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슬로 라이프 트렌드

최근 한 이커머스 업체에서 ‘콩나물시루’ 판매가 급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콩나물을 길러 먹으려는 소비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콩나물시루뿐만이 아니다. 상추 모종이나 식물재배기 판매량도 껑충 뛰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마저 식물재배기를 개발했을 정도로 유행이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건강한 취미 생활을 즐기는 ‘슬로 라이프’ 트렌드가 확산하고 있는 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코로나19 국면에서 부상한 슬로 라이프 트렌드를 취재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채소를 길러 먹는 사람이 증가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채소를 길러 먹는 사람이 증가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김미현(39)씨는 최근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채소를 직접 길러서 먹는 거다. 김씨는 집 베란다에 작은 화단을 만들고 상추ㆍ치커리ㆍ샐러리 등 모종을 사다 심었다. 그는 “예전엔 귀찮게 뭘 길러서 먹나 생각했었다”면서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데다 부쩍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채소를 길러 먹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가 유별난 건 아니다. 최근 온라인 쇼핑몰에서 ‘콩나물시루’를 찾는 사람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커머스 업체 위메프에선 지난 3~4월 콩나물시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284% 증가했다. 콩나물시루뿐만이 아니다. 품목별 판매량 증가율을 살펴보면 상추 모종 3398%, 새싹재배기 484%, 고추 모종 456%에 달했다. 위메프 관계자는 “채소 모종의 경우 예전엔 아이들 교육용으로 구입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최근엔 직접 재배해서 먹기 위해 구매하는 소비자가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집에서 취미 생활을 즐기고 건강을 챙기는 ‘슬로 라이프(Slow life)’ 트렌드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비단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슬로 라이프’ 경향이 강해졌는데,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실내 가드닝(Indoor gardening)’이다. 집에서 식물을 가꾸거나 농작물을 키우는 사람이 증가했다는 거다.

폴란드의 이커머스 기업 피코디닷컴(Picodi.com)이 미국인의 구글 검색 트렌드를 조사한 결과, 실외 여가생활인 ‘영화관람’ ‘사진촬영’ 검색량이 각각 90%, 35%(2020년 3월 기준·전년 동월 대비) 감소했다. 반면 ‘가드닝’의 검색량은 50%가량 증가했다. 

우은정 코트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무역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에선 1ㆍ2차 세계대전, 1970년 뉴욕시 파산 사태 때에도 자급자족을 위한 ‘나만의 농작물 · 식물 기르기’가 인기를 끌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사태로 답답한 생활 속에서 실내 가드닝이 건강하고 보람 있는 취미생활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트렌드가 확산하자 좀 더 쉽고 편리하게 식물을 기를 수 있도록 해주는 제품도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인 게 ‘식물재배기’다. 렌털가전 업체 교원 웰스는 식물재배기 ‘웰스팜’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웰스팜의 올해 1분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8%가량 증가했다. 판매가 상대적으로 저조한 겨울철 4분기(2019년)와 비교하면 5배가량 판매가 늘었다. 

이 제품은 사용 방법도 간단하다. 정기적으로 원하는 채소 모종을 배송 받아 꽂아두기만 하면 된다. 빛·온도·공기 등을 자동으로 조절해줘 초보자도 쉽게 채소를 재배해 먹을 수 있다. 교원 웰스 관계자는 “식물재배기 시장은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만큼 규모가 크지 않지만 소비자의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건강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는 식물재배기의 장점이 부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인지 식물재배기에 관심을 갖는 대기업도 많아졌다. 개중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있다. 두 회사는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0’에서 나란히 식물재배기를 선보였다. 삼성전자의 식물재배기는 ‘미스트(mist)’ 분사 형식으로 물을 뿌린다. 전용 앱에서 사용자가 알레르기 유무 등을 선택하면 적합한 ‘씨앗 패키지’를 고를 수 있다.

LG전자의 식물재배기의 경우, 소비자가 내부 선반에 일체형 씨앗패키지를 넣고 문을 닫으면 채소가 자동 재배된다. 일체형 씨앗패키지엔 씨앗·토양·비료 등이 담겨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공식 출시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LG전자가 연내에 식물재배기를 출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집에서 식물을 가꾸고 채소를 길러 먹는 ‘슬로 라이프’ 트렌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충분하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가정 내 소비 중심의 ‘홈코노미(Economy at home)’가 확대될 거란 전망이 많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글로벌 트렌드로 ‘HOUSE’를 꼽았다. 향후 산업을 이끌 Health care(의료ㆍ헬스케어), Online(디지털화), Untact(언택트 산업), Smart infrastructure(스마트 인프라), Economy at home (가정 내 소비)의 첫자를 딴 단어다. ‘집’과 ‘건강’이 향후 글로벌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는 얘기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수년 전부터 가정을 중심으로 한 생활이 점차 확대되는 추세였다. 여기에 코로나19가 기폭제로 작용하면서 슬로 라이프 트렌드가 지속적으로 확산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사람들이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찾기 시작했다”면서 “여기에 소비자를 잡으려는 기업들의 마케팅이 더해지면서 관련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내다봤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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