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왜 두산솔루스서 발 뺐나

롯데케미칼이 2차 전지의 음극재를 감싸는 소재를 생산하는 두산솔루스 인수전에 불참하자 숱한 말들이 나돌았다. 롯데케미칼이 전기차 시장에서 발을 뺀 게 아니냐는 거였다. 대기업 화학계열사 대부분이 전기차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롯데케미칼의 선택은 뜻밖이었다. 그렇다면 롯데케미칼은 남들 다 뛰어든 전기차 시장에 정말 관심이 없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롯데케미칼이 두산솔루스 인수전에서 발을 뺀 진짜 이유를 분석했다. 

롯데케미칼은 범용제품 비중이 높아 중국 기업의 추격에 금방 따라잡힐 거라는 분석이 많다.[사진=연합뉴스]
롯데케미칼은 범용제품 비중이 높아 중국 기업의 추격에 금방 따라잡힐 거라는 분석이 많다.[사진=연합뉴스]

“롯데케미칼이 두산솔루스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다.” 최근 IB업계에 지속적으로 떠돈 얘기다. 두산솔루스는 전기차 2차 전지의 음극재를 감싸는 용도로 주로 쓰이는 전지박(동박) 등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전지박(동박)은 구리를 얇게 편 막이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그룹이 매물로 내놓자 롯데케미칼이 유력한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롯데케미칼이 두산솔루스를 인수한다면 전기차 관련 시장에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지난 2일 예비입찰에 불참했다. ‘롯데케미칼에 인수 의사가 없었다’고 해석할 만했지만 화학업계와 IB업계, 증권가에선 그렇게 풀이하지 않았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두산그룹은 두산솔루스를 ‘1조원 밑으로는 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IB업계에선 1조원은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가격 괴리가 크다는 얘기다. 더구나 코로나19로 변동성에 따른 리스크도 있다. 결국 롯데케미칼이 두산솔루스를 인수할 의향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격 차이 때문에 예비입찰에 불참한 것으로 보인다.” 

예비입찰에 참여하지도 않은 롯데케미칼을 두고 ‘전기차 관련 사업을 하냐 마냐’ 등 뒷말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 롯데케미칼이 전기차 관련 시장 진출을 위해 열을 올려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10대 그룹(총 매출 기준) 가운데 화학계열사를 가진 곳들이 대부분 전기차 관련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사실 전기차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는 데 이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없다. 특히 유럽의 환경 규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코로나19라는 위기도 밀어내는 중이다. 미국 전기차 전문매체 인사이드EV에 따르면 올해 4월말 기준 글로벌 자동차 시장 누적 성장률은 -29%에 그쳤지만 유럽의 전기차 시장 누적 성장률은 60%대 고성장을 기록했다.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내연기관차 규제 완화 분위기와 국제유가 하락 등이 전기차 시장의 성장속도를 늦출 수는 있겠지만, 방향성이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다. 10대 그룹의 화학 분야 계열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기차 관련 사업에 발을 깊숙이 담고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일단 삼성SDI, SK이노베이션, LG화학은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LG화학은 현재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SK케미칼은 지난해 차세대 자동차 소재인 폴리페닐렌설파이드(PPS)를 생산하는 자회사 이니츠를 합병했다. 자동차 소재 사업을 더 크게 키우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두산솔루스 가격 탓에 불참했나

정유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SK에너지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는 기존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확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정유사들의 주력 사업이 달라질 가능성마저 있다. 한화 역시 한화솔루션을 통해 꾸준히 전기차용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엔 현대차와 함께 전기차 배터리를 재활용할 수 있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롯데케미칼을 제외한 10대 그룹 산하 화학 계열사들은 전기차 분야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롯데케미칼을 제외한 10대 그룹 산하 화학 계열사들은 전기차 분야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재계 순위 6위(2019년 총매출액 기준)인 롯데의 화학계열사 롯데케미칼은 이렇다 할 전기차 관련 사업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자동차 관련 분야는 있다. 롯데케미칼이 올해 1월 1일자 흡수합병한 롯데첨단소재다. 이 회사는 자동차 내외장재로 쓰이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철이나 세라믹을 대체할 정도의 강도를 지닌 플라스틱)을 생산한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롯데첨단소재 합병으로 자동차 내외장재를 생산하고 있으니 전기차 관련 분야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고 설명한 뒤 반론을 폈다. “다른 대기업 화학 계열사가 전기차 관련 사업을 한다고 우리가 꼭 그래야 하는가. 전기차 관련 사업에 뛰어들지 않은 게 잘못된 의사결정인 건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나 다 뛰어드는 시장 대신 다른 성장성을 좇을 수도 있다. 그건 경영자의 재량이자 결단의 영역이다. 문제는 롯데케미칼도 내심 전기차 관련 시장에 뛰어들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롯데케미칼이 롯데첨단소재 흡수합병 계획을 공식화한 직후 ‘히타치케미칼 인수전’에 뛰어든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인수전 패배 후 롯데케미칼의 행보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참고 : 히타치케미칼은 배터리 핵심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를 생산하는 업체다.] 

그럼 시계추를 인수전이 열린 지난해로 돌려보자. 당시 롯데케미칼은 일본 쇼와덴코에 밀려 히타치케미칼을 인수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롯데케미칼은 쇼와덴코의 지분 4.69%를 1700억원에 매입했다. 시장 안팎에서 롯데케미칼이 전기차 관련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말이 나돈 이유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수익을 위한 단순 투자”라면서도 “성장성이 있는 기업을 인수ㆍ합병(M&A)하기 위한 투자는 늘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롯데케미칼이 전기차 관련 시장에 뛰어들어야 할 이유도 있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롯데케미칼의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롯데케미칼은 에틸렌 계열 위주의 범용제품 생산 비중이 높다. 바꿔 말해 국제유가의 변동성에 취약하다는 얘기다. 

탈출구 필요한 롯데케미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중국 기업에 따라잡힐 공산도 크다. 롯데케미칼 나름의 탈출구가 필요한데 전기차는 성장성이 분명하고, 화학 분야와의 연관성이 깊다. 심지어 대기업 화학 계열사 대부분이 전기차 관련 시장에 뛰어든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이 전기차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하다. 다만 원하는 대로 진행이 잘 되지 않아 애가 탈 것이다.” 

어쨌거나 두산솔루스의 M&A를 포기한 롯데케미칼은 일본 쇼와덴코의 지분을 인수해 전기차 관련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롯데케미칼이 두산솔루션 예비입찰에서 발을 뺐다고 전기차 시장에 관심을 끈 건 아니란 얘기다. 다만 뒤처진 만큼 마음은 좀 더 다급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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