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지하도시 발목 잡힌 이유

용산구청은 용산역 앞 공터의 지상과 지하를 개발해 환승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사진=더스쿠프 포토]<br>
용산구청은 용산역 앞 공터의 지상과 지하를 개발해 환승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용산구청은 2015년 용산역 앞 지하와 지상을 거대한 환승센터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하도시’란 별칭을 얻은 이 개발 계획은 당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로부터 5년, 이 개발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개발 계획이 허가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하도시’의 발목이 잡힌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지하’에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용산역 지하도시 계획이 발목 잡힌 이유를 취재했다. 

“서울에서 풀이 난 땅은 개발가치가 없기 때문이다”란 말이 있다. 몸값이 올라 용산정비창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버린 용산에도 그런 땅이 있다. 용산역 앞 잔디밭이다.

지하철 1호선 용산역에서 내린다고 가정하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용산역 앞 광장에 닿는다. 조금 더 걸어가면 택시 승강장이 보인다. 그 도로 너머에는 잔디밭이 있다. 잔디밭을 따라 걷다보면 한강대로와 마주친다. 택시 승강장이 있는 도로와 한강대로 사이의 ‘잔디밭’은 섬처럼 느껴진다. 

작은 ‘섬’은 아니다. 서울광장의 잔디밭보다 조금 크다. 7458㎡(약 2260평). 문화행사가 벌어지거나 때론 장터 역할도 하는 서울광장과 달리 ‘용산역 앞 잔디밭’은 낮이나 밤이나 쓰이지 않는다.

이 잔디밭에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용산구청은 2015년 ‘리틀링크’라는 이름으로 용산역 앞 잔디밭인 한강로2동 365번지 일대 지상을 공원으로 만들고 지하에는 거대한 광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전체 면적으로 따지면 2만2479㎡(약 6800평) 규모다. 

밑그림은 이렇다. 용산역 앞 잔디밭에서 걸어서 용산가족공원까지 갈 수 있는 길을 지상으로 내고 지하에는 거대한 광장을 만들어 지하철역끼리(용산역~신용산역) 환승이 가능하도록 잇는다. 그러면 미군이 떠난 자리에 만들 공원과의 연결이 가능하고, 용산역 전체 보행 환경도 개선된다.

 1호선 용산역과 4호선 신용산역은 직선거리로는 200m로 가깝지만 환승이 불가능해 역 이름도 다르게 붙었다. 환승간격이 이보다 긴 종로3가역 1호선과 5호선은 갈아탈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 2018년에도 한 주민이 서울시에 “지하를 통해 신용산역과 용산역을 이용하게 해달라”는 민원을 넣기도 했다.

이런 용산역 일대 개발사업은 2018년 HDC현대산업개발이 사업자로 낙찰된 후 한발짝 움직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다. 2019년 착공을 시작해 2021년이면 개장하겠다는 용산구청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어떻게 된 일일까.

지하도시 계획 왜 멈췄나

2018년 말 HDC현대산업개발은 사업을 맡았지만 공사 허가를 받은 건 아니었다. 도시정비계획을 바꿔야 착공할 수 있는데, 서울시가 계획을 변경해주지 않은 탓이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정비계획을 변경하기 위해 지난해 서울시에 건의한 상태”라며 “언제쯤 통과가 될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는 이유는 뭘까. 개발계획이 확정됐을 때 집값이 오르는 일을 막기 위해서일까. 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지하도시와 엮일 수밖에 없는 다른 개발계획 때문이었다.

언급했듯 용산역 일대는 현재 지하철 1호선(용산역)과 4호선(신용산역)이 지나고 있다. 여기에 새롭게 추가되는 노선도 있다. 수도권광역철도(GTX) B노선과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이다. [※ 참고: GTX B노선은 인천 송도에서 남양주 마석으로 이어진다.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은 용산에서 고양 삼송으로 연결된다.]

GTX B노선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2022년 말 착공을 기다리고 있다.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은 예타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애초 계획이 지하 환승센터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의 ‘길’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지하개발을 추진할 수 없다. 서울시 담당 주무관은 “미군 기지를 옮기는 문제도 있고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도 고려해야 한다”며 “아직 개발 절차가 시작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 계획이 언제 결론나느냐다.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은 2016년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으로 처음 발표됐지만 아직도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다. 가장 큰 약점은 ‘경제성’이다.

2019년 기획재정부의 예타 조사 중간점검 결과에서도 경제성이 0.25로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종 결과는 6월 말에 나올 전망이다. 만약 최종에서도 중간점검과 동일하게 경제성이 없다는 것으로 결론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안을 제외한 채 지하광장을 다시 설계하면 된다. 

총선 단골 메뉴 언제 완성되나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노선이 아니다.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 계획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해당 지역구 의원 후보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다.

이낙연 당선인(종로구)은 선거 운동 당시 종로구부터 고양시까지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이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며 여당 후보들과 함께 나섰다. 특히 이 당선인은 서북부 연장과 관련해 “경제성이 없다는 것으로 나왔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균형 발전의 가치를 계산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20대 총선 당시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을 약속했다. 이런 말에 비춰볼 때 예비타당성 조사가 부정적으로 나오더라도 추진 의지가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 의원들의 추진 의지가 강력하다면 신분당선 서북부 연장선이 확정될 때까지 용산역 지하개발 계획은 뒤로 더 미뤄질 여지도 있다. 지하개발 계획은 그렇게 지하에 묶여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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