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여인의 향기 ❷

시력을 잃은 퇴역 중령 슬레이드는 그야말로 ‘명예심’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적과의 전투나 임무수행 중 시력을 잃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슬레이드 중령은 객기를 부리다 수류탄 사고로 시력을 잃는다. 괴팍스러운 성격 때문에 퇴역 후 찾아오는 동료들도 없고, 함께할 가족도 없다. 그다지 살갑지 않은 조카 부부에게 얹혀사는 장애 중늙은이 퇴역 장교일 뿐이다. 그 신세가 딱하고 초라하다.
 

위기가 오면 안 보이던 영웅이 나타나고, 우리가 몰랐던 ‘민낯’도 드러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위기가 오면 안 보이던 영웅이 나타나고, 우리가 몰랐던 ‘민낯’도 드러난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슬레이드 중령은 조카의 집 허름한 별채에 떨어져 거의 은둔생활을 하면서 알코올에 의지해 살아간다. ‘알코올 중독’ 같긴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나 주정뱅이 모습은 아니다. 소파에 흐트러짐 없이 정자세로 앉아 혼자 마실 뿐이다. 혼자 술을 마셔도 흐트러진 모습을 자기 자신에게조차 보이기 싫을 정도로 자존심 강하고 명예를 중히 여겨서인 듯하다.

보통 알코올 중독자처럼 아무 술이나 걸리는 대로 마셔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잭 대니얼스’만을 고수한다. 잭 대니얼스는 도수도 높지만 꽤 고급 양주이기도 하다. 흔히 ‘신사의 위스키’로 통하고, ‘성취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한다. 도우미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온 고등학생 심스를 면접하면서도 슬레이드 중령은 시비와 어깃장으로 일관한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척 부릅뜬 두 눈은 마치 박제동물의 눈처럼 괴기스럽다.

우여곡절 끝에 심스와 뉴욕으로의 ‘자살여행’ 길에 오르지만 출발부터 순탄치 않다. 그의 팔을 잡고 부축하려는 심스의 손길을 뿌리치고 분노를 폭발한다. 결코 남에게 부축당하고 싶지 않다. ‘주체적’으로 자신이 심스의 팔을 잡기를 고집한다. 슬레이드 중령은 시들지 않고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순간 떨어져 날리는 벚꽃처럼 명예의 상징인 군복 정장을 하고 생을 명예롭게 마감하기를 원한다.

전재산을 털어 1등석 비행기를 타고 샴페인을 마시면서 뉴욕으로 날아가 최고급 호텔에서 최고급 서비스 속에 최고급 식사와 술을 마시고, 페라리 스포츠카를 몰아보고 벚꽃처럼 명예롭게 지고 싶어 한다. 그의 자살 계획은 심스의 눈물 어린 제지로 무산된다. 슬레이드 중령의 자살은 미수에 그치고, 슬레이드 중령과 심스는 뉴욕에서 뉴햄프셔까지 최고급 리무진을 타고 돌아온다. 비용이 어마어마할 듯하다.

 

슬레이드 중령은 친구를 고발하지 않은 심스의 최후변론에 나섰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슬레이드 중령은 친구를 고발하지 않은 심스의 최후변론에 나섰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윽고 교장선생님을 테러한 학생들을 심판하는 ‘학교 재판’이 열리는 날 아침. 심스는 자신이 목격한 교장선생님 테러사건의 ‘범인’을 실토하고 하버드대 진학 기회를 잡을지 아니면 ‘명예롭게’ 침묵하고 퇴학을 감수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심스는 동료를 고발하는 대신 침묵하는 ‘명예’를 택한다. 아마도 슬레이드 중령과 뉴욕여행을 함께하면서 그가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명예심’이 심스에게도 옮겨온 듯하다. 검사격인 교장선생님은 심스에게 퇴학을 ‘구형’한다. 

그 순간 슬레이드 중령이 감동적인 최후변론에 나서 ‘재판정’을 휘어잡는다. 구차한 삶을 연장하느니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했던 슬레이드 중령은 구차한 모범생으로 남느니 차라리 ‘명예로운 퇴학’을 결심한 심스의 수호자가 되기로 작심한 듯하다. “심스는 친구를 팔아먹는 천박한 짓을 하느니 퇴학당하는 명예를 택했다. 자신의 이익보다 명예를 중히 여긴다는 것은 미국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명예를 선택한 학생을 처벌하는 건 학생들에게 미국의 미래를 버리라고 가르치는 짓이다.” 

슬레이드 중령이 토하는 사자후에 학교 재판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학생들은 환호하고, 재판관인 선생님들은 동요한다. 결국 심스에 대한 기소는 기각된다. 해피엔딩이다. 코로나 사태로 온 사회가 어지럽다. 위기가 닥치면 우리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영웅이 나타나고, 우리가 몰랐던 민망스러운 ‘민낯’도 드러난다. 

 

감독관 없는 ‘온라인 시험’에서 대리시험이 만연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진=뉴시스]
감독관 없는 ‘온라인 시험’에서 대리시험이 만연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진=뉴시스]

많은 학교들이 어려움 속에 힘들게 ‘온라인’으로나마 개학을 하고 학사일정상 불가피한 ‘시험’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모양이다. 감독관이 없는 ‘온라인’ 시험에서 온갖 대리시험과 부정행위가 만연하는 듯하다. ‘모두가 부정행위를 하는 판에 부정을 저지르지 않으면 본인만 손해’라는 항변 아닌 항변도 나오는 모양이다. 분명 명예로운 모습들은 아니다.

슬레이드 중령의 열변처럼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곧 나라의 미래’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썩 밝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온라인 시험에서 모두가 부정을 저지르지는 않았기를, 그리고 독야청청 명예롭게 손해를 감수한 학생들이 없지 않았기를 소망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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