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창업의 슬픈 천태만상
젊은 창업가가 말하는 카피문화

반말로 레시피를 묻거나 메뉴판을 통째로 훔쳐 간다. 영업기밀인 주방의 내부구조 사진을 찍어가는 이들도 있다. 줄자로 간격을 재거나, 그 자리에서 건축도면을 그려가기도 한다. 한국 외식산업의 고질병인 미투 창업의 천태만상이다. 이 난제, 어떻게 풀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외식업계 청년 CEO 3인에게 해법을 물었다. 

외식업계 젊은 CEO들이 미투 창업의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왼쪽부터 이새암 대표, 김왕일 대표, 김준기 대표.[사진=천막사진관]
외식업계 젊은 CEO들이 미투 창업의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왼쪽부터 이새암 대표, 김왕일 대표, 김준기 대표.[사진=천막사진관]

김준기(33) 홈보이서울 대표, 이새암(30) 네키드크루 대표, 김왕일(28) CICFNB 대표는 한국 외식업계에 새 트렌드를 만들겠다는 야무진 목표를 지닌 ‘젊은 피’다. 각각 연남동, 이태원, 파주시를 거점으로 개성 있는 외식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김준기 대표는 연남동 골목에서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다. 아메리칸 차이니즈(미국식 중화요리) 요리를 다루는데, 치열하기로 소문난 연남동 상권에서도 맛집으로 정평이 났다. 김왕일 대표는 파주의 대형카페 ‘더티트렁크’를 만든 주인공이다. 연면적 1320㎡(약 400평)의 압도적인 크기와 거칠고 심플한 콘셉트로 주말엔 1만명의 입장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새암 대표가 운영 중인 닭날개 전문 요리점 ‘네키드윙즈’는 유명 맛집 프로그램에서 ‘문 닫기 전에 가야 할 식당’으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런 외식업계 젊은피 3인방이 5월 27일 오후 더스쿠프(The SCOOP) 회의실에 모였다. 업계의 고질병인 미투 창업 논란의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공교롭게도 세 CEO 모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이템을 누군가가 베껴갔던 불쾌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 미투 창업 문제를 겪었다고 들었다. 
이새암 네키드크루 대표(이하 이새암) : “지난해 9월 호주에 거주 중이라고 밝힌 어느 한국인 사업가의 연락을 받았다. 현지에서 외식사업을 준비 중인데, 전수창업(창업 노하우만 전수하고 가맹본부와 계약은 맺지 않는 형태)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전수창업이 어렵다면 레시피라도 알려달라고 했는데, 해외 진출을 계획 중인 상황이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 거절했는데 문제가 생겼나. 
이새암 : “지난 4월 회사 메일로 우리가 이태원에서 운영 중인 레스토랑 ‘네키드 윙즈(Nekkid Wings)’의 카피 브랜드가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알고 보니 전수창업을 요청했던 그 사업가가 호주에 ‘네이키드 윙즈(Naked Wings)’란 이름으로 가게를 냈더라. 이름도 이름이지만, 기본적인 콘셉트와 메뉴가 우리 가게와 거의 같았다. 현지 매거진에선 개성을 갖춘 레스토랑이라면서 기사도 써줬다.” 

✚ 어떻게 대처했나. 
이새암 : “기사를 쓴 매거진에 메일을 보냈다. 당신들이 취재한 레스토랑은 한국 이태원 네키드윙즈의 ‘카피캣(Copy Cat)’이라고. 답변은 오지 않았다.” 

✚ 다른 대표들은 어떤 일을 겪었나. 
김준기 홈보이서울 대표(이하 김준기) : “전에 몸담았던 이태원의 피자가게가 유명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 방영됐다. 개성 있는 메뉴 구성과 토핑으로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손님이 크게 늘었는데, 부산에 2호점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찾아보니 우리 가게의 메뉴 이름을 똑같이 내걸고 업체 설명에 ‘수요미식회 맛집’으로 적어놨더라. 그 가게는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소비자들이 부산에도 지점을 냈느냐며 엄청 헷갈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 이후엔 어떻게 됐나. 
김준기 : “대표에게 연락을 했더니 잠수를 타더라. 그 식당의 연구개발 담당자와 어렵게 연결이 닿았는데, 대화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자신은 원래 서울 사람인데, 대표가 카피해 오라고 시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토로였다. 이후 부산 가게가 메뉴 이름을 바꾸고 맛집 타이틀도 내리면서 유야무야 끝났다.” 

