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같이읽다

가상화폐가 새로운 자금세탁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익명성이 높아 거래 이력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n번방’ ‘박사방’ 사건에서도 가상화폐가 범죄에 악용됐다. 문제는 가상화폐가 세탁되는 걸 막지 못하면 훨씬 더 잔혹한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최근 ‘텔레그램 성착취방’ 사건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은 여성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찍게 하고, 이를 텔레그램에서 유료로 거래한 디지털 성범죄를 말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n번방’과 ‘박사방’ 사건이다. 피해자가 수십여명에 이르고 그중 미성년자도 상당수다. 

가해자들이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거래하는 과정은 은밀하고 치밀했다. 2018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운영된 박사방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가상화폐로 입장료를 내야 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도 취급했지만 주로 ‘모네로(Monero)’라는 가상화폐를 활용했다. 

모네로는 가상화폐계의 스위스은행이라고 불린다. 익명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연히 거래 이력을 확인하기 어렵고, 그렇다보니 각종 범죄에 자주 이용됐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다크코인’이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모네로는 일본 야쿠자를 비롯한 국제 범죄조직이 이용하는 주요 자금세탁 수단이다. 박사방에서 주로 모네로를 통해 거래한 이유도 자금세탁을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자금세탁은 범죄행위로부터 얻은 불법자금의 출처를 숨겨 적법한 자산인 것처럼 위장하는 걸 말한다. 이 말은 1920년대 미국에서 유래했다. 당시 유명했던 마피아 ‘알 카포네’가 이끄는 범죄조직이 세탁소 수입을 통해 검은돈을 깨끗한 돈으로 위장한 데서 시작했는데, 현재 국제기구와 주요 국가에서 법률용어로 채택하는 등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자금세탁이 수월하면 범죄행위와 범죄수익을 은닉하기 쉽다. 1989년 주요 7개국(G7)이 주도해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국제기구 ‘자금세탁방지기구(FATF)’를 설립한 이유다. FATF의 주요 역할은 자금세탁방지ㆍ테러자금조달금지(AMLㆍCFT) 분야 국제규범을 제정하고, 각국이 얼마나 준수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35번째로 FATF에 가입했다. 

FATF는 지난해 6월 가상자산(가상화폐)이 불법 활동에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는 운영자 정보를 규제당국에 신고ㆍ등록해야 한다. 

지난 3월 우리나라에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일부 개정안도 이와 관련이 깊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비롯한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금융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한 법안이다.

가상자산 사업자는 불법 재산으로 의심되는 거래와 고액 현금거래를 보고하는 한편 고객의 신원을 확인하는 등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금법 개정안은 2021년 3월에 시행되지만 벌써부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한곳이 모네로를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한 건 대표적 사례다. 
 

물론 새로운 어둠의 경로가 나타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엔 디지털 범죄도 날로 진화하고 있어서다. 수사기관이 범죄자들의 진화된 수법을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가상화폐를 통해 쉽게 자금세탁을 할 수 있으면 범죄행위는 더욱 잔혹해질 게 분명하다.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해 가상화폐 안팎에 촘촘한 그물망을 쳐야 한다는 거다. 과제는 또 있다. 2021년 시행될 특금법의 하위 법령을 제정할 땐 여러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가상화폐는 세계정세가 급변할 때마다 가격이 상승하며 금과 같은 안전자산으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미래는 점치기 어렵다. 가상화폐가 범죄자들의 새로운 자금세탁 수단이 아닌 진정한 ‘디지털 금’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changandcompany@gmail.com | 더스쿠프

정리=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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