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거나 사장되거나
미투창업의 무서운 공멸

새로운 아이템이 인기를 얻으면 비슷비슷한 가게들이 줄지어 창업한다. 그 과정에서 원조는 사라지고, 미투(me too) 가게들이 활개를 친다. 제품이든 레시피든 상호든 베껴서 만든 탓에 경쟁력이 있을 리 없다. 미투 가게들은 금세 힘을 잃고, 시장에서 사라진다. 문제는 원조업체마저 무너지는 경우가 숱하다는 점이다. 미투 창업, 그건 ‘공멸’의 무서운 서막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미투창업 잔혹사를 살펴봤다. 

국내 외식업계선 미투 창업으로 인한 창·폐업 사례가 숱하다. [사진=뉴시스]

2000년대 이후 국내 외식업계 역사는 ‘미투(me too) 창업사’와 맞닿아 있다. ‘뜬다’ 싶으면 순식간에 해당 아이템을 콘셉트로 한 프랜차이즈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태창파로스의 생맥주 전문점 ‘쪼끼쪼끼’는 미투 업체에 시달린 대표적인 브랜드다. 1999년 등장한 쪼끼쪼끼는 가맹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200개가 넘는 매장을 론칭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그러자 ‘쭈끼쭈끼’ ‘블랙쪼끼’ ‘쪼끼타임’ ‘조끼쪼끼’ 등 언뜻 봐도 쪼끼쪼끼를 베낀 생맥주 업체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는 공멸의 전조였다.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미투업체는 줄줄이 무너졌고, 원조인 쪼끼쪼끼마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2020년 5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가맹사업업체 상호명에 ‘쪼끼’가 들어간 곳은 한곳도 없다. 프랜차이즈업계 최초로 상장할 만큼 승승장구하던 태창파로스는 실적 부진으로 2015년 상장이 폐지됐다. 

쪼끼쪼끼의 뒤를 이은 건 ㈜용감한사람들의 스몰비어 브랜드 압구정 봉구비어다. 2011년 압구정 봉구비어가 론칭한 이후 ‘용구비어’ ‘봉쥬비어’ ‘달봉비어’ ‘오춘자비어’ ‘최군맥주’ 등 미투 브랜드가 쏟아졌다. 저렴한 안주에 편안한 분위기로 인기가 높았던 스몰비어 시장은 브랜드의 난립으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2013~2014년에는 빙수와 아이스크림이 대세였다. ‘설빙’에서 시작한 눈꽃빙수 열풍으로 ‘호미빙’ ‘옥루몽’ 등 숱한 빙수 브랜드가 탄생했다. 빙수 열풍에 힘입어 아이스크림 위에 벌집을 통째로 얹은 ‘벌집 아이스크림’, 질소를 넣어 순식간에 얼리는 ‘질소 아이스크림’도 화제가 됐다. 각각 원조 브랜드인 ‘소프트리’와 ‘브알라’가 있었지만 미투 업체는 수없이 만들어졌다. 오래지 않아 빙수, 벌집·질소 아이스크림 모두 시장에서 힘을 잃었다. 

2016년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대만 카스테라가 등장한 해다. 크림으로 가득 찬 압도적인 크기의 대만 카스테라는 이태원과 홍대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졌다. 대만 카스테라 브랜드만 수십개가 생길 정도로 ‘미투 업체’가 난립했다. 그러던 2017년 한 종편방송이 대만 카스테라에 쓰인 식용유를 문제 삼으면서 이 시장은 삽시간에 무너졌다. 수많은 가맹점이 오픈한 지 3~6개월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도 주인공 가족이 대왕 카스테라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했다는 설정이 나올 만큼 당시 열풍은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최근 부상한 미투 아이템으론 흑당 버블티와 마라麻辣가 있다. 2018년 9월 서울 신사동에 대만 음료 브랜드 ‘더앨리’가 오픈하면서 흑당 버블티 열풍이 시작됐다. 더앨리의 성공 이후 ‘타이거슈가’ ‘쩐주단’ ‘흑화당’ ‘춘풍슈가’ 등 10개가 넘는 브랜드가 한국에 론칭했다. 국내 커피전문점 브랜드도 질세라 ‘흑당’ ‘블랙슈가펄’ 등이 들어간 메뉴를 쏟아냈다. 

2018년 상반기부턴 얼얼한 매운맛의 향신료인 마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라화쿵부’ 등 마라 프랜차이즈가 세를 넓혔고 홍대·강남·연남동을 비롯한 트렌드에 민감한 상권을 중심으로 개인업체가 빠르게 늘어났다.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마라 전문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마라와 흑당을 제외하면, 미투 창업의 끝은 엇비슷하다. 원조업체와 미투 브랜드가 폐업하거나, 아이템이 시장에서 사라지거나다.

그럼에도 외식업계에 미투 창업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허술한 법망’에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레시피 특허를 내면 레시피를 공개해야 하니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다. 레시피를 뺏길 바에야 차라리 허술하게 베끼게 놔두는 편이 낫다.” 소송을 거는 방법도 있지만 인테리어나 상호의 유사성으로는 ‘승소’를 확신하기 어렵다. 설령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그 과정에서 입는 피해가 더 크다. 실제로 쪼끼쪼끼는 유사 상호와의 소송에서 이겼지만 회복은 불가능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운영능력이 없는 가맹본부가 넘쳐날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프랜차이즈 브랜드 중 59.0%가 직영점을 운영하지 않았다(2019년 기준). 특히 지난해 정보공개서를 등록한 신규 브랜드 중 직영점이 없는 곳은 74.0%에 달했다. 가맹본부 10곳 중 7곳이 시장 경험 없이 가맹점을 모집했다는 얘기다. 무책임한 가맹본부가 많은 탓인지 외식업 브랜드의 존속 기간은 고작 6년여에 그쳤다. 


이를 막기 위해 가맹사업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법안(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안의 골자는 가맹본부가 1곳 이상의 직영점을 1년 이상 운영할 경우에만 가맹사업을 허가하는 것이었다. 박주영 숭실대(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법안만 있어도 미투 브랜드의 난립을 상당수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법안이 가져올 효과는 크게 세가지다.

우선 투기꾼의 시장 진입을 막을 수 있다. 직영점을 운영하려면 직원 고용, 거래처 확보 등 비용과 노력이 필요해 투기꾼이 섣불리 위험부담을 감수하지 않는다는 거다. 둘째는 1년이라는 테스트 기간을 통해 아이템의 존속 가능성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직접 운영을 하면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찾고, 이를 보완할 수 있다. 김상식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정책실장은 “법안의 1차 목적은 가맹점주를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라며 “리스크를 본부가 안아야지, 점주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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