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창업 논란

여기 비슷한 구조의 두 카페가 있다. SNS 상엔 ‘닮았다’ ‘비슷하다’ ‘쌍둥이’ 등의 반응이 숱하다. 원작자임을 주장하는 카페 대표는 “힘들게 축적해온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됐다”면서 법적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표절 여부를 가리는 건 쉽지 않다. 건축물의 디자인은 법적으로 보호받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더티트렁크의 눈물과 법적 사각지대를 단독 취재했다.

왼쪽은 파주 더티트렁크의 전경이고, 오른쪽은 일산의 A카페 내부 사진이다. 비슷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사진=김다린 기자]
왼쪽은 파주 더티트렁크의 전경이고, 오른쪽은 일산의 A카페 내부 사진이다. 비슷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사진=김다린 기자]

2개의 사진을 보자. 왼쪽은 2018년 12월 오픈한 파주시의 대형 카페 ‘더티트렁크’의 실내 전경이다. 오른쪽은 올해 4월 일산에서 문을 연 A카페의 내부 사진이다. 얼핏 봐도 닮은꼴이다. 건물 지붕이 세모 형태인 게 같고, 한쪽 벽면에 커다란 창문을 여러개 내놓은 것도 흡사하다. 세모꼴로 깎은 지붕 끝에 직사각형의 창문을 만든 것도 똑같다.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자. 더티트렁크의 독특함은 2층 한가운데를 텅 비워둔 형태에서 나온다. 좌석 수를 늘리려는 다른 카페에선 보기 힘든 구조다. 좌석 일부를 포기했지만 손해는 아니다. 이로 인해 2층에 ‘개방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전망이 드라마틱하다. 이곳이 더티트렁크의 ‘포토존’으로 꼽히는 이유다. 커다란 창문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남기는 게 카페에 온 고객들의 필수코스가 됐다는 얘기다.

흥미롭게도 일산 A카페의 내부 구조도 동일하다. 그래서인지 이 카페의 SNS 포토존 역시 2층 복도 한가운데다. 고객들이 찍은 두 카페의 인증샷을 보면 같은 장소란 착각이 들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1층에 주문을 받고 음료를 내놓는 일자형 바(Bar)를 둔 점도 똑같다. 

이번엔 다른 사진을 보자. 각각의 카페 2층 측면에서 찍은 사진이다. 여기서도 유사성이 눈에 띈다. 1층과 2층을 잇는 대형 계단식 좌석이다. 우드 소재의 계단에 테이블을 뒀다. 계단이기도 하면서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계단의 개수도 11개로 두 카페가 동일하다.

연면적도 각각 1629.99㎡(약 492평ㆍA카페), 1352.92㎡(약 409평ㆍ더티트렁크)로 비슷하고, 규모(지상 2층)도 같다. 공교롭게도 거리도 멀지 않다. 직선거리로 12㎞, 차로 20여분 거리다.

두 카페 모두 대형 계단식 테이블을 두고 1층과 2층을 연결했다.[사진=김다린 기자]
두 카페 모두 대형 계단식 테이블을 두고 1층과 2층을 연결했다.[사진=김다린 기자]

이번엔 두 카페를 모두 방문한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보자. 일산의 A카페를 두고 인터넷 블로그에선 다음과 같은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볼수록 더티트렁크와 비슷하네” “더티트렁크와 비슷한 콘셉트로 지어진 숲속 카페” “외관이나 내부구조가 더티트렁크와 흡사하다” “소문엔 파주에 있는 더티트렁크가 새롭게 낸 가게라고 하던데…” “더티트렁크를 운영하는 업체가 명칭을 달리해 출점한 카페” 등등이다.

두 카페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소문대로 파주 더티트렁크가 출점한 후속카페일까. 이 의문은 최근 더티트렁크의 본사인 CICFNB 홈페이지에 게재된 공지사항을 보면 간단히 해결된다.

“더티트렁크는 뼈대부터 CICFNB의 아이덴티티를 담아 만들었습니다. 이전에도 더티트렁크와 유사한 구조의 카페는 있었지만, 고객이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현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산에 생겨난 카페의 케이스는 다릅니다. 너무나도 유사한 공간 디자인으로 인해 더티트렁크의 브랜드와 아이덴티티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두 카페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둘이 이토록 비슷한 까닭은 뭘까. 더티트렁크를 만든 김왕일 CICFNB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최근 들어 지인으로부터 ‘돈 많이 벌었네, 2호점도 내고’ ‘가게 새롭게 냈는데 왜 아무 말도 없냐’ 등의 핀잔을 들었다. 창고형 카페가 새롭게 생겼나 싶어 무심코 넘겼는데, 갈수록 소문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커피 맛이 왜 이러냐’ ‘너답지 않은 카페다’ 등이었다. 그러다가 A카페의 내부 공간을 보게 됐다. 공정 경쟁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더티트렁크의 내부공간 아이디어를 차용한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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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가 이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글로벌 호텔체인 ‘브레이커스’에서 호텔리어로 일하다가 2017년 귀국한 김 대표는 ‘거친 분위기’를 강조한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카페명을 ‘더티트렁크’로 결정한 건 이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크기ㆍ규모 면에선 다른 카페를 압도하는 웅장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넓은 부지를 찾는 과정에서 파주를 선택했고, 차근차근 더티트렁크의 뼈대를 완성해 갔다. 대형 철제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부산항에서 직접 폐선박의 부품을 떼올 정도로 열정과 땀을 쏟았다.

