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교수가 바라본 복지 논쟁

고용보험의 확대냐 기본소득의 도입이냐를 두고 정치권의 논쟁이 뜨겁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설전이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국민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정치인들이 오랜만에 가치 있는 논쟁을 벌인다는 호평도 나온다. 하지만 경계할 점도 있다. 고용보험이든 기본소득이든 ‘한쪽이 옳다’는 흐름이 형성되는 순간 ‘정치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도 그걸 우려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고용보험과 기본소득 논쟁을 살펴봤다. 이정우 교수가 혜안을 줬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국민 고용보험 확대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다.[사진=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전국민 고용보험 확대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한다.[사진=연합뉴스]

✚ 정치권에서 전국민 고용보험 실시와 전국민 기본소득 지급에 관한 논쟁이 시작됐다. 적절하다고 보는가.
“엄밀히 말하면 ‘실업부조’와 ‘기본소득’ 논쟁이다. 매우 시의적절하고 훌륭한 논쟁거리가 나온 것 같다.”

✚ 어떤 면에서 그런가. 
“그동안 우리 사회는 복지정책을 늘릴지 줄일지를 논쟁해 왔다. 지금은 복지를 더 늘린다는 대전제를 두고, 어떤 방향으로 늘릴지를 고민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간 셈이다. 다만 어떤 게 맞다 혹은 틀리다는 식으로 얘기되고 있다는 건 아쉽다.”

✚ 우리 상황에 무엇이 더 유용한지 따져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둘은 별개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맞다 혹은 틀리다의 문제로 흘러선 안 된다.”

✚ 좀 더 자세하게 말해달라. 
“국가마다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고, 국민의식도 다른데 어떤 정책이 더 잘 맞을 것이라고 누가 확답할 수 있겠나. 이건 어떤 철학을 바탕에 두느냐의 문제다. 해당 철학을 충분히 이해하고 방향성을 잡아나가면 된다는 거다. 맞다 혹은 틀리다로 얘기해선 안 된다. 만약 다른 철학적 사고에서 도출된 정책이 필요해지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틀렸다고 얘기한 걸 갖다 쓸 건가. 실업부조와 기본소득이 전혀 다른 토양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 실업부조와 기본소득의 ‘기반’이 같다는 건가. 
“원래 서구에선 보험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런데 보험은 보험료를 부담할 능력이 되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보험료를 납부해야 혜택을 보는 구조다. 사회보험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런 제도에선 가입 경력이 없어 혜택을 못 받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실업부조와 같은 공적부조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공적부조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갈라지는데, 여기서 기본소득 개념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국가가 영국과 독일이다.”

✚ 두 국가의 시스템은 어떻게 다른가. 
“영국은 국민보험이라는 게 있다. 나이가 많든 장애를 입든 퇴직을 하든 경제활동을 못해 소득이 끊기면 국민보험에서 급여를 지급한다. 보건이나 의료 등의 서비스 급여는 국민보건서비스라는 걸로 통합 관리한다. 반면 독일은 각각의 위험을 각기 다른 보험으로 구제한다. 노령·장애·사망 등은 국민연금으로, 질병은 의료급여, 산업재해는 산재급여로 구제하는 식이다. 위험별로 분산돼 있다.”

✚ 영국의 시스템이 기본소득 개념에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다. 영국에선 17~18세기에 빈민 구제를 위한 구민救民법을 실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빈민을 선별해내는 과정이 지나치게 까다로웠다. 인권이 심하게 침해받기도 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소득이나 자산에 따라 선별하지 않고 지원하는 제도가 성장했다. 물론 선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저 선별의 기준을 좁게 두지 않고 넓게 둬서 포괄적으로 관리한다는 게 핵심이다.”

✚ 토양이 다르지 않다면 서로 다르게 발전해온 두 시스템이 융합될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실제로 서구에선 그런 추세로 가고 있다. 실업부조에 기본소득을 섞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실업급여는 일을 그만둬야 받는다. 그러니 일할 동기가 줄어든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가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을 하면 임금에다 실업급여를 얹어 주겠다’는 정책들을 펴는 거다.”

✚ 우리나라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정책처럼 보인다.
“이런 정책들은 노동시장의 종속성을 풀어주기도 한다. 예컨대 꿈이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이들이 재능을 키울 수 있게끔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측면도 있다는 거다. 이를 통해 얻어질 사회적 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우리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다양한 정책들이 있다는 걸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 무슨 얘긴가. 
“예컨대 국민연금을 한번 보자. 우리 사회엔 ‘적립금이 없어지면(고갈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국민연금제도가 망할 것’처럼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적립방식의 시각으로 국민연금에 접근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적립방식만 있는 게 아니다. 부과방식이라는 게 있다. 다음 세대가 계속 전 세대의 보험료를 부담하는 거다. 적립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의 눈으로 보면 ‘폭탄돌리기’처럼 보이지만, 일반적인 보험처럼 요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도 똑같이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인류가 망하지 않는 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선 적립금의 고갈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다양한 정책들을 접해보지도 배워보지도 못한 탓이다.”

✚ 고속성장의 시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맞다. 하지만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 이번 실업부조와 기본소득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 문제는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되는 순간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더욱 신중해야 한다. 단번에 쉽게 결정하고 추진하다가 오류가 생기면 수정하는 그런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한번 세팅한 제도에선 이해관계자들이 몰리기 때문에 쉽게 고치기도 어렵다.”

✚ 설명을 듣고 보면 단순히 정책 하나를 결정하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 따라서 다양한 정책들이 있을 수 있다는 교육도 전제돼야 하고, 국민 인식도 달라져야 실업부조 확대든 기본소득 도입이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 국민 인식의 변화라면 어느 정도를 의미하나.
“예컨대 독일에 주택부조라는 게 있다. 가구당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최소한의 주택 수준이 있고, 그에 미치지 못하면 주택을 부조해준다. 독일 내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대상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준을 그렇게 잡아 놓은 거니까 외국인이라고 해서 배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가능한 정책이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철학의 공유나 열띤 고민 없이 정책만을 도입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어떤 정책을 우위에 둬야 한다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방향성을 제시해본다면.
“사실 원칙적으로 보면 기본소득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재원이 늘 문제다. 재원이 많이 투입되는 반면 효과는 줄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엄두가 안 나는 게 사실이다.”

✚ 그럼에도 방향성을 그렇게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에겐 통일이 있을 수도 있고, 일을 장려하는 제도는 실업부조보다는 기본소득이 더 유용하다는 게 이미 서구의 경험을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모쪼록 좋은 기회를 살려서 단박에 뭔가를 결정할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쟁한 끝에 좋은 제도를 도입했으면 좋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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