 

✚ 더티트렁크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카피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 같아서다. 
김왕일 CICFNB 대표(이하 김왕일) : “일산에 제가 기획한 더티트렁크와 내부 디자인이 유사한 카페가 지난 4월 문을 열었다. 브랜드가 훼손될까 우려가 크다. 워낙 비슷한 구조다 보니 고개를 갸웃하는 고객들이 숱하다.” 

✚ 그래서 어떻게 움직였나. 
김왕일: “그곳에 가보진 않았다. 사진으로만 봐도 화가 나는 상황이다. 카피가 만연한 외식업계의 문화도 걱정스러웠다. 대처는 법적대응을 포함해 여러 갈래로 생각 중이다. 더는 이런 행태의 영업을 묵인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새암 : “우리가 재수가 없어서 이런 일을 겪은 게 아니다. 업계에선 누구나 다 한번쯤은 경험한다. 이 문제를 그냥 넘기고 공론화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 미투창업 문제, 왜 반복된다고 보는가. 
김왕일 : “우리나라 외식산업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한식을 비롯한 음식문화 자체는 풍부한데, 이를 사업화하는 방식은 천편일률적이다. 가령 조금만 잘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프랜차이즈 사업을 펼친다. 미투 창업 역시 하나의 비즈니스로 자리를 잡은 듯 보인다.” 

김준기 : “워낙에 불경기이기도 하다. 임대료,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돌파하기 위해선 성공 가능성이 높은 혁신 아이템이 필요한데, 이를 고안하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외식산업을 둘러싼 깊은 이해와 전문성도 필요하다. 이렇다 보니 잘되는 걸 보고 그냥 따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 벤치마킹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이새암 : “벤치마킹과 모방은 분명히 다르다. 그냥 베끼는 건 모방이고, 기존 제품ㆍ서비스를 개선하고 재해석하는 건 벤치마킹이다. 벤치마킹은 기분 나쁠 게 없다. 기존 제품을 참조해 시장 저변이 넓어지는 건 긍정적인 일이라고 본다.” 

✚ 국내 외식업계엔 ‘생계형 자영업자’도 많다. 이들에게 항상 새롭고 참신한 제품을 요구하는 건 가혹해 보인다. 
이새암 : “맞다. 모든 사업자가 혁신 제품만 내놓을 순 없다. 하지만 모방과 참조를 하더라도 태도의 한끗 차이가 크다. 교감이 있었다면 모를까, 몰상식한 태도를 보이는 사업자가 적지 않다.” 

✚ 몰상식한 태도가 뭔가. 
김준기 : “반말로 레시피를 묻는 이들이나 메뉴판을 통째로 훔쳐 가는 손님이 숱하게 많다.” 

김왕일 : “메뉴판을 훔쳐 가는 건 애교다. 더 황당한 사례도 있다. 새벽부터 힘들게 구워놓은 빵을 오픈 시간에 와서 몽땅 사가더라. 줄자로 건물 내부 구조를 재가거나, 건축사를 불러다 놓고 디자인 설계를 그려가는 이들도 있었다. 경쟁자라지만 같은 업종에 있는 만큼,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새암 :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대에 방문하는 손님이 특히 그렇다. 메뉴를 대충 시켜놓고 주방 안쪽까지 들어와서 대놓고 사진을 찍어간다. 기름 온도 같은 건 나름의 영업 비밀이라 촬영이 불가하다고 말려도 막무가내다. 호주에서 네키드윙즈를 표절한 사업자의 태도 역시 굉장히 고압적이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소통을 하는데도 자신의 일정에 맞춰 답변이 오기를 바랐다.” 

✚ 고질병처럼 보인다. 해법은 없을까. 
김왕일 : “사업자의 의식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힘들어 보인다. 특히 레시피 보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조리 라인에서 일하는 직원이 그만두면 도리가 없다. 도덕적인 문제이긴 한데, 이런 이유로 업계에선 레시피를 꿰고 있는 직원을 두고 치열한 영입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웃픈 해프닝이다.” 

