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ovie] 미친 건 정말 미친 걸까
[Economovie] 미친 건 정말 미친 걸까
  • 김상회 정치학 박사
  • 호수 391
  • 승인 2020.06.04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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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식스 센스 ❺

죽은 자들이 보이고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9살 소년 콜은 ‘정상적(?)’인 학교 선생님이나 엄마가 보기에 분명 미쳤다. ‘미쳤다’는 말은 우리말의 가장 기본적인 어원으로 일컬어지는 ‘세소토(Sesotho)어’로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럼 미친 건 정말 미친 걸까.

‘광인’과 ‘천재’를 구분하는 것은 실로 난감한 일이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길을 가다 보면 혼자 심각하게 대화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저 ‘아마 미쳤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피해 지나친다. 콜은 다른 사람들 귀에 들리지 않는 죽은 자들의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말들을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이미 죽은 말컴 박사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화를 내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혼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처참하게 죽어간 사형수들의 비명소리가 들려 공포에 질리기도 한다. 분명히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콜은 9살에 이미 그 어렵다는 학술전문언어인 라틴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로마 장난감 병정에게 라틴어로 성경 시편 “De profundis clamo ad te Domine (이 몸이 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주님을 소리쳐 부르나이다)”을 읊조리면서 전쟁에서 죽어갔을 병사의 넋을 위로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콜은 학교 선생님이 어렸을 때 말더듬이였다는 사실도 직감으로 알아차리고,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학교 건물이 법원 건물이었다는 사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죽어나갔다는 ‘불편한 진실’도 직감한다. 이쯤 되면 콜은 미쳤다기보다는 가히 천재다.

미친 것 같은 콜은 사실 ‘천재’일지도 모른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미친 것 같은 콜은 사실 ‘천재’일지도 모른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사실 ‘광인’과 ‘천재’를 구분하는 것은 실로 난감한 일이다. 그들의 엽기적인 행적만 떼어놓고 보면 니체나 고흐, 모차르트, 이상李箱은 분명 광인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 속 통찰력과 번뜩이는 창조성과 상상력을 보면 가히 천재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아차하면 정신병원에 갇혀 이름 없이 죽어갔을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삶들이었다. 실제로 고흐 같은 인물은 정신병원에 감금되기도 했던 천재다.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천재수학자 존 내시 역시 ‘망상’에 사로잡혀 족쇄에 묶여 정신병원에 감금됐던 인물이다.

현대 프랑스 최고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미셀 푸코(Michel Faoucault)는 그의 역작 「광기의 역사(Madness and Civilization : History of Insanity in The Age of Reason)」에서 ‘광인’으로 낙인 찍혀 정신병동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수도 있는 수많은 ‘천재’들을 안타까워한다.

“그리스 시대와… 그리스 시대를 복원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광기’란 이성과 동떨어지거나 적대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신들린 사람’의 이미지에서 느껴지듯, 신비롭고 이성으로 얻지 못하는 그 무엇을 주는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수많은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와 예술이 여기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17~18세기에 이르러 광기는 반사회적인 범죄로 여겨졌다.

미친 사람들은 거지, 범죄자, 매춘부, 신성모독자, 부랑자들과 함께 감금당했고 처벌받았다. 사회에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는 개인은 모두 반사회적 범죄자로 취급됐다… 비생산성은 곧 반사회적이며 범죄이다… 그러나 모든 광기를 질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고야, 고흐, 니체에서 보듯 광기는 이성을 뛰어넘는 혜안을 제공한다… 광기를 배제한 우리의 근대 문명은 이성 혼자서 독백하는 것과 같다. 이성적인 것이 곧 최선이고 바람직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평균을 좋아하는 우리 사회는 ‘다름’을 포용하는 데 인색하다. [사진=뉴시스]
평균을 좋아하는 우리 사회는 ‘다름’을 포용하는 데 인색하다. [사진=뉴시스]

영화 속 9살 소년 콜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됐을지는 가늠할 길 없다. 계속 정신과 상담받고 약을 먹어가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았을지, 혹은 그레이처럼 끔찍한 범죄로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을지, 혹은 정신병원 하얀 방에 갇혀버렸을지, 혹은 화가 고흐나 이상, 수학자 존 내시와 같은 천재적 업적을 남기는 삶을 살았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내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을 미셀 푸코가 가슴 아파한 것처럼 쉽게 ‘미친놈’으로 단정하고 매도하거나 격리시킨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그것을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믿는다. 

유난히 모나지 않은 ‘평균’을 선호하는 우리 사회가 혹시 그동안 수많은 ‘천재’들을 불행으로 내몰고 죽여버린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어쩌면 한 사회가 ‘천재’를 탄생시키고 그들의 창조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는 건 한 사회가 발휘할 수 있는 ‘다름’에 대한 포용력 차이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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