 없는 가게’의 주인이 됐다. 위법인 데다, 대출을 받기도 쉽지 않다. 반면 건물주는 임대소득을 덜 신고할 수 있다. 이런 가게, 알고 보면 수두룩하다. 문제는 이를 개선할 만한 시스템이 없다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번지수 없는 가게가 그토록 많은 이유를 취재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임대료는 언제나 골칫거리다. 최대한 줄일 수 있다면 아끼고 싶은 비용이기도 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서울의 소규모 상가 임대료는 3.3㎡(약 1평)당 18만원 수준이었다. 16.5㎡(약 5평)짜리 상가에서 장사를 한다고 가정하면 매달 90만원이 임대 비용으로 투입된다. [※참고: 2층 이하인 건물이 50% 이상 임대되고 있고 전체 면적은 330㎡(약 100평) 이하인 소규모 상가.]

서울 전체 평균이 아니라 홍대처럼 상권이 발달한 지역이라면 임대료는 약 12% 오른다. 같은 임대료를 지출하며 장사를 하려면 인기 상권의 가게 면적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상권이 발달해 땅값이 비싼 지역일수록 작은 상점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이는 이유다. 이렇게 다닥다닥 붙은 가게 중에서는 ‘유령 가게’도 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만 서류상으로는 그렇지 않아서다. 

무슨 말일까. 이런 가게들은 대부분 번지수가 하나다. 작은 가게들은 나뉘어 있지만 호수를 부여받지는 않은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구분 등기가 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 마포구에서 이런 방식으로 가게를 임차하고 있는 한 상인의 말을 들어보자. “임대료가 저렴해서 들어와 있지만 사업자 등록 주소는 다른 곳으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가게들도 상황이 같아요. 이 건물에선 하나의 가게만 이 주소지를 쓰고 있어요.”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조금만 다녀보면 실제 주소지와 사업자 등록상 주소지가 일치하지 않는 가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부동산 서류는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해 서류만 보고 오류를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번지수 못 받는 이유 = 번지수를 받지 못한 작은 가게들이 사업자 등록을 ‘실주소지’에 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건물주 탓이다. 마포세무서 측은 “해당 주소에 가게가 있다는 걸 서류상에서 확인할 수 없다면 건물주는 임대소득을 덜 신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세무서도 사업자 등록을 처음 접수할 때 조사에 나선다. 현장에 나가 어떤 업종인지 확인하고, 그 이후에도 관할 구역 내 가게를 대상으로 매년 일제 조사를 시행한다. 그럼에도 빈틈은 있다.  말이 ‘일제 조사’지 실제로 모든 가게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건 쉽지 않다는 게 세무서 측의 설명이다. 건물주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유령가게를 양산해낼 수 있다는 거다. 

■실제 사업지 vs 서류상 사업지 = 그럼 실제 사업지와 서류상 주소지가 일치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일단 인터넷 판매업으로 등록을 할 수 있는 업종이라면 크게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출의 예를 들어보자. 코로나19가 번지며 정부가 매출이 줄어든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대출을 시행했다. 그러나 사업자 우회 등록을 한 사업장은 매출 증빙이 번거롭고 필요한 서류도 늘어난다. 우회 등록이 걸림돌이 된 셈이다.

실사업장 주소에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은 임차인의 결정이니 그런 불이익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까. 편법으로 장사하고 싶지 않고 불이익도 피하고 싶다면 다른 상가에서 임차 계약을 맺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상가는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임차인이 마음대로 고르기 어렵다. 장사하고 싶은 지역에서 사업자 우회 등록을 해야 하는 상가만 남아있다면 선택 범위는 한정적이다.

■건물주 몰래 등록 가능한가 = 물론 호수가 구분 등기돼 있지 않아도 사업자 등록을 실주소에 할 수 있다. 다가구 주택을 임차해 전입신고를 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이다. 부동산등기나 건축물대장과 달리 실제론 구분돼 있는 상가라면 신고를 할 때 ‘2층 복도 왼쪽 끝에서 두 번째 주택’ 등의 방식으로 상세하게 설명하면 된다. 


세무서 관계자는 “호수가 명시돼 있지 않아도 사업자 등록을 할 때 ‘3층 세번째 상가’ 등으로 표기해서 올릴 수 있다”며 “이런 방식이 있는데도 주소를 올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건물주는 탈세를 목적으로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임대인이 사업자 등록 우회를 요구하는 경우 탈세 목적일 가능성도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사진=뉴시스]<br>
임대인이 사업자 등록 우회를 요구하는 경우 탈세 목적일 가능성도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사진=뉴시스]

문제는 임대 계약에 ‘해당 주소에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달려있다면 임차인 입장에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다. 결국 사업자 등록을 정상적으로 하지 않은 상가에서 영업하고 처벌을 받는 것은 임차인이고, 그런 곳에서 나오는 상품을 사는 사람은 소비자다.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것은 건물주뿐이다. 

현장과 일치하지 않는 건축물대장이나 부동산 등기부등본은 ‘유령가게’를 키우는 데 한몫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건축물대장이나 등기부등본 등이 현실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다”며 “건물을 개조할 때 건물주의 신고가 아니라 건축업자 등 공사를 시행하는 사업자의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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