김준기 : “메뉴 하나를 만들 때도 온갖 실험을 하면서 요리조리 궁리를 거듭한다. 직원들과 함께 고생하고 부대끼며 사업을 키워나가는 경험도 소중하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땐 자괴감이 들고 힘이 빠진다. 속상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 또 뭐가 있나. 
김준기 : “이렇게 미투 창업한 가게 중엔 성공사례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행태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김왕일 : “지인 중에 지역 맛집으로 꼽히는 족발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있다. 그런데 최근 장사가 신통치 않다더라. 이유가 있었다. 일하던 직원에게 노하우를 전수했는데, 그 직원이 퇴사하고 맞은편에 똑같은 족발집을 냈다. 원조 가게 사장님은 심한 배신감과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레시피는 소송이 어려워도 인테리어의 경우엔 건축물 저작권 침해소송을 걸 수 있지 않나. 
김왕일: “얼마 전 강릉의 테라로사 카페가 경남 사천에 생긴 비슷한 인테리어의 카페에 저작권 침해소송을 걸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그런데 벌금이 500만원에 불과했고, 처벌도 카페 사장이 아닌 건축사가 받았다. 외식업을 운영하다 보면 여러 아이디어를 발굴하게 되는데, 이를 지적재산권으로 인정받긴 어려워 보인다. 아직도 국내엔 음식과 음식점을 깔보는 문화가 있어서다.” 

✚ 부작용이 심각해 보인다. 
김준기 : “상권에도 좋을 게 없다. 지금 영업 중인 연남동만 봐도 그렇다. 10년 전만 해도 이 동네는 허름한 주택가이긴 했지만 개성 있는 가게도 제법 있었다. 그러다 경의선숲길이 조성되면서 ‘연트럴파크’란 별명이 붙었고, 사람과 돈이 몰렸다. 이때 유행을 탄 아이템으로 새롭게 연남동에 가게를 차리는 사장님이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금의 우리 동네를 보면, 여전히 사람은 북적이지만 단골손님을 확보한 가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사이 창업과 폐업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김왕일 : “난 식음료 사업을 종합예술로 본다. 더티트렁크도 나와 직원들의 피와 땀이 빚은 자랑스러운 하나의 작품이다. 이를 죄의식 없이 베끼는 걸 용납하긴 어렵다. ‘짝퉁의 나라’로 불리는 중국에서도 최근 다른 건축물의 디자인을 표절ㆍ모방하거나 흉내 내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는 정책을 내놨더라. 한국에도 이런 이슈가 다양한 관점에서 공론화됐으면 좋겠다.” 

 

✚ 공론화가 되면 상황이 달라질까. 
이새암 : “똑같이 따라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조금씩은 바뀌지 않을까. 예전부터 ‘유행하니까 따라 할 수도 있지’란 문화가 용인돼 왔던 것 같다. 오리지널의 노력과 철학을 소비자가 이해한다면, 염치없는 미투 가게도 점차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김준기 : “미투ㆍ카피 창업이 흥한다는 건 결국 그들이 고객의 선택을 받았다는 얘기다. 지금도 SNS 후기 개수에 따라 지역 가게 매출 순위가 줄지어진다. 후기 개수는 마케팅 업체에 얼마나 지갑을 열어줬느냐로 결정된다. 별다른 철학 없이 베낀 제품으로도 경쟁이 가능한 이유다. 당장 이런 구조를 바꿀 순 없겠지만, 우리 다음 세대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 

이들은 끝으로 정부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공들여 만든 메뉴나 디자인을 베껴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면 한국 외식산업 전체에 나쁜 나비효과가 전달될 수 있어서다. 

가령 좋은 아이템으로 시장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도, 미투 창업이 난립하고 브랜드 이미지가 무분별하게 훼손되면 시장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 유행만 좇는 천편일률적인 외식 문화가 반복되는 것도 소비자 입장에서 좋을 게 없다. 이제 뻔뻔한 악순환을 공론화해야 할 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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