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시장에 뛰어든 비주류업체들

수제맥주 시대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 주세법 개정으로 가격이 낮아진 데다, 향후 OEM 생산까지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마니아의 술’이던 수제맥주가 대중과 한결 가까워진 셈이다. 그러자 수제맥주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도 많아졌다. 흥미롭게도 그중엔 주류업체가 아닌 곳도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주류시장에 뛰어든 비주류업체를 취재했다. 

주세법 개정,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이 호재로 작용하면서 수제맥주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사진=GS리테일 제공]
주세법 개정,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이 호재로 작용하면서 수제맥주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사진=GS리테일 제공]

직장인 오현성(36)씨는 수제맥주 마니아다. 몇년 전 수제맥주를 맛보곤 다양한 향과 진한 맛에 빠졌다. 일반 맥주 대비 다소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최근엔 수제맥주 가격이 낮아져 마음까지 편해졌다. 오씨는 “요즘엔 편의점에서도 수제맥주 3~4캔에 1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 : 수제맥주는 개인이나 소규모 양조장에서 자체 개발한 제조법에 따라 만든 맥주를 말한다. 개성 있고 다양한 맛이 특징이다.]

오씨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수제맥주의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증가하면서 관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3년 93억원 규모이던 수제맥주 시장은 지난해 880억원대로 커졌다. 매년 40%대(2018년 46.1%ㆍ2019년 39.0% · 전년 대비 기준) 성장을 해 온 결과다. 국내 맥주시장이 수입맥주에 밀려 쪼그라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국내 맥주 출고량은 매년 2014년 206만kL에서 2018년 174만kL로 줄었다.

수제맥주의 강세는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던 수제맥주의 가격이 낮아졌다. 지난 1월 1일 주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주세 과세 체계가 기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수제맥주 4캔 1만원’ 판매가 가능해진 배경도 여기에 있다. [※참고 : 그동안 맥주 출고가를 과세 표준으로 삼아 왔다. 제품 원가가 높은 수제맥주 업체들은 높은 세금을 부담해야 했고 그만큼 수제맥주 가격이 비쌌다.] 

이처럼 ‘마니아의 전유물’이던 수제맥주가 대중적인 술로 자리 잡기 시작하자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도 증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대열에 주류업체만 있는 건 아니란 점이다. 대표적인 곳이 LG전자다. 이 회사는 지난해 캡슐형 수제맥주 제조기 ‘LG 홈브루’를 출시했다. 작동법은 무척 간단하다. 캡슐형 맥주 원료 패키지와 물을 넣고 다이얼을 조작하면 된다. 2~3주 기다리면 5L가량의 수제맥주가 만들어진다. 

페일 에일ㆍ인디아 페일에일ㆍ흑맥주·밀맥주ㆍ필스너 등 5종을 집에서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셈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캡슐형 수제맥주 제조기는 LG전자의 홈브루가 최초다”면서 “수제맥주 시장이 성장하는 만큼 손쉽게 만들어 즐길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수제맥주 시장을 공략하는 기업 중엔 패션업체도 있다. 패션 브랜드 해지스ㆍ닥스 등으로 널리 알려진 LF는 2017년 수제맥주를 제조·유통업체 인덜지를 인수하면서 출사표를 던졌다. 수제맥주를 새로운 성장동력 중 하나로 삼은 셈이다.

이듬해엔 자체 수제맥주 브랜드 ‘문베어 브루잉’을 론칭하고 ‘산’을 테마로 만든 금강산 골든에일ㆍ백두산 IPAㆍ한라산 위트ㆍ설악산 스타우트 등을 출시했다. LF 관계자는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인덜지를 인수했다”면서 “문베어 제품의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망을 갖춘 편의점 업계도 수제맥주에 관심이 많다. CU(BGF리테일)는 최근 수제맥주 제조업체 세븐브로이, 소맥분 제조사 대한제분과 손잡고 ‘곰표 밀맥주’를 선보였다. 패키지 디자인은 대한제분의 곰표 밀가루 디자인을 차용하고, 맥주 제조는 세븐브로이, 판매는 CU가 맡는 방식이다. CU 관계자는 “국내 맥주 매출에서 수제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6~7%로 그리 높지는 않다”면서도 “올해 1~5월 수제맥주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55.6% 신장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GS25(GS리테일)도 마찬가지다. GS25는 지역 랜드마크를 활용해 브랜딩한 PB(Private Brand) 수제맥주를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광화문 · 제주백록담ㆍ경복궁ㆍ성산일출봉에 이어 지난 4월에는 다섯번째 수제맥주 남산을 출시했다. 남산은 수제맥주 제조업체 카브루와 협업해 만든 두번째 제품(경복궁)이기도 하다. GS25는 향후 PB 수제맥주 라인업을 총 10종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수제맥주는 전성기를 활짝 꽃 피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수제맥주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부쩍 늘었다는 건 긍정적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모니터의 맥주 관련 설문조사(2020년) 결과에 따르면, ‘수제맥주를 마셔본’ 응답자는 전체의 60.7%로 2015년(17.9%)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맥주 종류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고 답한 이도 73.7%나 됐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주류규제개선방안을 내놓으면서 주류제조업체 간 위탁제조(OEM)가 가능해졌다는 점도 수제맥주의 인기를 부채질할 만한 요인이다. 그동안 생산설비나 캔입ㆍ병입설비를 갖추지 못해 제품을 유통하지 못하던 수제맥주 업체에도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수제맥주 업계가 이번 주류규제개선방안을 환영한 이유다. 
 

하지만 수제맥주 산업이 성장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수제맥주가 전체 맥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1%를 밑돌고 있어서다(2018년 기준 0.75%). 주류 업계 관계자는 “수제맥주 수요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익숙한 레귤러맥주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여전히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가 유통망을 확보하기가 녹록지 않다는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맥주의 주요 구입채널인 편의점에선 수입맥주에 할애된 매대가 그리 넓지 않다. 그마저도 편의점 PB 수제맥주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수제맥주가 하나의 산업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중요한 시기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수제맥주만의 독립적이면서도 독특한 장점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온라인 판매 등 판로 개척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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