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만의 Retirement Essay

은퇴를 앞둔 50~60대 남성이 가장 꿈꾸는 노후는 귀농·귀촌일 것이다.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며 느긋하게 노후를 보내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도시생활이 익숙한 중장년이 시골살이에 적응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소위 말하는 꼰대 근성을 버리지 못하면 주민들과의 마찰로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금융컨설턴드 조경만의 Retirement Essay 제1편이다.
 

많은 사람이 은퇴 후 귀농‧귀촌을 꿈꾼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사진=뉴시스]

#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김충호(가명·59)씨는 은퇴 후 귀촌을 꿈꾸고 있다. 김씨는 몇년 전 집에서 30분 거리에 작은 텃밭을 마련해 상추·배추·무 등을 키우고 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은퇴 후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이를 위해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인천에서 1~2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의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차를 타고 답사를 다니고,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마을의 이장을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즐겨보던 프로그램에서 시작한 취미가 인생의 후반기를 결정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은퇴를 준비하는 50·60세대 남성의 상당수가 시골살이에 관심을 보인다. 이 때문인지 적당한 땅을 찾기 위해 법원 경매를 기웃거리는 은퇴자도 적지 않다. 노후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성인남녀 1000명에게 ‘귀농·귀촌생활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어본 결과,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서’란 답변이 45.4%(중복응답)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서(43.5%)’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40.2%)’ ‘도시생활이 답답해서(24.9%)’ 등이 있었다.

하지만 시골살이는 은퇴 준비자의 기대처럼 안락한 것만은 아니다. 혹자는 귀농·귀촌을 해외 이민에 버금갈 정도로 험난한 과정이라고 얘기한다. 귀농·귀촌을 했거나 경험한 은퇴 선배들의 경험담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도시와 시골이라는 두 나라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생활방식과 문화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얘기다. 

귀농·귀촌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 중 첫번째 장애물은 인식의 전환이다. 은퇴자가 재취업, 창업, 귀촌 등을 준비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과거에 얽매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되곤 한다. ‘왕년에는’ ‘나 때는’이란 꼰대 의식이 은퇴 후 삶인 서드라이프(Third Life)의 가장 큰 장애물인 셈이다.[※참고 :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며 공부한 학창 시절을 퍼스트라이프(First Life), 직장 등을 다니며 경제활동을 한 시기를 세컨드라이트(Second Life), 은퇴 이후 삶을 서드라이프라고 지칭하기로 한다.]

중년 남성의 로망 ‘귀농·귀촌’

만약 재취업에 나선 은퇴자가 여전히 임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새로운 조직에 적응할 수 있을까. 손님으로 대접만 받던 중장년이 갑자기 치킨집을 차리면 나이 어린 손님의 불평불만에 고분고분 응대할 수 있을까. 
사소한 문제일 수 있지만 무척이나 현실적인 문제다. 소위 ‘꼰대’ 근성에서 벗어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50·60세대의 사고방식은 수십년간 계속된 도시생활과 직장생활이 만들어낸 습관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은퇴준비의 시작을 ‘내려놓기’라고 조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모든 은퇴준비 교육이나 컨설팅에서 가장 먼저 얘기하는 것도 ‘내려놓기’다. 이를 쉬운 일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머리론 이해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부닥치면 자신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성질’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성 아니던가. 변화한 상황에 맞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귀농·귀촌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시에서 내려왔다고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니거나 원주민들과의 융합을 거부하면 자연에서 누리려 했던 은퇴 후 삶은 악몽이 될 수 있다. 물론 농촌 주민에게 잘못이 전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을 살던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외지인이 자기자랑에 취해 있다면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가 2012〜2015년 귀농·귀촌한 2000가구(각 1000가구)를 조사한 결과(2016년), 도시로 돌아가는 역귀농을 계획 중인 가구는 11.4%에 달했다. 농촌으로 내려왔던 인구 10명 중 1명은 농촌을 떠난 셈이다. 역귀농의 이유로 심리적 어려움과 주민과의 갈등을 꼽은 가구가 각각 8.7%, 8.2%를 기록했다.

역지사지 마음가짐 필요

농촌에서 살 집과 땅을 마련해 놓고도 마을 주민과의 마찰로 도망치듯 떠난 사례도 숱하다. 이런 경제적 손실은 노후를 더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귀촌·귀농을 꿈꾸는 은퇴자의 첫 준비로 시집살이를 시작하는 며느리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는 재취업이나 창업도 마찬가지다. 역지사지의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50대에 은퇴해 30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행복한 은퇴 후 삶을 원한다면 늦은 나이에도 변화는 필요하다. 그 시작은 ‘내려놓기’다. 은퇴 전 다양한 경로와 실험을 통해 내려놓기와 어떤 삶을 추구하는 게 맞는지 확인해 보길 권하는 이유다.

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
iunclejo@gmail.com

정리=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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