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사라질 법안들

“자영업자가 살아야 경제가 산다.” 국회의원들의 단골 멘트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자영업자를 살릴 의지가 있었는지’ 의구심을 갖는 자영업자도 숱하다. 자영업자를 위한다며 내놓은 법안들이 서랍 속에서 잠만 자다 폐기되는 국회 임기 말이면 더욱 그렇다. ‘폐기’를 앞둔 법안은 말이 없고, 자영업자의 뒷맛은 씁쓸하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의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의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자영업자에겐 ‘불황’과 ‘위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코로나19로 생계를 위협받는 지금도 그렇고, 4년 전 20대 국회가 시작할 때도 그랬다. 당시 685만명(2016년 5월)에 달했던 자영업자 수는 664만명(2020년 4월)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408만명에서 419만명으로 되레 늘었다. 직원 한명도 고용하기 힘든 자영업자가 늘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자영업자가 살아야 경제가 산다”던 금배지들은 그동안 뭘 했던 걸까. 

20대 국회 성적표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지난 20일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다. 식물국회라는 비판을 받던 국회는 이날 133개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켰다. 이로써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총 2만4139건의 법안 중 8904건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나머지 1만5235건은 임기 만료로 인한 폐기 절차를 밟게 됐다. 국회는 “역대 최대 법안 처리 실적”이라며 자찬했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자영업자의 시선은 싸늘했다. 버려진 법안 중엔 자영업자를 살릴 민생법안이 숱해서다. 

물론 성과라고 할 건 있었다. 마지막 국회 본회의에선 2년간 계류 중이던 ‘지역사랑상품권 이용활성화에 관한 법률(추혜선ㆍ소병훈ㆍ김영우ㆍ이진복 의원안)’이 통과됐다. 지역사랑상품권은 지역경제를 살릴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불법환전 등 부작용이 부각돼 국회 문턱을 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효과가 증명되면서, 관련 법안 처리가 급물살을 탔다. 

‘상가건물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2018년 9월)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임차 자영업자의 계약갱신요구권 기한이 10년(기존 5년)으로 늘면서 자영업자가 좀 더 마음 놓고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이 법안은 국회사무처가 꼽은 ‘20대 국회 성과법안 32건’ 중 하나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성과에도 자영업자의 시선이 싸늘한 이유는 버려진 법안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대기업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침탈로부터 영세자영업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의 골자는 ▲대규모 점포 입지 제한 ▲복합쇼핑몰 의무휴업일 지정 ▲상권영향평가 업종 확대 등인데, ‘1호 민생법안’으로 꼽힐 만큼 법안 처리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자영업자가 많았다. 

여당도 힘을 실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동안 42건 발의됐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에 막혀 국회를 통과한 건 단 1건에 그쳤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은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에 이어 급격한 온라인 시장 확장으로 기울어진 생태계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면서 “유통산업발전법 등 경제민주화를 위한 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고질적인 ‘갑을관계’ 문제를 해결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가맹사업법)’이 폐기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자영업계엔 마뜩잖다. 이 법안의 핵심은 가맹점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가맹점주와 가맹본부가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현행 가맹사업법은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현행 가맹사업법상 가맹점주는 점주단체를 구성하고 가맹본부에 거래조건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가맹본부가 이를 거부할 경우 협의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관련 개정안이 20대 국회에서만 75건 발의됐지만 이중 18건만이 국회를 통과했다. 폐기될 57건의 법안 중엔 ‘가맹본부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유통마진을 남길 경우, 불공정 행위로 간주’하는 내용을 담은 송기헌 의원안, ‘점주단체 활동에 대한 가맹본부의 보복조치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김해영 의원안 등이 포함됐다. 

사라질 1만5000여개 법안 

이뿐만이 아니다. 폐기를 앞둔 가맹사업법 개정안 중엔 ‘미투(me too) 브랜드’ 난립을 막을 3건의 법안(제윤경ㆍ채이배ㆍ우원식 의원안)도 있다. 그동안 프랜차이즈 본사 중엔 운영 노하우 없이 트렌드에 편승해 사업에 뛰어든 업체가 수두룩했다. 직영점 운영 경험이 없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전체의 59.0%(2019년)에 달한 건 단적인 예다. 이같은 ‘베끼기 창업’을 막기 위해 ‘직영점 1개 또는 2개 이상을 1년 이상 운영한 경우에만 가맹사업을 허가’하자는 게 이들 법안의 취지였다. 하지만 이 역시 야당의 반대에 막혔다. 

가맹점주보다 더 열악한 대리점주를 보호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도 처리되지 못했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사태(2013년) 이후 갑질로부터 대리점주를 보호하기 위한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리점법ㆍ2016년)’이 시행됐지만 이 법엔 미비점이 숱하게 많았다. 

무엇보다 대리점주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지 않은 탓에 공급업자와 대리점 간 ‘힘의 불균형’이 해결되지 않았다. 불공정 관행이 근절되지 않자 추혜선·이학영·심상정 의원 등이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대리점주의 단체교섭권 보장 ▲정당한 사유 없는 거래 중단·거절금지 ▲계약갱신청구권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16건의 발의 법안 중 7건만이 통과됐다. 

20대 국회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처리되지 못한 1만5000여개의 법안은 ‘사라질 법안’이 됐다. 그중엔 자영업자를 살릴 씨앗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영업자의 눈은 21대 국회로 향하고 있다. 21대 국회는 이들의 아쉬움을 기대로 바꿔줄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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