메뉴도 세심하게 설계했다. 더티트렁크를 단순히 식음료만 파는 카페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김 대표의 전공(스위스 글리옹 호스피탈리티 경영대학)처럼 베이커리뿐만 아니라 한끼 식사도 해결할 수 있는 ‘올인원 카페’를 지향했다. ‘DT콥샐러드’ ‘비프조버거’ 등 평범한 햄버거와 샐러드도 김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새롭게 만들었다.

그렇게 2018년 12월 25일 더티트렁크가 출범했다. 단순하고 명쾌한 콘셉트 덕분에 입소문을 금세 탔다. 지금은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이 연상되는 외관과 더불어 파주 지역의 랜드마크로 통한다. 주말 기준 8000~1만여명의 입장객이 이 카페를 찾는 중이다. 이 대표가 일산 A카페를 두고 복잡한 심경을 토로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자신의 삶과 땀이 송두리째 무시받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공을 들여 만든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를 아무런 협의 없이 차용해가니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국내 외식업계엔 과거에도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았더라. 참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목소리를 내게 됐다.” 김 대표는 “현재 법적인 조치를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법은 김 대표의 손을 들어줄까. 장담하기 어렵다. 카페의 구조를 차용했다는 걸 입증할 만한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엄밀하게 따지면 두 카페는 ‘쌍둥이’가 아니다.

가령 더티트렁크의 2층 플로어가 ‘ㄷ’ 형태라면, 일산의 A카페는 ‘ㅁ’ 형태다. A카페는 1층에 연못과 정원이 있다. 파주 카페엔 없는 인테리어다. [※참고 : 더스쿠프(The SCOOP)가 A카페에 더티트렁크와 내부 구조가 유사한 이유, 더티트렁크와 유사하다고 보는 소비자의 반응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등을 물었다. A카페는 별다른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건축물 저작권 침해의 기준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사진=김다린 기자]
건축물 저작권 침해의 기준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사진=김다린 기자]

이럴 경우, 법적 판단은 어떻게 될까. 가장 최근에 나온 판결을 보자. 강릉엔 ‘테라로사’란 카페가 있다. 강릉이 ‘커피도시’로 떠오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이 카페는 2012년 강원도 경관 우수 건축물로 선정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경남 사천시에 테라로사 건물 디자인을 모방한 카페 건물이 건축됐고, 테라로사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소송을 걸었다.  1심은 “외관의 아름다움을 고려한 디자인 형태로서 전체적인 외관에 미적 창의성을 갖춘 것으로 저작물로 인정된다”며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과 올해 2월 나온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건축업계 관계자는 “상업적 건축물의 저작권이 인정된 상징적인 판례이긴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게 노출했다”면서 “표절로 인정받은 인테리어를 철거할 필요는 없는 데다 벌금 액수도 높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건축물 표절의 기준은 명확하게 정해진 바가 없다. 그나마 최소 기준과 판단 근거가 되는 게 저작권법이다. 건축물이 저작권 보호 대상에 속해 있어서다. 저작권법 제4조 제1항 제5호는 “건축물, 건축을 위한 모형 및 설계도서 등”을 건축저작물로 규정하고 있다. 굳이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창작의 표현만으로 법률의 보호대상이 될 순 있다. 

문제는 저작권이 ‘표현’을 보호할 뿐 ‘아이디어’까지 보호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분위기, 스타일, 내부 구조가 흡사해도 A카페의 주장처럼 주요 콘셉트가 다를 경우 표현의 도용이 아닌 ‘아이디어 차용’으로 간주될 수 있다. 건축 전문 변호사의 설명이다.

“저작권이 보호하는 건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이다. 아무리 건축적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해도 법정에선 표절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 공장, 창고처럼 건축계에서 관행으로 용인된 요소를 적용했을 경우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총체적 결과물을 두고 여러 가지로 유사성을 판단하게 되는데, 이때는 판사와 변호사의 건축적 소양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

가락ㆍ리듬ㆍ화음 등의 뚜렷한 침해 기준을 갖춘 음악 저작권 표절 판단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더구나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로 분류된다. 원저작권자가 고소해야만 사건이 진행된다. 국내에 관련 소송이 빈번하지 않은 이유다.

현창용 공주대(건축학) 교수는 “아무리 독특하고 혁신적인 형태와 구조를 가진 건축물이라도 ‘디자인 창작물’로 인정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소송을 당한 입장에선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면서 “트렌드란 이유로 다른 걸 베끼는 건축물이 난무하는데도 이를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어쨌거나 더티트렁크와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공산이 크다. 독특한 인테리어와 소품으로 공간을 개성 있게 꾸미는 ‘감성 카페’가 유행 중이라는 건 ‘카피’의 가능성도 높인다. 실제로 사진 찍기 좋은 인테리어, 독특한 메뉴 등을 좇다보니 아예 그 자체를 베껴 창업하는 ‘감성 미투 창업’ 사례 가 유행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외식업계에서 무언가를 베끼고 베낌을 당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모방 제품과 서비스는 넘쳐났다. 일례로 2013년 봉구비어가 인기를 끌자 스몰비어 콘셉트를 표방한 수많은 ◯◯비어 브랜드가 난립했다. 2016년 대만 카스테라가 뜰 때도 비슷한 브랜드가 숱하게 쏟아져 시장을 교란했다.

하지만 더는 이를 묵인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젊은 창업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이들은 외식업의 개성과 창의성을 가치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태원에서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이새암 네키드크루 대표는 “모방도 하나의 전략으로 볼 순 있지만 중요한 건 태도의 문제”라면서 “이 정도는 훔치고 베껴도 돈만 벌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식의 마인드를 가진 사업주가 많다는 건 정말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더티트렁크 논란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결과가 어찌 됐든 한국 외식업계의 창의성 없는 민낯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아 씁쓸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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