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보여주는 PC시장의 미래

▲ 6년 간 PC시장에서 왕좌를 석권했던 HP의 몰락은 PC 시장 붕괴를 알리는 전주곡에 불과할 지 모른다. <사진:플릭커>
숫자만큼 정확하게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숫자로 본 PC시장은 명백히 위기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급격한 성장으로 전에 없이 하향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PC시장의 화려했던 과거가 숫자에 조롱당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0월 11일(현지시간) “PC 판매량이 ‘Tailspin’하고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Tailspin은 조종사가 조종력을 상실했을 때 비행기가 나선식으로 급강하한다는 뜻이다. 실제 여러 숫자가 PC시장의 암울한 분위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첫째는 ‘11’이다. 11년 만에 처음으로 글로벌 PC시장이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는 올해 세계 PC 출하량이 3억4870만대로 지난해 대비 1.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트너 역시 올해 PC 출하량이 3억6000만대로 전년 대비 100만대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원인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급속한 성장이다. 물론 PC 시장을 살릴 것으로 기대되는 변수는 있다. 10월 26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선보이는 윈도8이다. 아이서플라이는 “윈도8이 PC 시장의 활기를 살릴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비관론자들은 ‘8.6’이라는 숫자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가트너에 따르면 올 3분기 세계 PC 출하는 지난해 같은 기간대비 8.6% 감소했다. 분기 실적으로는 10년 만에 최대낙폭이다. 8.6이라는 숫자가 뼈아픈 이유는 또 있다. 미국에서 3분기는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로 전통적으로 PC 판매의 호황기였다. 실제로 글로벌 PC 제조사는 예년처럼 새 학기 마케팅에 올인 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PC 판매는 급감했다.

비관론자들은 한 술 더 떠 ‘89’를 외치고 있다. 89는 지난 6년간 PC 시장의 왕좌를 놓지 않았던 HP의 추락을 의미한다. HP는 3분기 실적에서 순손실만 89억 달러를 냈다. 사상 최악의 실적이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다. 전체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던 PC 부분 수익은 10% 줄었고 실적 경고로 주가까지 급락했다.

 
HP의 재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 이유는 ‘3억8800만’에 있다. IT업계의 최대 고객이자 성장 가능성의 척도인 중국시장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올해 6월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네티즌이 PC의 수를 앞지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시장에서 휴대전화가 인터넷을 접속하는 주요 채널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터넷협회(CNNIC)에 따르면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네티즌 수는 3억8800만명이다. 6개월 동안 무려 3200만명이 늘어났다. 주요 PC 제조사에 참담한 소식이지만 대세는 모바일 쪽으로 굳어지고 있다.
PC시장의 하락세는 반도체 업계에도 ‘2340’ 포탄을 던졌다.

미 IT 전문매체 씨넷은 “미국의 반도체 기업 AMD가 전체 인력의 최대 30%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10월 12일 보도했다. AMD는 세계 2위의 글로벌 PC용 반도체 기업이다. PC 시장의 축소를 견디다 못해 2340명 규모의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했다는 소식은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씨넷은 “AMD의 대변인이 인력감축 관련 언급을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숫자는 부르짖고 있다. PC 시장의 몰락을 말이다.

정다운 기자 justonegoal@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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